제 171 편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유란시아서
제 171 편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171:0.1 (1867.1) “하늘나라”에 대하여 잊지 못할 설교를 하신 다음 날, 예수는 그와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내려고 그 이튿날 떠나리라, 가는 길에 페레아 남부의 수많은 도시를 찾아보리라고 발표했다.
171:0.2 (1867.2) 하늘나라에 관한 연설과 그가 유월절에 가려고 한다는 발표는, 모든 추종자로 하여금 유대인이 최고로 다스리는 현세의 왕국을 개시하려고 그가 예루살렘에 간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하늘나라의 비물질적 성질에 관하여 무슨 말씀을 하든지, 예수는 말씀을 듣는 유대인들의 머리 속에서, 예루살렘에 본부를 가진 어떤 종류의 민족주의 정부(政府)를 메시아가 세울 것이라는 관념을 완전히 지워버릴 수 없었다.
171:0.3 (1867.3) 안식일 설교에서 예수가 하신 말씀은 추종자의 대다수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경향만 있었고, 거의 아무도 주의 강론에 깨우침을 받지 못했다. 주요 선생들은 마음 속의 나라, “너희 안에 있는 하늘나라”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을 얼마큼 알아들었지만, 그들은 또한 예수가 또 다른 미래의 나라에 대하여 전에 말씀한 것을 알았고, 바로 이런 나라를 세우려고 그가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기대가 어긋났을 때, 유대인들이 그를 저버렸을 때, 그리고 후일에 예루살렘이 글자 그대로 파괴되었을 때, 그들은 아직도 이 희망에 매달렸고, 주가 큰 권능과 대단한 영화로움을 입고서 약속했던 나라를 세우려고 세상으로 곧 돌아오리라고 진지하게 믿었다.
171:0.4 (1867.4) 이 일요일 오후에 야고보와 요한 세베대의 어머니 살로메는 사도인 두 아들과 함께 예수에게 와서, 동양(東洋)의 권력자에게 접근하는 방식으로, 그 여자가 무엇을 요청하든지 예수가 미리 허락할 것을 약속하게 만들려고 애썼다. 그러나 주는 약속하려 하지 않았고, 그 대신에 그 여자에게 물었다. “내가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하기를 바라느냐?” 그러자 살로메가 대답했다: “주여, 당신이 예루살렘으로 나라를 세우러 가시오니, 이 내 아들들이 당신과 함께, 당신의 나라에서 하나는 당신 바른편에 앉고 하나는 왼편에 앉을 영광을 얻으리라고 당신이 내게 약속하시기를 미리 청하고 싶사옵나이다.”
171:0.5 (1867.5) 살로메의 요청을 듣자 예수는 말했다: “여자여, 너는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그리고 나서 영예를 추구하는 두 사도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그는 말했다: “내가 오랫동안 너희를 알고 사랑했기 때문에, 내가 네 어머니 집에서 살기까지 했기 때문에, 그래서 너희 어머니가 몰래 와서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요청을 하도록 너희가 버려두는도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내가 마시려 하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야고보와 요한은 대답했다. “예, 주여, 우리는 할 수 있나이다.” 예수가 말했다: “어찌하여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지 너희가 모르니 내가 슬프고, 내 나라의 성질을 너희가 알아차리지 못하니 마음이 아프도다. 내게 이 부탁을 하라고 너희 어머니를 불러왔으니 내가 실망이 되지만 너희가 마음 속에는 나를 사랑함을 내가 아노라. 그런즉 내가 선언하노니, 너희는 정말로 나의 쓴 잔을 마시고 나의 치욕을 함께 하리라만, 내 바른편과 내 왼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그러한 영예는 내 아버지가 지명하신 자들을 위하여 예비되었느니라.”
171:0.6 (1868.1) 이때가 되자 어떤 사람이 이 회담에 대한 말을 베드로를 비롯하여 다른 사도들에게 전했고, 그들은 야고보와 요한이 그들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으려고 애쓴 것과 둘이 몰래 어머니와 함께 가서 그런 요청을 드리려 한 것에 크게 분개하였다. 그들끼리 다툼에 빠지자, 예수는 모두를 불러모으고 말했다: “너희는 이방인의 권력자들이 저희 백성을 부리고 위대한 자들이 어떻게 권한을 행사하는가 잘 아느니라.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그렇지 아니하리라. 너희 가운데 크고자 하는 자는 누구나 먼저 너희의 종이 될지어다. 하늘나라에서 첫째가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에게 봉사하는 자가 될지어다. 내가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사람의 아들은 보살핌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봉사하려고 왔느니라. 나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일, 그리고 내 형제들에게 봉사하는 일에 내 목숨을 버리려고 이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라.” 이 말씀을 듣자 사도들은 자기들끼리 기도하러 물러났다. 그날 저녁에, 베드로가 수고한 데 응답하여, 야고보와 요한은 열 사도에게 적절히 사과했고, 형제들의 호의를 되찾았다.
171:0.7 (1868.2)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바른 편과 왼 편 자리를 요청하면서, 세베대의 아들들은 한 달이 채 못 되어, 사랑하는 선생이 한 편에 죽어 가는 도둑과 다른 편에 또 다른 범죄자와 더불어, 로마인의 십자가에 달릴 것을 조금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의 어머니는 십자가 처형 때 자리에 있었고, 펠라에서 사도인 아들들을 위하여 아주 지혜롭지 못하게 추구한 명예에 관하여 예수에게 어리석은 부탁을 드린 것을 잘 기억했다.
