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4 편 과도기
유란시아서
제 134 편
과도기
134:0.1 (1483.1) 지중해를 여행하는 동안에 예수는 만난 사람과 거쳐 간 나라들을 신중하게 연구했고, 이 무렵에 땅에서 보낼 여생(餘生)에 관하여 마지막 결정에 이르렀다.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부모에게 태어나도록 마련한 계획을 전에 충분히 검토해보았고, 이제 마침내 승인하였다. 따라서 대중에게 진리를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일생의 일이 시작되는 것을 기다리려고, 의도하여 갈릴리로 돌아갔다. 아버지 요셉의 민족이 사는 땅에서 공적(公的) 생애를 살려고 비로소 계획을 세웠고, 자신의 자유 의지로 이렇게 하였다.
134:0.2 (1483.2) 예수는 몸소 겪은 인간적 체험을 통해서 온 로마 세계에서 팔레스타인이, 땅에서 생애의 마지막 장(章)을 꾸미고, 마지막 장면을 연출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임을 발견했다. 그가 태어난 팔레스타인의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서, 그의 참된 성품을 숨김없이 나타내고 신다운 신분을 드러내는 계획에 처음으로 충분히 만족하게 되었다. 무력한 아기로서 인간의 체험을 시작한 바로 그 땅에서, 지상의 일생을 끝내고 필사자로 존재하는 생애를 마치기로 분명히 결심하였다. 그의 유란시아 생애는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사이에서 비롯하였고 그는 일생을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사이에서 마치기로 하였다.
1. 서른 살 되던 해 (서기 24년)
134:1.1 (1483.3) 카락스에서 (서기 23년 12월) 고노드와 가니드와 작별한 뒤에, 예수는 우르의 길로 바빌론으로 돌아갔다. 거기서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있던 어느 사막의 카라반과 합세하였다. 다마스커스에서 나사렛으로 갔고, 가버나움에서 겨우 몇 시간 멈추었으며, 그곳에서 잠시 쉬고 세베대의 가족을 찾아보았다. 거기서 동생 야고보를 만났는데 그는 얼마 전에 세베대의 배 작업장에서 예수를 대신하여 일하러 왔다. 야고보와 (또한 가버나움에 어쩌다 들린) 유다와 이야기하고 나서, 그리고 요한 세베대가 그럭저럭 샀던 작은 집을 아우 야고보한테 넘겨준 뒤에, 예수는 계속하여 나사렛으로 갔다.
134:1.2 (1483.4) 지중해 여행이 끝났을 때, 예수는 대중 봉사를 시작할 때가 거의 되기까지 드는 생활비를 치르기에 넉넉한 돈을 받았다. 그러나 가버나움의 세베대와 이 특별한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을 제쳐놓고, 세상 사람들은 그가 이렇게 여행한 것을 결코 알지 못했다. 가족은 그가 이 시간을 알렉산드리아에서 공부하면서 보냈다고 언제나 믿었다. 예수는 이 생각이 결코 옳다 하지 않았고 그러한 오해를 드러내놓고 부인하지도 않았다.
134:1.3 (1483.5) 나사렛에서 몇 주 머무르는 동안, 예수는 가족과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아우 요셉과 함께 수선소에서 얼마큼 시간을 보냈지만, 대체로 마리아와 룻에게 주의를 쏟았다. 룻은 그때 거의 열다섯 살이었고, 이때가 룻이 젊은 여인이 된 뒤에 처음으로 누이와 길게 이야기한 기회였다.
134:1.4 (1484.1) 시몬과 유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예수의 찬성이 없이 그렇게 하기 싫어했다. 따라서 이 일을 미루었고 맏형이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비록 모두가 대부분의 일에 야고보를 가장(家長)으로 여겼어도 결혼에 관한 문제에서는 예수의 축복을 바랐다. 그래서 시몬과 유다는 이 해, 서기 24년 3월초에 쌍 결혼식을 올렸다. 나이 든 아이들은 이제 다 결혼했고 오직 막내 룻이 마리아와 함께 집에 남았다.
134:1.5 (1484.2) 예수는 가족의 개별 식구들과 함께 아주 정상으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모두 함께 모였을 때 그는 너무 할 말이 없었고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끼리 그에 대하여 한마디 논평하였다. 마리아는 맏아들의 특별히 이상한 이 행동에 특히 불안해하였다.
134:1.6 (1484.3) 예수가 나사렛을 떠나려고 준비하고 있을 무렵에 그 도시를 지나치고 있던 어느 큰 카라반의 안내자가 극심하게 앓게 되었다. 예수는 언어에 능통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자리를 대신하겠다고 자청했다. 이 여행이 1년 동안 자리를 비우는 것을 필요하게 만들 터이고, 아우들이 모두 결혼했고 어머니가 집에서 룻과 함께 살고 있었으므로 예수는 가족 회의를 열고 그 자리에서 바로 얼마 전에 야고보에게 준 집에서 살도록 어머니와 룻이 가버나움으로 갈 것을 제안하였다. 따라서 예수가 카라반과 함께 떠난 며칠 뒤에 마리아와 룻은 가버나움으로 이사했고 거기서 그들은 예수가 마련해 준 집에서 마리아의 여생 동안 살았다. 요셉과 그 가족은 옛 나사렛 집으로 이사했다.
134:1.7 (1484.4) 이 해는 사람의 아들의 정신적 체험에서 특별한 몇 해 중에 하나였다. 인간 지성과 깃드는 조절자 사이에 기본적 조화를 이룩하는 데 큰 진전이 있었다. 조절자는 멀지 않은 앞날에 닥칠 큰 사건들을 위하여 생각을 다시 정리하고 머리를 연습시키는 일에 활발하게 들어갔다. 예수의 인격은 세계를 향한 그의 태도에 큰 변화가 생기는 것을 위하여 준비하고 있었다. 이때는 막간의 시절이었고, 사람으로 보이는 하나님으로서 일생을 시작하고 하나님으로 보이는 사람으로서 땅에서 생애를 마치려고 이제 준비하는 그 존재가 거치는 과도기였다.
2. 카스피까지 가는 카라반 여행
134:2.1 (1484.5) 카스피 바다 지역까지 가는 카라반 여행 길에 예수가 나사렛을 떠난 것은 서기 24년 4월 1일이었다. 예수가 안내자로서 함께했던 그 카라반은 예루살렘에서 다마스커스와 우르미아 호수의 길로, 아씨리아ㆍ메디아ㆍ파르티아를 거쳐서, 카스피 바다의 남동 지역까지 가고 있었다. 이 여행에서 돌아오는 데 만 1년이 걸렸다.