1. 펠라를 떠나다
171:1.1 (1868.3) 3월 13일, 월요일 아침 나절에, 예수와 열두 사도는 드디어 펠라 야영지를 떠났고, 아브너의 동료들이 일하고 있는 페레아 남부의 도시들을 둘러보려고 남쪽으로 여행을 떠났다. 70인 사이에 방문하면서 2주가 넘도록 보냈고, 그리고 나서 유월절을 지내려고 바로 예루살렘으로 갔다.
171:1.2 (1868.4) 주가 펠라를 떠났을 때, 제자들은 사도들과 함께 야영했고, 이들 약 1천 명이 주를 뒤따라갔다. 예수가 헤스본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리고 그가 “비용 계산”에 대하여 설교한 뒤에, 이 무리의 약 절반이 예리고로 가는 길에 요단강 여울에서 그를 떠나보냈다. 그들은 예루살렘까지 줄곧 올라갔고, 한편 나머지 반은 2주 동안 예수를 따라서 페레아 남부에서 여러 마을을 방문했다.
171:1.3 (1868.5) 펠라의 캠프를 떠났다는 것을 예수의 직계 추종자들의 대부분이 대체로 이해했지만, 그들은 이것이 주가 드디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다윗의 왕좌를 주장할 의도를 가리킨다고 정말로 생각했다. 추종자들의 대다수는 어떤 다른 하늘나라 개념도 결코 깨우칠 수 없었다. 예수가 무엇을 가르치든지, 그들은 이 유대인 왕국 개념을 버리려 하지 않았다.
171:1.4 (1868.6) 사도 안드레의 지시에 따라서, 다윗 세베대는 3월 15일 수요일에, 펠라에 있던 방문자 캠프를 걷어치웠다. 이때 거의 4천 명의 방문자들이 거주하고 있었고, 이것은 선생들의 캠프라고 알려진 곳에서 사도들과 함께 머무르고 예수와 열두 사도와 더불어 남쪽으로 간 1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넣지 않는다. 무척 하기 싫었어도, 다윗은 수많은 구매자에게 장비 전체를 팔아치우고 예루살렘으로 자금을 가지고 갔고, 나중에 그 돈을 가룟 유다에게 넘겨주었다.
171:1.5 (1869.1) 비극의 마지막 주에 다윗은 예루살렘에 있었고, 십자가 처형이 있은 뒤에 자신의 어머니를 벳세다로 모시고 갔다. 예수와 사도들을 기다리면서, 다윗은 베다니에 나사로의 집에서 멈추었고, 그가 부활한 뒤로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그를 박해하고 괴롭히는가 보고 몹시 흥분하였다. 안드레는 다윗에게 사자(使者) 서비스를 중단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었는데, 이것은 예루살렘에서 하늘나라가 일찍 세워짐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모두가 풀이했다. 다윗은 할 일이 없음을 깨달았고, 그가 분개한 근심의 대상(對象)이 당장에 서둘러 필라델피아로 달아났을 때, 그는 자청해서 나사로의 방어자가 되려고 거의 마음먹었다. 따라서, 부활이 있은 뒤, 또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얼마 있다가, 먼저 마르다와 마리아가 그들의 부동산 처분하는 것을 돕고 나서, 다윗은 필라델피아로 옮겨 갔다. 그리고 거기서 아브너와 나사로와 관계를 가지면서 여생을 보냈고, 아브너의 일생 동안에 필라델피아에 집중되었던 하늘나라의 모든 큰 거점들의 재정 감독자가 되었다.
171:1.6 (1869.2) 예루살렘이 파괴된 뒤에 얼마 안 되어 안티옥이 바울파 기독교의 본부가 되었고, 한편 필라델피아는 아브너파 하늘나라의 중심으로 남았다. 안티옥에서 예수의 가르침과 예수에 관한 가르침의 바울 판(版)이 온 서양 세계로 퍼졌다. 예수의 가르침을 외치는, 타협하지 않는 이 밀사들이 후일에 이슬람이 갑자기 흥성함으로 압도될 때까지, 필라델피아로부터 아브너 판의 하늘나라를 외치는 선교사들이 메소포타미아와 아라비아에 두루 퍼졌다.
2. 비용 계산에 대하여
171:2.1 (1869.3) 예수와 거의 1천 명의 추종자 일행이, 때때로 베다바라로 부르는, 요단강의 베다니 여울목에 다다랐을 때, 제자들은 그가 예루살렘으로 바로 가지 않는 것을 비로소 눈치챘다. 그들이 망설이고 자기들끼리 토론하는 동안에, 예수는 거대한 바위 위로 올라가서 강론하였고, 이것은 “비용 계산”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주는 말씀했다:
171:2.2 (1869.4) “이때부터 계속 내 뒤를 따르고자 하는 너희는,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데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는 값을 기꺼이 치러야 하느니라. 너희가 내 제자가 되고자 하면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식들, 형제와 자매를 기꺼이 버려야 하느니라. 너희 가운데 누구라도 이제 내 제자가 되고자 하면,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육체를 입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명을 마치기 위하여 목숨을 바야흐로 내놓으려 하는 것과 똑같이, 너희 목숨조차 기꺼이 버려야 하느니라.