134:2.2 (1484.6) 예수에게 이 카라반 여행은 탐구하고 몸소 봉사하는 또 다른 모험이었다. 카라반 일행―승객, 보초, 낙타 운전수―와 그는 흥미 있는 체험을 겪었다. 카라반이 지나간 길을 따라서 수십 명의 어른과 아이들이 예수와 접촉한 결과로 더욱 값진 인생을 살았고, 이들에게 그는 평범한 카라반의 비범한 안내자였다. 그가 몸소 수고한 이 기회를 즐긴 사람들이 모두 이 때문에 이익을 얻지는 않았지만 그를 만나고 그와 이야기를 나눈 자들의 대다수는 자연스러운 여생에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
134:2.3 (1484.7) 모든 세계 여행 가운데 이 카스피 바다 여행은 예수를 동양에 가장 가깝게 데려갔고, 극동 민족들에 대한 이해를 높여 주었다. 그는 홍인종을 제외하고, 유란시아에 남아 있는 각 종족과 가깝게, 친히 접촉했다. 이 다양한 종족과 혼합 민족 각자에게 몸소 봉사하는 것을 그는 똑같이 기뻐했고, 이들은 모두 그가 가져온 생명의 진리를 쉽게 받아들였다. 극서로부터 온 유럽 사람과 극동에서 온 아시아 사람들은 똑같이, 희망과 영생을 전하는 그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였고 그들 가운데 무척 인자하게 실천한 일생, 사랑으로 섬기고 영적 봉사를 베푸는 일생에 똑같이 영향을 받았다.
134:2.4 (1485.1) 모든 면에서 그 카라반 여행은 성공이었다. 이것은 예수의 인간 생활에서 아주 흥미 있는 사건이었는데, 그가 이 해에 경영자 자격으로서 활동했고 그에게 맡겨진 물질에 대하여, 그리고 카라반 일행을 구성하는 여행자들의 안전한 인도를 책임졌기 때문이다. 그는 매우 충실하게, 능률 있게, 지혜롭게, 여러 가지 임무를 이행하였다.
134:2.5 (1485.2) 카스피 지방으로부터 돌아오는 길에 예수는 우르미아 호수에서 카라반의 지휘를 그만두었고, 거기서 2주 조금 넘게 머물렀다. 나중에 어느 카라반과 함께 승객으로서 다마스커스로 돌아갔는데, 거기서 낙타의 주인들은 그에게 남아서 수고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 제안을 물리치고 그 카라반 행렬과 함께 가버나움까지 줄곧 여행했고, 서기 25년 4월 1일에 도착했다. 그는 이제 더 나사렛을 집으로 여기지 않았다. 가버나움이 예수와 야고보ㆍ마리아ㆍ룻의 집이 되었다. 그러나 예수는 결코 다시 가족과 함께 살지 않았다. 가버나움에 있을 때 그는 세베대의 집에 거처를 정하였다.
3. 우르미아 강의
134:3.1 (1485.3) 카스피해로 가는 길에, 예수는 우르미아 호수의 서쪽 물가에 있는 옛 페르시아 도시 우르미아에서, 쉬고 기운을 되찾으려고 며칠 동안 멈추었다. 우르미아 가까이 호숫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여러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에는 큰 건물―강의용 원형 극장―이 자리잡았고 이것은 “종교의 정신”에 바쳐진 것이었다. 이 건물은 정말로 종교 철학의 전당(殿堂)이었다.
134:3.2 (1485.4) 우르미아의 시민인 어느 부유한 상인과 세 아들이 이 종교의 전당을 세웠다. 이 사람은 심보이톤이었고 그 선조들 가운데는 많은 다른 민족이 있었다.
134:3.3 (1485.5) 이 종교 학교에서 강의와 토론은 주중에 아침마다 10시에 시작되었다. 오후 수업 시간은 3시에 시작했고 저녁 토론은 8시에 열렸다. 심보이톤이나 세 아들 중의 하나가 이 강의ㆍ논의ㆍ토론 시간에 언제나 사회(司會)를 보았다. 이 독특한 종교 학교의 창시자는 자신의 종교 관념을 밝히지 않고서 살다가 죽었다.
134:3.4 (1485.6) 여러 기회에 예수는 이 토론에 참가했다. 심보이톤은 그가 우르미아를 떠나기 전에, 예수가 돌아오는 여행 길에 그들과 함께 2주 동안 머무르고, “사람이 형제”인 것에 대하여 스물네 번 강의하고, 특히 그 강의에 대하여,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람이 형제인 것에 대하여 질문하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저녁 시간을 열두 차례 진행하도록 주선했다.
134:3.5 (1485.7) 이러한 주선에 따라서, 예수는 돌아오는 여행 길에 멈추어서 이 여러 강연을 베풀었다. 이것은 유란시아에서 주의 모든 가르침 가운데 가장 체계 있고 공식적인 것이었다. 사람이 형제인 것에 관한 이 강의와 토론에 담겨 있는 것만큼, 이전이나 이후에 결코 한 주제에 대하여 그렇게 많이 말씀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 여러 강연은 “하나님의 나라”와 “사람의 나라”에 대한 것이었다.
134:3.6 (1486.1) 이 종교 철학의 전당에서 교사진은 서른이 넘는 종교와 종파를 대표하였다. 각 종교 집단이 이 선생들을 선택하고 지원하고 전적으로 인가하였다. 이 시절에 그 교직원에 선생이 75명쯤 있었는데, 그들은 여러 오두막에서 살았으며, 각 오두막은 약 열두 사람에게 숙소를 제공하였다. 초승달이 뜰 때마다 이 집단은 제비를 뽑아서 교체되었다. 아량 없는 태도, 싸우기 좋아하는 정신, 또는 공동체의 순조로운 운영에 간섭하는 어떤 다른 경향을 보여도 그 위반하는 선생은 재빨리, 즉결로 해임되곤 하였다. 그는 예식도 없이 쫓겨났고 교대하려고 기다리는 사람이 바로 그 자리에 임명되곤 하였다.
134:3.7 (1486.2) 이 여러 종교의 선생들은 이 생명과 다음 생명의 근본적인 것에 관하여 그들의 종교가 얼마나 비슷한가를 보여주려고 크게 노력했다. 이 교사진에 자리를 얻기 위하여 인정해야 하는 신조(信條)가 꼭 하나 있었는데, 선생은 누구나 하나님―어떤 종류의 최고의 신―을 인정하는 한 종교를 대표해야 했다. 직원 가운데 조직을 가진 어떤 종교도 대표하지 않는 독립된 선생이 다섯 명 있었고, 그러한 독립된 선생으로서 예수는 그들 앞에 나타났다.