171:2.3 (1869.5) “충분한 값을 기꺼이 치르지 않겠다면, 너희는 도저히 내 제자일 수 없도다. 더 나아가기 전에, 너희는 각자 앉아서 내 제자가 되는 데 얼마나 비용이 드는가 계산해야 하느니라. 망루를 완성할 돈이 충분히 있는가 보려고 먼저 앉아서 비용을 계산하지 않고서, 너희 중에 누가 땅에서 망대 짓는 일에 손을 대겠느냐? 너희가 기초를 놓은 뒤에 이렇게 비용을 계산하지 않으면, 시작한 것을 마칠 수 없음을 너희가 알게 될지 모르느니라. 그런즉 이웃이 다 너희를 비웃으리라, ‘보라, 이 사람이 건물을 짓기 시작했으나 하던 일을 마칠 수 없구나.’ 다시 이르노니,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전쟁하려고 준비할 때, 병사(兵士) 1만을 가지고서 그를 대적하여 병사 2만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항할 수 있는가 먼저 앉아서 의논하지 않겠느냐? 준비되지 않아서 적을 대항할 여유가 없으면, 그 임금은 이 다른 임금에게, 아직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사절단을 보내어 평화 조건을 묻느니라.
171:2.4 (1870.1) “자, 그러면 이제 너희는 각자 앉아서, 내 제자가 되는 비용을 계산해야 하느니라. 이제부터 계속 너희는 우리 뒤를 따르면서, 가르침을 듣고, 하는 일을 구경할 수 없으리라. 너희에게 모진 박해에 부딪치는 것이 요구되고, 사람을 압도하는 실망에 직면하여 이 복음을 증언하는 것이 요구되리라. 기꺼이 네 신분을 모두 포기하고 가진 것을 모두 바칠 뜻이 없다면, 너는 내 제자가 될 자격이 없느니라. 마음 속에서 네 자신을 이미 정복했거든, 사람의 아들이 주사제와 사두개인들에게 거절당하고 비웃는 불신자(不信者)들의 손에 넘겨질 때, 너는 당장에 틀림없이 구경할 그 외관상의 승리를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느니라.
171:2.5 (1870.2) “이제 너는 스스로를 살펴서, 내 제자가 되는 동기를 찾아내야 하느니라. 너희가 명예와 영광을 추구하고 세상에 생각이 있다면, 너희는 맛을 잃은 소금과 같으니라. 그리고 짠맛 때문에 소중히 여김받는 것이 그 맛을 잃으면, 소금이 무엇으로 맛을 내리요? 그러한 양념은 쓸모가 없고, 오직 쓰레기 사이에 던지기에 적당하니라. 준비되고 있는 잔을 나와 함께 기꺼이 마시고 싶지 않거든, 너희 집으로 평안히 돌아가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경고하였노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너희에게 거듭 일렀거늘 너희가 나를 믿으려 하지 않는도다.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내가 이르는 것을 들으라.”
171:2.6 (1870.3) 이 말씀을 하고 나서 바로, 예수는 열두 사람을 이끌고, 헤스본으로 길을 떠났고, 약 5백 명이 뒤를 따랐다. 잠깐 동안 지체한 뒤에, 군중의 나머지 반은 계속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사도들은 주요한 제자들과 함께, 이 말씀에 대하여 많이 생각했지만, 이 역경과 시련이 잠시 있은 뒤에, 오래 간직했던 희망에 얼마큼 따라서 하늘나라가 확실히 세워질 것이라는 관념에 여전히 매달렸다.
3. 페레아 여행
171:3.1 (1870.4) 2주가 넘도록 예수와 열두 사도는 뒤따르는 수백 제자의 군중과 더불어, 페레아 남부에서 이리저리 여행했고, 70인이 수고하던 마을들을 모두 찾아보았다. 많은 이방인이 이 지역에서 살았고, 예루살렘의 유월절 축제에 올라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하늘나라 사자들은 가르치고 전도하는 일에 즉시 착수했다.
171:3.2 (1870.5) 예수는 헤스본에서 아브너를 만났고, 안드레는 70인의 수고가 유월절 축제로 중단되지 않아야 한다고 지시했다. 예루살렘에서 바야흐로 일어나려 하는 것을 완전히 무시(無視)하고 사자들이 할 일을 진행해야 한다고 예수는 조언했다. 또한 아브너에게 여인단이, 적어도 원하는 사람들이, 유월절을 지내려고 예루살렘으로 가도록 허락하라고 조언하였다. 이때가 아브너가 육체를 입은 예수를 마지막으로 본 때였다. 이렇게 아브너에게 그는 작별의 말씀을 하였다: “이 사람아, 네가 하늘나라에 충실할 것을 내가 알고, 형제들을 사랑하고 이해하도록 너에게 지혜 주시기를 내가 아버지께 기도하노라.”
171:3.3 (1870.6) 이 도시 저 도시로 다니는 동안,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 가운데 큰 무리가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줄곧 갔고, 그래서 예수가 유월절을 지내려고 떠날 때가 되자, 주를 함께 따라온 사람들의 수는 날마다 줄어들어 2백 명이 채 되지 않았다.
171:3.4 (1871.1) 사도들은 예수가 유월절을 지내려고 예루살렘에 간다고 알아들었다. 그들은 예수가 사형 선고를 받았고, 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산헤드린에게 통지해야 한다고 전하는 말을 산헤드린이 온 이스라엘에 퍼뜨린 것을 알았다. 이 모든 일이 있었는데도, 여전히, 그들은 그가 나사로를 보려고 베다니로 간다고 필라델피아에서 발표했을 때만큼 놀라지는 않았다. 몹시 두려워하는 태도를 가졌다가 입다물고 기대하는 상태로 이렇게 태도가 바뀐 것은 대체로 나사로의 부활(復活) 때문이었다. 그들은 비상시에, 예수가 신의 권능을 주장하고 적들에게 창피를 줄지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희망은 주가 영적 지배권을 가졌다는 더 깊고 성숙한 믿음과 함께, 직계 추종자들이 겉으로 용기를 보인 것을 설명하며, 이들은 그가 죽어야 한다는 산헤드린의 공개 선포가 있는 바로 그 마당에, 이제 예루살렘으로 그를 따라가려고 준비했다.
171:3.5 (1871.2) 사도들의 대다수와 여러 핵심 제자들은 예수가 죽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다. 그가 “부활이요 생명”임을 믿었으니까, 그들은 예수가 불사(不死)이며 이미 죽음을 이겼다고 보았다.
4. 리비아에서 가르침
171:4.1 (1871.3) 3월 29일 수요일 저녁에, 예수와 추종자들은 페레아 남부의 여러 도시를 둘러보는 여행을 마친 뒤에,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리비아에서 야영했다. 열심당원 시몬과 시몬 베드로는 1백 자루가 넘는 검(劍)을 이 자리에서 그들 손에 배달되도록 함께 일을 꾸몄기 때문에, 이날 밤에 리비아에서 이 무기들을 받았고, 칼을 받고 외투 속에 감추어 칼을 차려는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주었다. 시몬 베드로는 뜰에서 주를 저버리는 날 밤에 아직도 칼을 차고 있었다.
171:4.2 (1871.4) 목요일 아침 일찍, 다른 사람들이 깨어나기 전에, 예수는 안드레를 불러서 말했다: “네 형제들을 깨우라! 내가 저희에게 할 말이 있느니라.” 예수는 검에 대하여, 또 사도들 가운데 누가 이 무기를 받고 휴대하고 있는가 알았지만, 그런 일을 안다는 것을 그들에게 결코 알리지 않았다. 안드레가 동료들을 일으켰고, 그들끼리 모였을 때, 예수는 말했다: “아이들아, 너희는 나와 함께 오랫동안 지냈고, 이때를 위하여 필요한 것을 많이 너희에게 가르쳤느니라. 그러나 이제 너희에게 경고하노니, 육체의 불확실한 것이나 또는 너희 앞에 놓인 시련과 시험에 대한 인간의 허약한 방비를 의지하지 말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음을 한번 더 분명히 이르려고 내가 따로 너희끼리만 불러모았으니, 예루살렘에서 사람의 아들이 이미 사형 선고를 받았음을 너희가 아느니라.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아들이 주사제와 종교 지도자들의 손에 넘겨지겠고, 저희가 그를 정죄하고 다음에 이방인들의 손에 넘겨주리라. 그래서 저희가 사람의 아들을 조롱하고, 아니 그에게 침 뱉고 때리기까지 하겠고, 그를 죽음으로 인도하리라. 그리고 저희가 사람의 아들을 죽일 때, 절망하지 말라. 내가 선언하노니, 사흘째에 그가 일어날 것임이라. 너희끼리 조심하고 내가 너희에게 미리 경고한 것을 기억하라.”
171:4.3 (1871.5) 또 다시, 사도들은 놀라고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말씀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정신을 가다듬을 수 없었다. 주의 뜻이 말씀하신 바로 그대로였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예루살렘에 본부를 둔, 땅에 있는 현세의 나라를 믿는 집요한 믿음에 너무 눈이 멀어서, 그들은 단지 예수의 말씀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런 이상한 발표로 주가 무엇을 의도할 수 있는가 그들은 하루 종일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나 이 말씀에 대하여 아무도 감히 그에게 물으려 하지 않았다. 이 어리둥절한 사도들은 그가 십자가에 못박힐 것을 예상하고서 주가 그들에게 분명히, 직접 말씀했다는 것을 주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깨닫지 못했다.
171:4.4 (1872.1) 여기 리비아에서, 아침 식사 바로 뒤에, 어떤 친절한 바리새인들이 예수에게 와서 말했다: “이 지역에서 어서 달아나소서, 요한을 잡으려 애쓴 것과 마찬가지로 헤롯이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다. 그는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킬까 두려워하고 당신을 죽이기로 작정하였나이다. 당신이 피하도록 우리가 당신에게 이렇게 경고하나이다.”
171:4.5 (1872.2) 이것은 어느 정도 참말이었다. 나사로의 부활은 헤롯을 두렵고 놀라게 했고, 재판이 있기도 전에 산헤드린이 감히 예수를 정죄(定罪)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헤롯은 예수를 죽이든지 아니면 자기 영토 바깥으로 몰아내기로 작정하였다. 그는 정말로 뒤의 경우를 바랐는데, 헤롯이 예수를 너무나 두려워하여 어쩔 수 없이 예수를 처형하게 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171:4.6 (1872.3) 바리새인들이 하고 싶어 했던 말을 듣고서 예수는 대답했다: “헤롯에 대하여, 또 그가 이 하늘나라 복음을 두려워함을 내가 잘 아노라. 그러나 잘못 생각지 말라, 그는 사람의 아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주사제들의 손에 고통받고 죽기를 더욱 좋아하리라. 제 손을 요한의 피로 더럽혔으므로, 사람의 아들의 죽음을 책임지고 싶어 안달하지는 않느니라. 너희는 가서 그 여우에게 이르라. 사람의 아들이 페레아에서 오늘 전도하고, 내일은 유대로 가고, 며칠 지난 뒤에, 땅에서 사명을 마치고 아버지께로 올라가려고 준비되리라.”