134:3.8 (1486.3) [우리 중도자들이 우르미아에서 예수가 하신 강연의 요약을 처음에 준비했을 때, 이 가르침을 유란시아 계시에 넣는 것이 지혜로운가에 대하여 교회 세라핌과 진보 세라핌들 사이에 의견 차이가 생겼다. 20세기에 종교와 인간의 정부를 지배하는 조건은 예수 시절의 조건과 너무 달라서, 우르미아에서 주가 강연한 것을, 이 여러 세상 직무가 20세기에 존재하는 대로, 하나님의 나라와 사람의 나라 문제들에 적응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이 행성 정부를 담당하는 두 세라핌 집단이 만족하기까지 우리는 결코 주의 가르침에 대한 진술문을 작성할 수 없었다. 마침내, 유란시아에서 20세기 종교 및 정치 조건에 맞게 적응한 주의 우르미아 가르침에 대하여 우리의 견해를 준비하라고 계시 위원회의 멜기세덱 의장이 우리 가운데 세 명으로 된 위원회를 임명했다. 따라서 우리 2차 중도자(中道者) 세 명은 예수의 가르침을 그렇게 조정하는 일을 마쳤고, 오늘날의 세계 조건에 우리가 적용하고 싶은 대로 그가 발표한 말씀을 다시 진술하고, 계시 위원회의 멜기세덱 의장이 편집한 뒤에 그대로 이제 이 진술문을 발표한다.]
4. 통치권―신과 인간의 통치권
134:4.1 (1486.4) 사람이 형제인 것은 하나님이 아버지인 것에 기초를 둔다. 하나님의 가족은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유래한다―하나님은 사랑이다. 아버지 하나님은 신답게 자녀들 모두를 사랑한다.
134:4.2 (1486.5) 하늘나라, 곧 신의 정부(政府)는 신이 통치권을 가진 사실에 기초를 둔다―하나님은 영이다. 하나님이 영이니까 이 나라는 영적인 나라이다. 하늘나라는 물질이 아니요 단지 지적인 것도 아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영적 관계이다.
134:4.3 (1486.6) 다른 종교들이 아버지 하나님이 영적 통치권을 가졌음을 인정하면 모든 그러한 종교는 평화롭게 남아 있을 것이다. 한 종교가 자체가 어떤 면에서 모든 다른 종교보다 우수하다, 그리고 다른 종교들을 다스릴 독점 권한을 소유한다고 가정할 때에야 그러한 종교는 주제넘게 다른 종교들에게 관용을 보이지 않거나, 감히 다른 종교의 신자들을 박해할 것이다.
134:4.4 (1487.1) 모든 종교가 기꺼이 모든 교회 권한을 온전히 벗어버리고, 그들이 영적 통치권을 가졌다는 모든 개념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한, 종교적 평화―형제 정신―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 하나님 홀로 영 군주이다.
134:4.5 (1487.2) 모든 종교가 모든 종교적 통치권을 어떤 초인간 수준에, 바로 하나님에게 넘겨 주는 데 찬성하지 않는 한, 종교 전쟁을 치르지 않고서 종교들 사이에 평등을 (종교적 자유를) 얻을 수 없다.
134:4.6 (1487.3)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하늘나라는 (반드시 획일성이 아니라) 종교의 화합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러한 종교적 신자들로 이루어진 모든 종교 집단이, 어떤 개념의 교회 권한―종교적 통치권―에도 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134:4.7 (1487.4) 하나님은 영이요 하나님은 그의 영 자아의 분신(分身)을 사람의 마음 속에 거주하라고 주신다. 영적으로, 만민은 평등하다. 하늘나라에는 카스트와 계급, 사회 계층과 경제 집단이 전혀 없다. 너희는 모두 형제이다.
134:4.8 (1487.5)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의 영 통치권을 너희가 간과하는 순간에, 어느 한 종교가 그것이 다른 종교들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하기 시작할 것이다. 다음에 땅에서 평화와 사람들 사이에 선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의견 차이와 반박, 아니 종교 전쟁까지도, 적어도 신자들 사이에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134:4.9 (1487.6) 자신들이 동등하다고 여기는 자유 의지 존재들은, 어떤 초월 통치권, 그들 위에 있는 어떤 권한의 지배를 받는다고 서로 인정하지 않는 한, 머지 않아 다른 개인과 집단을 다스릴 권력과 권한을 얻으려고 자기 능력을 시험해볼 유혹을 받는다. 위에서 지배하는 초월 통치권의 어떤 영향력을 서로 인정할 경우를 제외하고, 평등 개념은 결코 평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134:4.10 (1487.7) 우르미아 종교가들은 비교적 평화롭고 조용한 가운데 함께 살았는데, 어떤 개념의 종교적 통치권도 완전히 포기했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모두가 군주인 하나님을 믿었다. 사회적으로, 충분하고 도전할 수 없는 권한은 주관하는 우두머리―심보이톤―에게 있었다. 어떤 선생이 동료 선생들에게 주인 행세를 하려고 가정한다 하더라도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그들은 잘 알았다. 각 종교 집단이 신의 총애를 받는다, 선택받은 민족이다, 종교적 통치권을 가졌다는 개념을 모두 아낌없이 던져 버리기까지, 유란시아에서 오래 가는 종교적 평화는 전혀 있을 수 없다. 오로지 아버지 하나님이 가장 높을 때, 사람들은 종교적으로 형제가 되고, 땅에서 종교적 평화를 누리면서 함께 살 것이다.
5. 정치적 통치권
134:5.1 (1487.8) [하나님이 통치권을 가졌다는 주의 가르침이 진리이지만―세계 종교들 사이에서 주에 관한 종교가 나중에 나타남으로 단지 까다롭게 되었을 뿐이다―정치적 통치권에 관하여 그가 발표한 말씀은 지난 1천9백여 년 동안에 국가 생활의 정치적 진화로 인하여 대단히 복잡해졌다. 예수의 시절에 세계적 강대국이 오로지 둘―서양에 로마 제국과 동양에 한(漢) 제국―이 있었다. 이 나라들은 파르티아 왕국, 그리고 중간에 카스피와 투르키스탄 지역의 다른 국가들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 발표에서 정치적 통치권에 관하여 우르미아에서 주가 가르친 내용으로부터 더욱 널리 벗어나며, 동시에 그러한 가르침이 그리스도 이후 20세기에 정치적 통치권이 어떻게 진화할지 모르는 특히 위급한 단계에 적용되는 대로, 그러한 가르침의 취지를 그리려고 시도한다.]
134:5.2 (1487.9) 국가가 무제한 통치권을 가졌다는 허망한 개념에 국가들이 집착하는 한, 유란시아에서 전쟁은 결코 그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사는 세계에는 오직 두 수준의 상대적 통치권이 있으니, 즉 개별 필사자의 영적 자유 의지, 그리고 인류 전체의 집합 통치권이다. 개별 인간 수준과 인류 전체 수준 사이에 있는 어떤 집합과 연합도 상대적ㆍ일시적이며, 개인과 행성의 대합계―사람과 온 인류―의 행복ㆍ복지ㆍ진보의 질을 높이는 한, 가치가 있다.