171:4.7 (1872.4) 그리고 나서 사도들을 향하여 예수는 말했다: “옛적부터 선지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이슬로 사라졌고,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집이 있는 도시로 올라가서 인간의 편협에 대한 값으로, 그리고 종교적 편견과 영적 무분별의 결과로 희생되는 것이 어울릴 따름이라. 아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너는 선지자들을 죽이고 진리의 선생들을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밑에 모으는 것 같이, 얼마나 자주 내가 네 자손을 모으고 싶어 하였느냐, 그러나 너는 내가 그리하도록 가만두려 하지 않는구나! 보라 네 집은 바야흐로 황폐한 채로 너에게 맡겨지려 하는구나! 너는 여러 번 나를 보고 싶어 하리라만 보지 못할지니라! 그때 네가 나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할지니라!” 말씀을 마치고 나서, 둘레에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말하였다: “그렇기는 해도, 유월절에 참석하기 위하여, 그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데 우리에게 어울리는 일을 하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자.”
171:4.8 (1872.5) 이날 예리고로 예수를 따라간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고 어리둥절한 신자 무리였다. 사도들은 하늘나라에 관한 예수의 선언에서 마지막으로 승리한다는 확실한 목소리만 헤아릴 수 있었다. 다가오는 좌절에 관한 경고를 파악하는 경지까지 도저히 이를 수 없었다. 예수가 “사흘째에 일어난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이 말씀을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불쾌한 예비 충돌이 있은 직후에, 하늘나라가 분명히 승리함을 의미한다고 받아들였다. “사흘째”는 “당장에” 아니면 “얼마 있다가”를 뜻하는 표현, 유대인이 보통 쓰는 표현이었다. 예수가 “일어난다”고 말했을 때, 그가 “하늘나라가 일어남”을 언급한다고 생각했다.
171:4.9 (1872.6) 이 신자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였고, 유대인들은 고통받는 메시아에 대하여 거의, 또는 전혀 몰랐다. 그들은 예수가 살아서 결코 성취할 수 없던 많은 것을 죽어서 성취하리라는 것을 알아듣지 못했다. 사도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도록 용기를 준 것은 나사로의 부활이었지만, 주의 수여 생애에서 이 시련 기간에 주를 버티게 한 것은 변모(變貌)의 기억이었다.
5. 예리고에 있던 소경
171:5.1 (1873.1) 3월 30일, 목요일 오후 늦게, 예수와 사도들은, 약 2백 명이 되는 추종자 일행에 앞서서, 예리고의 성벽으로 다가갔다. 도시의 대문에 가까이 가자, 그들은 한 떼의 거지들과 마주쳤다. 그 중에 바티메우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릴 때부터 눈이 멀었던 늙은이였다. 이 눈먼 거지는 예수에 대하여 소문을 많이 들었고, 예루살렘에서 그가 눈먼 요시아를 고친 것에 대하여 모두 알았다. 베다니로 계속 갔을 때까지, 그는 예수가 예리고를 요즘에 방문했다는 것을 몰랐다. 바티메우스는 예수가 예리고를 방문하기만 하면 시력(視力)을 되찾게 해달라고 예수에게 꼭 호소하려고 벼르고 있었다.
171:5.2 (1873.2) 예수가 다가온다는 소식이 이미 예리고에 두루 알려졌고, 거민 수백 명이 그를 만나려고 바깥으로 나와 떼를 지었다. 이 큰 무리가 주를 도시 안으로 호송해서 돌아왔을 때, 군중이 시끄럽게 쿵쿵거리며 걷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서, 바티메우스는 무언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았고, 그래서 가까이 서 있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가 물었다. 거지들 가운데 하나가 대답했다. “나사렛 예수가 지나간다네.” 예수가 가까이 있다는 말을 듣자, 바티메우스는 목청을 높여서 비로소 크게 외쳤다: “예수여 예수여, 내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가 계속 더욱 크게 소리치자, 예수에게 가까이 있던 사람들 중에서 몇 사람이 그에게 다가가서 꾸짖으며, 조용히 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아무 쓸모가 없었다. 그는 더욱, 더 큰 소리로 외칠 뿐이었다.
171:5.3 (1873.3) 그 소경이 소리치는 것을 들었을 때, 예수는 가만히 멈추었다. 그를 보았을 때, 예수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그 사람을 내게로 데려오라.” 그리고 나서 그들이 바티메우스에게 가서 말했다: “기운을 차리라, 우리를 따라 오라. 주가 너를 부르심이라.” 이 말씀을 듣자 바티메우스는 외투를 옆에 던져 버리고, 길 가운데를 향하여 앞으로 뛰쳐나갔고, 한편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그를 예수에게로 안내했다. 바티메우스를 향하여 예수가 말했다: “무엇을 해주기 원하느냐?” 그리고 나서 눈먼 사람이 대답했다. “제 시력을 되찾고 싶나이다.” 이 요청을 듣고 그의 믿음을 보았을 때, 예수는 말했다: “네가 시력을 받으리라. 길을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느니라.” 즉시 그는 시력을 되찾았고, 주가 이튿날 예루살렘을 향하여 떠날 때까지 예수 가까이 남아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나서 대중 앞으로 가서 예리고에서 어떻게 그가 시력을 되찾았는가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말했다.
6. 삭개오를 찾아보다
171:6.1 (1873.4) 주의 행렬이 예리고로 들어갔을 때는 해질 무렵이었고, 그는 거기서 밤을 지낼 생각이 들었다. 예수가 세관을 지나갔을 때, 세무장, 다시 말해서 세리(稅吏) 삭개오가 어쩌다가 자리에 있었는데, 예수를 몹시 보고 싶어했다. 이 세무장은 아주 부자였고 이 갈릴리 선지자에 대하여 익히 들어 왔다. 다음에 예수가 어쩌다 예리고를 찾을 때 예수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 보겠다고 전에 결심하였다. 따라서 삭개오는 군중 속을 밀고 나가려 했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그는 키가 작아서 군중의 머리 위로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세무장은 도시의 중심 가까이, 그가 사는 데서 멀지 않은 곳에 올 때까지 군중과 함께 계속 따라갔다. 군중을 뚫고 들어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예수가 멈추지 않고 도시를 바로 통과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는 앞으로 계속 달려가서 어느 무화과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는데, 그 나무의 퍼진 가지들은 길 쪽으로 늘어져 있었다. 이 방법으로 그는 주가 지나가실 때 주를 잘 볼 수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는 실망하지 않았으니, 왜냐하면 예수가 지나갈 때, 멈추어서 삭개오를 올려다보고 말했기 때문이다: “삭개오야 서둘러 내려오라, 오늘 밤 내가 너의 집에서 묵어야 하니라.” 이 놀라운 말씀을 들었을 때, 허겁지겁 내려오면서 삭개오는 나무에서 하마터면 떨어질 뻔하였고, 예수에게로 다가가면서, 주가 그의 집에서 기꺼이 머무르겠다는 말씀에 크게 기뻐하였다.
171:6.2 (1874.1) 그들은 당장 삭개오의 집으로 갔고, 예리고에서 살던 사람들은 예수가 세무장과 함께 묵기로 하겠다는 데 많이 놀랐다. 주와 사도들이 집 문 앞에서 삭개오와 함께 서성거리는 동안에도 가까이 서 있던 예리고의 바리새인들 가운데 하나가 말했다: “어떻게 죄인, 제 민족을 강탈하는 자요 강도, 아브라함의 배신(背信)한 아들의 집에 이 사람이 묵으려고 갔는가 너희가 보느니라.” 이 말을 들었을 때, 예수는 삭개오를 내려다보며 빙긋 웃었다. 그러자 삭개오는 등 없는 의자 위에 올라서서 말했다: “예리고의 여러분, 내 말 을 들 으소서 내가 세리요 죄인일지 모르나, 큰 선생이 내 집에 머무르려고 오셨는지라. 그가 안으로 들어가시기 전에, 여러분에게 이르오니, 내가 온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고, 내일부터 시작하여, 누구에게도 내가 무엇이든지 그릇되게 빼앗았다면, 4배로 갚으리이다. 나는 마음을 다하여 구원을 찾고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르게 행하기를 배우고자 하나이다.”
171:6.3 (1874.2) 삭개오가 말을 마치자 예수가 말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고, 너는 정말로 아브라함의 아들이 되었도다.” 주위에 모인 군중을 향하여 예수는 말했다: “내가 한 말에 놀라지 말고, 우리가 하는 일에 성내지도 말지니, 사람의 아들은 잃어버린 자를 찾고 구원하러 왔다고 내가 지금까지 선언하였음이라.”
171:6.4 (1874.3) 그들은 그날 밤 삭개오와 함께 머물렀다. 이튿날 아침 일어나서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내려고 가는 길에, 베다니까지 “강도의 길”을[1] 올라갔다.
7. “예수가 지나가는 동안”
171:7.1 (1874.4) 예수는 어디를 가든지 즐거운 기분을 퍼뜨렸다. 그는 인자함과 진실이 가득하였다. 동료들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인자한 말씀에 끊임없이 놀랐다. 사람은 품위를 기를 수 있어도 인자함은 사랑에 흠뻑 젖은 혼에서 솟아나오는 친절의 향기이다.
171:7.2 (1874.5) 선은 반드시, 어쩔 수 없이 존경심을 일으키지만, 선에 인자함이 결여되면 사랑을 밀어내는 일이 흔하다. 선은 오직 인자할 때 보편적으로 마음을 끈다. 선은 오직 마음을 끌 때 효과가 있다.
171:7.3 (1874.6) 예수는 정말로 사람들을 이해하였다. 그래서 진정한 동정심을 나타내고 진지한 인정(人情)을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불쌍히 여기는 느낌에 깊이 빠지는 일이 드물었다. 이해심은 한이 없었지만, 동정심은 실용적이요, 개인적이고 건설적이었다. 고통에 익숙했어도 결코 무관심해지지 않았고, 비탄에 빠진 사람들에게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느낌을 더하지 않으면서 봉사를 베풀 수 있었다.