134:5.3 (1488.1) 종교 선생들은 하나님의 영적 통치권이, 사이에 개재하는 중간 단계의 모든 영적 충성 행위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한다. 언젠가 국가 통치자들은 최고자들이 사람의 나라에서 다스린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134:5.4 (1488.2) 사람의 나라에서 최고자들의 이러한 통치는 특별 혜택을 받는 어느 필사자 집단의 특별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선택된 민족”과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최고자, 즉 위에서 정치적 진화를 다스리는 자들의 통치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최다수에게, 최장(最長) 기간에, 최대의 이익을 도모하도록 고안된 통치이다.
134:5.5 (1488.3) 통치권은 권력이요, 권력은 조직함으로 자란다. 정치 권력을 가진 조직이 이렇게 성장하는 것은 좋고 적당하며, 그런 조직이 인류 전체의 늘 확대되는 부분들을 포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정치 조직들의 성장은 정치 권력의 자연스러운 초기 조직―가족―그리고 정치적 성장의 마지막 성취―온 인류의 정부, 온 인류가 다스리고 온 인류를 위한 정부―사이의 어떤 단계에도 문제를 만들어낸다.
134:5.6 (1488.4) 가족 집단에 있는 부모의 권력을 비롯하여, 가족들이 합쳐 같은 피를 가진 씨족을 이룸에 따라서, 정치적 통치권은 조직함으로 발달하며, 이 씨족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부족 단위로―핏줄을 뛰어넘은 정치 집단으로―뭉치게 된다. 다음에 무역ㆍ상업ㆍ정복을 통해서 부족들은 한 나라로서 연합되며, 한편 때때로 제국이 여러 나라를 통일한다.
134:5.7 (1488.5) 작은 집단에서 더 큰 집단으로 통치권이 넘어감에 따라서, 전쟁이 줄어든다. 다시 말해서, 작은 나라들 사이에 사소한 전쟁이 줄어든다. 그러나 통치권을 행사하는 나라들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 큰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당장에, 온 세계를 탐험하고 차지했을 때, 나라들의 수가 적고 힘세고 강력할 때, 통치권을 가졌다고 생각되는 이 큰 나라들이 경계선에서 닿게 될 때, 오직 대양(大洋)이 나라들을 분리할 때, 무대는 대전, 세계 전쟁을 위하여 준비될 것이다. 싸움을 일으키고 궁극에 전쟁하지 않고는 이른바 통치권을 가진 나라들이 교제할 수 없다.
134:5.8 (1488.6) 가족으로부터 인류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통치권의 진화에서 생기는 어려움은 사이에 개재하는 모든 수준에서 나타나는 타성이자 저항에 있다. 때때로 가족들은 씨족에 항거했고, 한편 씨족과 부족들은 가끔 그 영토를 가진 국가의 통치권을 뒤엎으려 하였다. 정치 조직에서 이전에 개발된 “임시 발판 단계”는 정치적 통치권에서 새롭고 전진하는 진화를 하나하나 저지하고 방해한다 (그리고 언제나 방해해 왔다). 그리고 이것이 참말이니, 일단 일으키면, 인간의 충성심은 바꾸기 힘들기 때문이다. 부족의 진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바로 그 충성심은 초월 부족―영토가 있는 국가―의 형성을 어렵게 만든다. 영토가 있는 국가의 진화를 가능하게 하는 바로 그 충성심(애국심)은 온 인류의 정부가 진화로 생성되는 것을 엄청나게 까다롭게 만든다.
134:5.9 (1488.7) 처음에 가족 안에서 개인이, 다음에 부족 및 더 큰 집합과 가지는 관계에서 가족과 씨족들이, 자결주의를 포기함으로 정치적 통치권이 생긴다. 작은 데서부터 항상 더 큰 정치 조직으로 자결(自決)을 이렇게 점진적으로 이양하는 것은 명(明) 나라와 모굴 왕조가 세워진 뒤로, 동양에서 대체로 줄어들지 않고 진행되어 왔다. 서양에서 이것은 1천 년이 넘도록, 바로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진행되었고, 이때 유럽에서 수많은 작은 집단이 사라졌던 정치적 통치권을 다시 확립함으로 유감스러운 역행(逆行) 운동이 이 정상 경향을 일시 거꾸로 돌이켰다.
134:5.10 (1489.1) 이른바 통치권을 가진 국가들이 그 통치권을 사람의 형제 단체―즉 인류의 정부―의 손에 총명하게 완전히 내어주기까지, 유란시아는 오래 가는 평화를 누리지 못할 것이다. 국제주의―국제 연맹―은 결코 인류에게 영구한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 나라들의 세계적 연방들이 작은 전쟁을 효과적으로 막고 작은 나라들을 만족스럽게 통제할 것이다. 그러나 그 연방들은 세계 전쟁을 방지하거나, 가장 강력한 정부 셋이나 넷, 다섯을 통제하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충돌이 일어날 때, 이 강대국들 가운데 하나가 그 연맹에서 탈퇴하고 전쟁을 선포할 것이다. 국가가 통치권을 가졌다는 망상(妄想) 바이러스에 전염되어 있는 한, 나라들이 전쟁터에 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국제주의는 올바른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디딘 것이다. 국제 경찰단은 많은 작은 전쟁을 방지하겠지만, 대전쟁, 땅에서 큰 군사 정부들 사이에 생기는 충돌을 방지하는 데 효력이 없을 것이다.
134:5.11 (1489.2) 참으로 통치권을 가진 국가(강대국)의 수가 줄어드는 데 따라서, 인류 정부의 기회와 필요가 늘어난다. 정말로 통치권을 가진 (큰) 강국들이 겨우 몇 있을 때, 민족(제국)의 우위를 얻으려고 생사를 건 싸움을 시작하든지, 아니면 통치하는 어떤 특권을 자진해서 포기함으로, 온 인류를 다스리는 참된 통치권의 시작으로서 쓰일 핵심, 국가를 초월하는 권력의 필수 핵심을 창조해야 한다.
134:5.12 (1489.3) 이른바 통치권을 가진 모든 국가가 전쟁을 수행하는 권한을 온 인류의 대표 정부에게 양보할 때까지, 평화는 유란시아에 오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 통치권은 세계의 여러 민족이 태어날 때부터 가진 것이다. 유란시아의 모든 민족이 한 세계 정부를 창조할 때, 그들은 그러한 정부를 통치자로 만들 권한과 힘이 있다. 그러한 대표적 또는 민주적 세계 권력이 지구에서 세계의 육군ㆍ해군ㆍ공군을 통제할 때, 땅에 평화가 있고 사람들 사이에서 선의가 지배할 것이다―그러나 그때까지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134:5.13 (1489.4) 19세기와 20세기의 중요한 예를 들자: 아메리카 연방의 48주는 오랫동안 평화를 누려왔다. 자기들끼리 이제 더 전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통치권을 연방 정부에게 넘겨주었고 투쟁의 판결을 통해서, 자결의 망상에 대한 주장을 모두 버렸다. 각 주가 그 내부 사무를 규제하지만, 외교 관계, 관세, 이민, 군사(軍事) 또는 주 사이의 상업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개별 주(州)도 시민권 문제에 관여하지 않는다. 48주는 오직 연방 정부의 통치권이 어떤 면에서 위협을 받을 때에야 전쟁의 상처를 입는다.
134:5.14 (1489.5) 이 48주는 통치권과 자결(自決), 이 두 가지 궤변을 버렸고, 주 사이에 평화와 평안을 누린다. 마찬가지로 유란시아의 나라들은 각자의 통치권을 세계 정부의 손에―즉 사람의 형제 단체의 통치권에―자유롭게 양보할 때 비로소 평화를 누릴 것이다. 인구가 많은 뉴욕주나 큰 텍사스주와 똑같이, 작은 로드 아이랜드주가 미국 국회에 상원(上院) 의원 두 명을 가진 것처럼, 이 세계 국가에서 작은 나라들은 큰 나라만큼 강력해질 것이다.
134:5.15 (1490.1) 이 48주(州)의 제한된 (주) 통치권은 사람들이, 사람들을 위하여 만들었다. 아메리카 연방이 가진, 주를 초월하는 (국가) 통치권은 이 여러 주 가운데 최초의 13주가 자체의 이익을 위하여,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여 창조하였다. 언젠가 행성의 인류 정부의 초국가 통치권을 여러 나라가 비슷하게, 자체의 이익을 위하여,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창조할 것이다.
134:5.16 (1490.2) 시민들은 정부의 이익을 위하여 태어나지 않는다. 정부는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여 창조되고 고안되는 조직이다. 온 인류에게 통치권을 주는 정부가 나타나지 못하면, 정치적 통치권의 진화에 끝이 있을 수 없다. 모든 다른 통치권은 상대적 가치가 있고, 중간 단계의 의미가 있으며, 하등 지위를 가진다.
134:5.17 (1490.3) 과학의 진보와 함께, 거의 종족 자살이 될 때까지 전쟁은 갈수록 더 세상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사람들이 인류의 정부를 기꺼이 세우고, 영구한 평화의 복을 비로소 누리고, 사람들 사이에 선의―세계적 선의―로 얻은 평안 속에서 번성하기까지, 몇 차례나 세계 전쟁을 치러야 하고, 얼마나 많은 국가 연맹이 실패해야 하는가?
6. 법과 자유와 통치권
134:6.1 (1490.4) 한 사람이 자유―해방―을 몹시 바라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자유를 동경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자유를 사랑하는 그러한 필사자 집단은 각 사람에게 같은 정도의 자유를 주고, 동시에 모든 동료 인간에게 똑같은 정도의 자유를 보호할 그러한 법ㆍ규칙ㆍ규제에 복종하지 않고는 평화롭게 함께 살 수 없다. 한 사람이 절대로 자유롭게 되려면 또 한 사람이 절대로 노예가 되어야 한다. 자유는 사회ㆍ경제ㆍ정치 면에서 상대적 성질을 가진 것이 참말이다. 자유는 법을 집행함으로 가능하게 된 문명의 선물이다.
134:6.2 (1490.5) 종교는 사람이 형제임을 깨닫는 것을 영적으로 가능하게 하지만, 인류의 정부로 하여금 인간의 행복 및 효율성과 같은 목표와 관련하여 사회ㆍ경제ㆍ정치 문제를 단속하기를 요구할 것이다.
134:6.3 (1490.6) 세계의 정치적 통치권을 한 집단의 민족 국가들이 나누어 가지고 부당하게 차지하는 한, 전쟁이 있고, 전쟁의 소문이 있을 것이다―나라와 나라가 대항하여 일어날 것이다. 잉글랜드ㆍ스콧트랜드ㆍ웨일즈는 각자의 통치권을 버리고 연합 왕국에 맡겨둘 때까지 언제나 서로 싸우고 있었다.
134:6.4 (1490.7) 또 하나의 세계 전쟁은 이른바 통치권을 가진 국가들에게 어떤 종류의 연방을 형성하고, 이처럼 작은 전쟁, 작은 나라들 사이에 전쟁을 막는 장치를 창조하는 것을 가르칠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정부가 창조되기까지 세계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세계적 통치권이 세계 전쟁을 막을 것이다―그 외에 아무것도 그렇게 할 수 없다.
134:6.5 (1490.8) 아메리카의 자유로운 48주는 평화로이 함께 산다. 늘 전쟁하는 유럽 국가들에서 사는 여러 국민과 종족 모두가 이 48주의 시민들 사이에 끼어 있다. 이 미국 사람들은 넓은 전 세계에서 거의 모든 종교ㆍ교파ㆍ종파들을 대표하며 그래도 여기 북 아메리카에서 평화로이 함께 산다. 이 48주가 통치권을 포기하고, 자결 권리라고 생각된 모든 개념을 버렸기 때문에 이 모두가 가능하게 되었다.
134:6.6 (1490.9) 무장이나 비무장의 문제가 아니다. 징병 또는 자원 군대 복무를 채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세계 평화를 유지하는 이 문제와 상관이 없다. 모든 형태의 기계적 현대 무기와 모든 종류의 폭발물을 강대국으로부터 빼앗는다면 국가의 통치권이 신(神)이 준 권리라는 망상에 달라붙는 한, 주먹과 돌과 곤봉을 가지고 싸울 것이다.
134:6.7 (1491.1) 전쟁은 크고 끔직한, 인간의 병이 아니다. 전쟁은 증상이요 결과이다. 진짜 병은 국가의 통치권이라는 바이러스이다.
134:6.8 (1491.2) 유란시아 국가들은 진정한 통치권을 소유한 적이 없다. 결코 세계 전쟁의 참화와 황폐를 겪지 않도록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통치권을 가진 적이 없다. 인류의 세계 정부를 창조하는 것은 국가들이 통치권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진실하고 진정하고 오래 가는 세계 통치권을 실제로 창조하는 것이며, 그때부터 그들을 온갖 전쟁으로부터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 지역 사무는 지역 정부가, 나라의 사무는 국가 정부가, 국제 사무는 세계 정부가 관리할 수 있다.