171:7.4 (1874.7) 예수가 사람들을 그렇게 많이 도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사람들을 아주 진지하게 사랑했기 때문이다. 참으로 남자와 여자와 어린아이 하나하나를 사랑했다. 놀라운 통찰력 때문에 그토록 참된 친구가 될 수 있었다―그는 사람의 마음 속에, 그리고 머리 속에 무엇이 있는가 아주 충분히 알았다. 그는 관심이 있고 날카롭게 지켜보는 사람이었다. 인간의 필요를 이해하는 데 통달한 사람이었고, 인간의 소망을 기민하게 탐지하였다.
171:7.5 (1874.8) 예수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지나는 동안”에 동료 인간을 위로할 시간을 가졌다. 그는 언제나 친구들이 편안한 마음을 가지게 해주었다. 남의 말을 귀담아듣는, 매력 있는 사람이었다. 동료들의 마음을 떠보려고 시시콜콜히 캐묻는 일이 결코 없었다. 진리에 굶주린 정신을 위로하고 갈급한 사람에게 봉사하는 동안, 그의 자비를 받은 사람들은 그에게 고백한다기보다 그와 함께 의논한다고 느꼈다. 그가 그들을 아주 깊이 신임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들은 그를 한없이 신뢰했다.
171:7.6 (1875.1) 그는 결코 사람들에 대하여 캐묻는 듯하지 않았고, 사람들을 지시하거나 관리하거나 추적하려는 욕구를 보이지 않았다. 그와 관계를 가진 모든 사람에게 깊은 자신감과 확고한 용기를 불러일으켰다. 그가 사람에게 빙그레 웃을 때, 그 사람은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커졌다.
171:7.7 (1875.2) 예수는 사람들을 아주 많이, 무척 지혜롭게 사랑했기 때문에, 단련을 요구하는 경우가 생길 때 그는 결코 서슴지 않고 심하게 대했다. 흔히, 도움을 요청함으로 사람을 돕는 데 착수했다. 이 방법으로 그는 흥미를 불러일으켰고, 인간의 좋은 성품에 호소했다.
171:7.8 (1875.3) 그의 옷자락을 만져서 치유받기를 구한 여인의 천한 미신(迷信) 속에 그는 예외적인 믿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언제나 설교를 멈추거나 군중을 기다리게 할 자세가 되었고, 기꺼이 그렇게 했으며, 한편 한 사람, 아니 한 어린아이의 경우에도 그 필요를 돌보았다.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을 뿐 아니라, 또한 예수가 그들을 아주 많이 믿었기 때문에 큰 일들이 일어났다.
171:7.9 (1875.4) 예수가 말씀하거나 실행한 정말로 중요한 일의 대부분은 생각지 않게 “그가 지나가는 동안에” 일어나는 듯했다. 땅에서 주가 베푼 봉사에는 전문적이거나 잘 계획하거나 미리 생각해 놓은 것이 거의 없었다. 일생을 통해서 여행하는 동안, 그는 자연스럽고 품위 있게 건강을 베풀고 행복을 나누어주었다. “그는 좋은 일을 하며 다녔다”는 것은 글자 그대로 참말이다.
171:7.10 (1875.5) 어떤 시대에도, 주의 추종자들이 “지나가는 동안에” 봉사하기를 배우는 것―나날의 임무에 몰두하는 동안 사심 없이 좋은 일 하는 것―이 마땅하다.
8. 파운드의 비유
171:8.1 (1875.6) 그 전날 밤에 예수가 삭개오와 그 가족에게 하늘나라 복음을 가르치는 동안 늦게까지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거의 한낮까지 예리고를 떠나지 못했다. 베다니로 올라가는 길의 중턱 부근에서, 그 일행은 점심을 먹으려고 멈추었고, 한편 군중은 예수와 사도들이 그날 밤에 올리브산에서 묵으리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계속하여 예루살렘으로 갔다.
171:8.2 (1875.7) 파운드의 비유는, 모든 제자에게 주려고 뜻한 달란트 비유와 달리, 각별히 사도들에게 말씀한 것이고, 대체로 아켈라우스의 체험과 유대 왕국의 통치권을 얻으려고 그가 헛되이 시도한 데에 근거를 둔다. 이것은 실제로 역사적 인물에 근거를 둔, 몇 안 되는 주의 비유 가운데 하나이다. 예리고에서 삭개오의 집이 아켈라우스의 화려한 궁전에서 아주 가까이 있었고, 그의 수로(水路)가 그들이 예리고를 떠나면서 걸었던 길을 따라서 이어졌으니까, 그들이 아켈라우스를 염두에 두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171:8.3 (1875.8) 예수는 말했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이 한 나라를 받으려고 예루살렘으로 간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선언하노니, 너희는 실망할 운명을 가졌도다. 너희는 어떤 임금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혼자서 한 나라를 받으려고 먼 나라로 갔으나 그가 미처 돌아올 수 있기도 전에, 그 지방의 시민들이 마음 속에서 이미 그를 저버렸으므로 그의 뒤를 좇아 사신(使臣)을 보내어 말하였더라.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지 못하게 하겠노라.’ 현세에 이 임금의 통치가 거절당한 것 같이, 마찬가지로 사람의 아들의 영적 통치도 거절당하리라. 다시 내가 선언하노니,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느니라. 그러나 사람의 아들에게 자기 백성을 영적으로 통치하는 권리가 주어졌다면, 그러한 인간 혼을 다스리는 나라를 받고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그러한 영토에서 군림하였으리라. 내가 영적으로 저희를 다스리는 것을 저희가 물리쳐도, 지금 거절당한 그러한 영의 나라를 다른 이들로부터 받으러 내가 다시 돌아오리라. 사람의 아들이 이제 거절당하는 것을 너희가 볼 터이나, 다른 시대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지금 물리치는 것을 받아들이고 높이리라.