134:6.9 (1491.3) 세계의 평화는 조약, 외교, 대외 정책, 연합군, 힘의 균형으로 또는 민족주의를 부르짖는 독립 국가들을 어떤 다른 종류의 임시 손재주로 조종하여 유지될 수 없다. 세계 법이 생기고 이를 세계 정부가―온 인류의 통치권이―집행해야 한다.
134:6.10 (1491.4) 세계 정부 밑에서 개인은 훨씬 더 많은 자유를 누릴 것이다. 오늘날 강대국 시민들은 거의 강제로 세금을 물고 규제와 통제를 받는다. 국가의 정부들이 국제 사무에 관한 그들의 통치권을 기꺼이 세계 정부의 손에 넘길 때, 현재 이처럼 개인의 자유를 간섭하는 일이 많이 사라질 것이다.
134:6.11 (1491.5) 세계 정부 밑에서 국가 집단들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부르짖는 개인의 자유를 실현하고 누릴 진정한 기회를 얻을 것이다. 자결의 허위는 그칠 것이다. 돈과 무역의 세계적 규제와 더불어 새로운 세계적 평화 시대가 다가올 것이다. 곧 세계적 언어가 진화될지 모르고, 적어도 언젠가 세계적 종교를―아니면 세계적 관점을 가진 종교들을―가질 희망이 얼마큼 생길 것이다.
134:6.12 (1491.6) 집단의 안전은 그 집단이 온 인류를 포함할 때까지, 결코 평화를 가져올 수 없을 것이다.
134:6.13 (1491.7) 대표로 다스리는 인류 정부의 정치적 통치권은 땅에서 오래 가는 평화를 가져 오고, 사람의 영적 형제 정신은 언제까지나 모든 사람 사이에 선의를 보장할 것이다. 땅에서 평화,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선의를 실현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하나도 없다.
* * *
134:6.15 (1491.8) 심보이톤이 죽은 뒤에, 그 아들들은 평화로운 교사진을 유지하는 데 큰 어려움에 부닥쳤다. 우르미아 교사진에 들어간 후일의 기독교 선생들이 더 지혜를 보이고 더 관대했더라면, 예수의 가르침의 영향은 훨씬 더 컸을 것이다.
134:6.16 (1491.9) 심보이톤의 맏아들은 필라델피아에 있던 아브너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브너가 선택한 선생들은 무척 유감스럽게도 완고하고 타협하지 않는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이 선생들은 그들의 종교가 다른 신앙을 지배하게 만들려고 애썼다. 그들은 바로 예수가, 자주 입에 오르내리던 카라반 안내자의 강연을 하셨다는 것을 결코 짐작하지 못했다.
134:6.17 (1491.10) 교사진에서 혼란이 커지자 세 형제는 재정 지원을 그만두었고, 5년 뒤에 학교는 문을 닫았다. 나중에 그 학교는 미트라 신전으로서 다시 열렸고, 결국에는 그들의 질탕한 한 잔치와 연관하여 불에 타버렸다.
7. 서른하나 되던 해 (서기 25년)
134:7.1 (1492.1) 카스피 바다로 가는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예수는 그의 세계 여행이 거의 끝났음을 알았다. 팔레스타인 바깥으로 겨우 한 번 더 여행했는데, 시리아 여행이었다. 가버나움에 잠깐 들린 뒤에 나사렛으로 갔고, 방문하려고 며칠 동안 멈추었다. 4월 중순에 나사렛을 떠나서 티레를 향하였다. 거기서부터 계속 북쪽으로 여행하고 며칠 동안 시돈에서 묵었지만 목적지는 안티옥이었다.
134:7.2 (1492.2) 이 해는 예수가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를 통하여 혼자서 돌아다니던 해였다. 여행하던 이 해 내내, 그 나라의 다른 지역에서, 나사렛 목수, 가버나움의 조선공, 다마스커스 서기관, 알렉산드리아의 선생, 그는 이렇게 여러 이름으로 알려졌다.
134:7.3 (1492.3) 안티옥에서 사람의 아들은 일하고, 관찰하고, 공부하고, 방문하고, 봉사하면서 두 달이 넘도록 살았다. 그동안 계속, 사람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인간으로 존재하는 환경에 반응하는가 배웠다. 이 기간의 3주 동안, 그는 텐트 만드는 사람으로서 일했다. 이 여행에서 방문한 어느 다른 곳보다, 그는 안티옥에서 더 오래 남아 있었다. 10년 뒤에, 사도 바울이 안티옥에서 전도하면서, 추종자들이 다마스커스 서기관의 교훈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그의 제자들이 바로 주의 목소리를 듣고 그 가르침을 귀담아들었음을 조금도 몰랐다.
134:7.4 (1492.4) 안티옥에서부터 예수는 남쪽으로 바닷가를 따라서 케자리아로 갔고 거기서 몇 주 동안 묵었으며, 계속해서 바닷가를 따라 요파로 내려갔다. 요파로부터 내륙으로 잠니아ㆍ아쉬돗ㆍ가자까지 여행하였다. 가자로부터 내륙의 길을 타고 비엘세바까지 가서, 거기서 한 주 동안 남아 있었다.
134:7.5 (1492.5) 그리고 나서 남모르게 혼자서 예수는 마지막 여행을 떠났고, 팔레스타인의 심장부를 거쳐서 남쪽에 비엘세바로부터 북쪽으로 단까지 갔다. 북쪽으로 가는 이 여행에서 헤브론, 베들레헴 (여기서 그가 태어난 곳을 보았다), 예루살렘 (베다니에 들리지 않았다), 비어롯ㆍ레보나ㆍ시카, 세켐ㆍ사마리아ㆍ게바, 엔가님ㆍ엔도르ㆍ마돈에서 멈추었다. 막달라와 가버나움을 거쳐서 북쪽으로 줄곧 여행했다. 메롬의 물 동쪽을 지나서, 가라타의 길로 단, 곧 케자리아 빌립비로 갔다.
134:7.6 (1492.6) 깃드는 생각 조절자는 이제 사람들의 거처를 버리고 헤르몬산으로 가라고 예수를 이끌었다. 여기서 인간 지성을 통달하는 일을 끝내고 땅에서 여생의 일에 충만히 헌신하는 과제를 마치려는 것이었다.
134:7.7 (1492.7) 이때는 주가 유란시아에서, 땅에서 지낸 일생에서 진기하고 특별한 기간이었다. 또 다른 아주 비슷한 기간은 세례를 받고 난 바로 뒤에, 펠라 가까이 산에서 혼자 있을 때 거친 체험이었다. 헤르몬산에서 혼자 있던 이 기간은 순전히 인간적 생애의 종결, 다시 말해서 그가 필사자로 자신을 수여하는 일이 절차상 종결되었음을 표시한다. 한편 후일에 혼자 지낸 것은 자신 수여의 더욱 신다운 단계가 시작된 것을 표시했다. 예수는 헤르몬산의 비탈에서 여섯 주 동안 하나님과 함께 혼자서 살았다.
8. 헤르몬산에서 머무르다
134:8.1 (1492.8) 케자리아 빌립비 근처에서 얼마 동안 시간을 보낸 뒤에, 예수는 식량을 준비하였다. 짐 나르는 짐승과 티글라스라는 이름의 소년을 구하고 나서, 다마스커스 길을 따라서 가다가, 헤르몬산 기슭의 언덕에, 언젠가 베이트젠이라고 알려진 마을로 들어갔다. 서기 25년 8월 중순 가까이 되어 그는 여기에 본부를 정했다. 식량을 티글라스에게 맡기고 나서 외딴 산비탈을 올라갔다. 티글라스는 산을 향하여, 이 첫날에 해수면 위로 1800미터쯤에 지정된 곳까지 예수를 따라서 올라갔다. 거기서 그들은 돌 무더기 상자를 지었고 그 속에 티글라스는 한 주에 두 번, 먹을 것을 집어넣어야 했다.
134:8.2 (1493.1) 티글라스를 떠난 뒤에, 첫째 날에 예수는 산을 조금만 올라갔고 기도하려고 멈추었다. 다른 일 가운데 아버지에게 수호 세라핌을 “티글라스와 함께 있도록” 돌려보내달라고 요청하였다. 필사자로 존재하는 현실과 싸우는 마지막 투쟁까지 그가 혼자 진행하도록 허락해주기를 청하였다. 그리고 이 요청은 허락되었다. 그를 안내하고 버티게 할 깃드는 조절자만 함께 하고 그는 큰 시험에 들어갔다.
134:8.3 (1493.2) 예수는 산에 있는 동안 아껴서 먹었다. 한 번에 하루나 이틀 동안만 전혀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이 산에서 그가 만난 초인간 존재들, 정신적으로 씨름하고 능력으로 물리친 자들은 실재했다. 그들은 사타니아 체계에서 그의 큰 적이었다. 병든 정신에서 생겨난 환상(幻想)과 현실을 구별할 수 없는 필사자, 허약해지고 굶은 필사자의 지적 변덕에서 생긴 상상의 착각이 아니었다.
134:8.4 (1493.3) 예수는 8월의 마지막 3주와 9월의 첫 3주를 헤르몬산에서 보냈다. 이 몇 주 동안, 정신을 이해하고 인격을 통제하는 여러 수준에 도달하는 필사자의 과제를 마쳤다. 하늘 아버지와 교통하는 이 기간 내내, 깃드는 조절자도 또한 주어진 임무를 마쳤다. 거기서 이 지상의 사람으로서 인간의 목표를 성취했다. 오로지 정신을 조절자와 조율하는 마지막 단계를 마치는 일이 남았다.
134:8.5 (1493.4) 5주가 넘도록 파라다이스 아버지와 끊임없이 친교한 뒤에, 예수는 자신의 성품 뿐 아니라 시공에서 인격이 표현되는 물질 수준을 확실히 뛰어넘었다는 것을 절대로 확신하게 되었다. 그의 신다운 성품이 인간 성품을 지배하는 것을 충분히 믿고, 이를 서슴지 않고 주장하였다.
134:8.6 (1493.5) 산에서 체류가 끝날 때가 가까이 되어, 예수는 사람의 아들로서, 요수아 벤 요셉으로서 사타니아에 있는 적들과 회담을 가지도록 허락해주실 것을 아버지께 요청하였다. 이 요구는 허락되었다. 헤르몬산에서 마지막 주에, 큰 유혹, 즉 우주의 재판이 일어났다. (루시퍼를 대표하는) 사탄, 그리고 반역한 행성 영주 칼리가스티아가 예수와 함께 자리에 있었고 그의 눈에 완전히 보이게 나타났다. 이 “유혹,” 모반한 성격자들의 곡해를 직면하여 인간적 충성심을 재는 이 마지막 시련은 먹을 것이나 성전 뾰족탑이나 주제넘은 행위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 세상의 나라들이 아니라 막강하고 영화로운 우주의 통치권과 상관이 있었다. 너희의 기록에 나타나는 상징은 세상이 유치하게 생각하던 뒤떨어진 시대를 위하여 의도한 것이었다. 후일의 세대들은 헤르몬산에서 그 중대한 날에 사람의 아들이 얼마나 큰 투쟁을 겪었는가 이해해야 한다.
134:8.7 (1493.6) 루시퍼의 밀사들이 내민 여러 제안과 반대 제안에 대하여 예수는 이렇게만 대답하였다: “나의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그리고 너, 반역한 아들아,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이 너를 신답게 재판하기를! 나는 너의 창조자인 아버지이라. 나는 너를 도저히 공정하게 판단할 수 없고 너는 내 자비를 이미 걷어찼느니라. 나는 너를 더 큰 우주의 재판관들이 판결하도록 넘기노라.”
134:8.8 (1494.1) 루시퍼가 제시한 모든 절충안과 임시 방편에 대하여, 육신화로 자신을 수여함에 관하여 내놓은 모든 그러한 허울 좋은 제안에 대하여, 예수는 이렇게 대답했을 뿐이다, “파라다이스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벅찬 시련이 끝났을 때, 떨어져 있던 수호 세라핌이 예수의 옆으로 돌아와서 그를 보살폈다.
134:8.9 (1494.2) 늦은 여름 어느 날 오후, 나무들 사이에 고요한 자연 속에서, 네바돈의 미가엘은 그의 우주를 다스리는, 아무도 도전하지 못하는 통치권을 얻었다. 그날에 시공의 진화 세계에서 필사 육체의 모습을 입고서 육신화된 생명을 한껏 살라고 창조 아들들에게 주어진 과제를 마쳤다. 몇 달 뒤에 세례를 받는 날까지, 이 중대한 업적은 우주에서 발표되지 않았으나 이 모두가 그날, 산에서 정말로 일어났다. 헤르몬산에서 머무르다가 예수가 내려왔을 때, 사타니아에 일어났던 루시퍼 반란과 유란시아에서 칼리가스티아가 탈퇴한 일은 실질적으로 해결되었다. 자신이 지은 우주의 통치권을 얻는 데 요구되는 마지막 대가를 예수는 치렀다. 이 통치권은 그 자체로서 모든 반역자의 지위를 규제하고 앞날의 모든 그러한 봉기를 (언제라도 일어난다면) 단숨에 효과적으로 처리해도 좋다고 확정한다. 따라서 이른바 예수의 “큰 시험”은 그가 세례받기 얼마 전에 일어났고 그 사건 바로 뒤에 일어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134:8.10 (1494.3) 산에서 이 체류를 마쳤을 때, 산을 내려가는 동안에 예수는 먹을 것을 가지고 만날 장소로 올라오는 티글라스를 만났다. 그를 돌려보내며 예수는 다만 이렇게 말했다: “쉬는 시간이 지났느니라. 나는 아버지의 일로 돌아가야 하노라.” 단으로 돌아가는 동안 그는 말이 없었고, 많이 변화된 사람이었다. 단에서 예수는 소년을 보내고 당나귀를 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가 왔던 똑같은 길로, 남쪽으로 가버나움까지 나아갔다.