171:8.4 (1876.1) “그리고 이제, 이 비유에서 거절당한 귀족으로서, 내 앞에 열두 종, 특별 집사들을 부르고, 너희의 손 하나하나에 돈 한 파운드를 주면서, 내 지시를 잘 주목하라고 각자에게 훈계하고자 하노라. 즉 내가 돌아올 때, 너희에게 계산을 요구할 때, 그 자금으로 너희의 집사 노릇을 정당화하도록 내가 떠나 있는 동안에 너희에게 맡긴 자금(資金)으로 부지런히 장사하여라.
171:8.5 (1876.2) “그리고 거절당한 이 아들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또 다른 아들이 이 나라를 받으려고 파송되리니, 이 아들은 그때 너희의 관리 보고를 받고 너희가 남긴 이익을 기뻐하려고 너희 모두를 부르러 사람을 보내리라.
171:8.6 (1876.3) “이 집사들이 나중에 회계하려고 한데 부름받았을 때, 첫째 사람이 앞으로 나와서, ‘주여, 당신의 파운드로 나는 열 파운드를 더 만들었나이다’ 하였더라. 그리고 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잘 하였도다. 너는 착한 종이요, 네가 이 문제에 충실하였음이 입증되었으매, 너에게 열 도시를 다스릴 권한을 주리라’ 하였더라. 둘째 사람이 와서 ‘주여, 당신이 내게 맡긴 파운드가 다섯 파운드를 벌었나이다’하였는지라. 주가 가로되 ‘따라서 내가 너를 다섯 도시의 통치자로 만들리라’하였더라. 그리고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거쳐서 마지막 종까지 내려갔더니, 설명하라고 부름받자 그는 이렇게 보고하였더라: ‘주여, 보소서, 여기 당신의 파운드가 있나이다. 이 수건에 싸서 안전히 두었나이다. 내가 이렇게 한 것은 당신이 두려웠음이니이다. 당신은 놓아두지 않은 데서 가져가고, 씨 뿌리지 않은 데서 거두려 하는 것을 보았으므로, 나는 당신이 분별이 없다고 믿었나이다.’ 그리고 나서 주인이 말하였더라: ‘너 게으르고 불충한 종아, 네 입에서 나오는 말로 내가 너를 판단하리라. 겉보기에 내가 씨 뿌리지 않은 데서 거두는 것을 네가 아느니라. 그러므로 이 계산을 하라 요구할 것을 네가 알았느니라. 알았은즉, 내가 올 때 본전과 적당한 이자(利子)를 받도록 적어도 내 돈을 은행에 주었어야 하느니라.’
171:8.7 (1876.4) “그리고 나서 이 통치자는 대기하던 자들에게 말하였더라: ‘이 게으른 종에게서 돈을 가져다가 열 파운드 가진 자에게 주라.’ 그런 사람이 이미 열 파운드를 가졌다고 저희가 주에게 상기시키자, 그가 말하였더라: ‘가진 자마다 더 받겠거니와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진 것조차 빼앗기리라.’”
171:8.8 (1876.5) 그리고 나서 사도들은 이 비유의 뜻과 앞서 달란트 비유의 뜻의 차이를 알려고 했으나, 예수는 여러 질문에 대답하여 다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너희 각자가 그 참 뜻을 찾아내면서, 마음 속에서 이 말씀을 잘 생각해 보아라.”
171:8.9 (1876.6) 후일에 이 두 비유의 뜻을 아주 잘 가르친 사람은 나다니엘이었고, 그는 다음 결론에서 그의 가르침을 간추렸다:
171:8.10 (1876.7) 1. 능력은 인생의 기회를 재는 실용적 척도이다. 너희는 능력 바깥에 있는 것을 성취하라는 책임을 결코 지게 되지 않을 것이다.
171:8.11 (1876.8) 2. 충실함은 인간의 믿을 만함을 재는 어김없는 척도이다. 작은 일에 충실한 자는 또한 그의 자질에 맞는 모든 일에 충실함을 나타내기 쉽다.
171:8.12 (1876.9) 3. 비슷한 기회가 있을 때, 주는 적게 충실한 것에 대하여 적게 보상을 내린다.
171:8.13 (1877.1) 4. 기회가 적을 때, 충실한 만큼 보상을 내린다.
171:8.14 (1877.2) 그들이 점심을 마쳤을 때, 그리고 따르던 군중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계속 간 뒤에, 예수는 길가에 튀어나온 어느 바위의 그늘에서 사도들 앞에 서서, 명랑한 기품과 인자한 위풍으로 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오라, 형제들아, 계속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을 받자. 이처럼 모든 일에 하늘 아버지의 뜻을 우리가 이루리라.”
171:8.15 (1877.3) 그래서 예수와 사도들은, 필사 인간 육체의 모습을 입은 주의 이 마지막 예루살렘 여행에 걸음을 다시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