9. 기다리는 시간
134:9.1 (1494.4) 이제는 여름의 끝이 가까웠고 속죄의 날과 초막 축제가 있을 무렵이었다. 예수는 가버나움에서 안식일 동안에 가족 회의를 열었다. 다음 날 세베대의 아들 요한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하여 떠났고, 호수의 동쪽으로 가서, 게라사를 지나서 요단강 유역으로 내려갔다. 가는 길에 동반자와 얼마큼 이야기하는 동안 요한은 예수에게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을 눈치챘다.
134:9.2 (1494.5) 예수와 요한은 베다니에서 나사로와 그 자매들과 함께 그날 밤을 지내고 이튿날 아침 일찍 예루살렘으로 갔다. 그들은 그 도시 안과 주위에서 거의 3주를 보냈다. 적어도 요한은 그랬다. 여러 날 동안 요한은 예루살렘으로 혼자 갔고, 한편 예수는 근처에 있는 언덕 위를 걸어 다니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영적으로 친교하는 시간을 여러 번 가졌다.
134:9.3 (1494.6) 두 사람은 속죄의 날에 진행되는 엄숙한 예배에 참석했다. 요한은 유대인의 종교 의식 중 어느 날보다 이날의 의식(儀式)에 크게 감명을 받았지만 예수는 생각에 잠긴, 말 없는 구경꾼이었다. 사람의 아들에게 이 연출은 불쌍하고 보기에 딱했다. 모두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성품과 속성을 잘못 나타낸다고 보았다. 이날의 행사는 신이 재판하는 사실과 무한히 자비를 베푼다는 진리의 엉터리 시늉으로 보았다. 아버지의 사랑하는 성품과 우주에서 자비롭게 안내하심에 관하여 참된 진리를 선포하고 싶어 속이 탔지만 충실한 훈계자는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타일렀다. 그러나 그날 밤 베다니에서 예수는 수많은 논평을 하였고, 이것은 요한의 마음을 크게 뒤흔들었다. 요한은 그날 저녁에 그들이 듣는 앞에서 예수가 하신 말씀의 참 중요성을 결코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134:9.4 (1495.1) 예수는 요한과 함께 초막 축제가 있던 주간 내내 남아 있으려고 계획하였다. 이 축제는 온 팔레스타인에서 해마다 있는 휴일이었고 유대인의 휴가철이었다. 비록 예수는 그 절기의 흥겨움에 끼지 않았어도 젊은이와 늙은이들이 태평하고 기쁘게 마음껏 노는 것을 구경하는 동안 그가 기뻐하고 만족해하는 것이 분명하였다.
134:9.5 (1495.2) 축하하는 주간의 한가운데 축제 행사가 끝나기 전에, 예수는 파라다이스 아버지와 교통하기에 더 좋을 듯한 산으로 가서 쉬고 싶다고 말하고 요한을 떠났다. 요한은 함께 갔을 터이지만, 예수는 그가 축제 행사 끝까지 남아 있으라 고집하며 말했다: “네가 사람의 아들의 짐을 질 필요는 없느니라. 도시가 평화롭게 자는 동안 파수꾼만 밤새 지켜야 하느니라.”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베다니 가까이, 산에서 거의 한 주 동안 혼자 지낸 뒤에 그는 가버나움을 향하여 떠났다. 집으로 가는 길에 길보아의 비탈에서 하루 낮과 밤을 혼자 보냈다. 거기는 사울 왕이 목숨을 끊은 곳에서 가까웠다. 가버나움에 도착했을 때 그는 예루살렘에서 요한을 떠났을 때보다 더욱 명랑한 듯하였다.
134:9.6 (1495.3) 다음 날 아침 예수는 소지품이 들어 있는 상자가 있는 곳으로 갔고, 이것은 세베대의 작업장에 남아 있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일하러 나서면서 말했다.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바쁘게 일하는 것이 내게 마땅하도다.” 이듬해 1월까지, 배 작업장에서, 아우 야고보 옆에서 여러 달 동안 일했다. 예수와 함께 일하는 이 기간이 지난 뒤에, 무슨 의심이 떠올라 사람의 아들이 일생에 할 과업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든 상관 없이, 야고보는 예수의 사명에 대한 믿음을 다시는 정말로 송두리째 버리지 않았다.
134:9.7 (1495.4) 배 작업장에서 일하던 이 마지막 기간에, 예수는 몇몇 큰 배의 내부 끝손질을 하느라고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는 손으로 하는 어떤 일에도 수고를 아끼지 않았고 칭찬할 만한 작품을 마쳤을 때 인간적 성취에 만족감을 느끼는 듯하였다. 그는 비록 하찮은 일에 거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어도 어떤 주어진 과업에 필수인 것이 닥치면 공들여 일하는 노동자였다.
134:9.8 (1495.5) 시간이 지나자, 요단강에서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며 설교하는 어떤 요한이라는 사람의 소문이 가버나움에 도착했다. 요한은 이렇게 설교하였다: “하늘나라가 가까웠도다. 뉘우치고 세례를 받으라.” 예루살렘에서 가장 가까운 강 여울에서부터 요한이 요단강 유역을 거슬러 천천히 올라가는 동안, 예수는 이 여러 보고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다음 해, 서기 26년 1월에 펠라에 가까운 점까지 요한이 강을 거슬러 올라올 때까지 예수는 배 만드는 일을 계속하였고, 이때 연장을 내려놓고 외쳤다, “때가 왔도다.” 당장에 그는 세례를 받으려고 요한 앞에 나섰다.
134:9.9 (1495.6) 그러나 예수에게 큰 변화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 땅에서 이리저리 다니는 동안 그가 방문하고 보살폈던 사람들 중에 거의 아무도, 대중을 가르치는 그 선생이 예전에 한 사사로운 개인으로서 알고 사랑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는 것을 후일에 알아보지 못했다. 초기에 은혜를 입은 자들이 그가 나중에 대중을 가르치는 권위 있는 선생의 역할로 나타난 그를 이렇게 알아보지 못한 데는 까닭이 있었다. 여러 해 동안 이 정신과 영(靈)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고 이것은 헤르몬산에서 그 중대한 체류 동안에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