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1 편종교의 참 본질
유란시아 서
제 101 편
종교의 참 본질
(1104.1) 101:0.1 종교는 인간의 체험으로서, 진화하는 야만인의 원시적 두려움에 노예가 된 상태로부터 문명화된 필사자들의 숭고하고 위엄 있는 믿음의 자유에 이르며, 이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임을 뛰어나게 의식한다.
(1104.2) 101:0.2 종교는 진취적인 사회 진화에서 상급 윤리와 도덕성의 조상이다. 그러나 종교는 그런 상태로 단지 도덕적 운동은 아니다. 하지만 종교의 외관상의 사회적 명시는 인간 사회의 윤리적•도덕적 운동력에 힘차게 영향을 받는다. 종교는 반드시 사람의 진화하는 성품에 영감을 주지만, 그것이 그 진화의 비결은 아니다.
(1104.3) 101:0.3 종교, 인격의 확신과 믿음은, 믿지 않는 물질 지성에서 태어난 논리, 피상적으로 모순되는 절망의 논리를 반드시 이길 수 있다. 속에서 나오는 참되고 진정한 목소리가, 바로 “세상으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된 그 빛”이, 정말로 있다. 이 영의 인도하심은 인간의 양심(良心)이 윤리적으로 재촉하는 것과 다르다. 종교적 확신의 느낌은 감정의 느낌보다 더한 것이다. 종교의 확신은 지성의 이치, 아니 철학의 논리조차도 뛰어넘는다. 종교는 믿음이 요, 신뢰요, 확신이다.
(1104.4) 101:1.1 참된 종교는 자연스러운 증명으로 이치를 따지거나 정당성을 밝힐 수 있는 철학적 관념의 체계가 아니며, 오직 신비주의를 낭만적으로 신봉하는 자들이 즐길 수 있는 느낌, 말할 수 없는 무아경(無我境)의 느낌을 환상적으로 신비스럽게 체험하는 것도 아니다. 종교는 논리의 산물이 아니지만, 속에서 볼 때 종교는 무척 이치가 있다. 종교는 인간 철학의 논리로부터 유래하지 않지만, 사람의 한 체험으로서 무척 논리가 있다. 종교는 진화적 기원을 가진 도덕적 존재의 의식 속에서 신성을 체험하는 것이다. 종교는 시간 속에서 영원한 실체들을 맛보는 참된 체험, 아직 육체를 입은 동안에 영적 만족을 깨달음을 나타낸다.
(1104.5) 101:1.2 생각 조절자는 자아를 표현할 특별한 장치가 전혀 없다. 종교적 감정을 받아들이거나 나타내는 신비스러운 종교적 기능이 전혀 없다. 이러한 체험은 사람의 지성에서 자연스럽게 예정된 작용을 통해서 소용이 된다. 그리고 조절자가 항상 깃드는 그 물질 지성과 직접 교통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에 관한 한 가지 설명이 여기에 있다.
(1104.6) 101:1.3 신다운 영은 느낌이나 감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가장 높고 가장 영적으로 변화된 한양신명조생각 영역에서 필사 인간과 접촉한다. 너희를 하나님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너 희의 생각이지, 느낌이 아니다. 신다운 성품은 오로지 지성의 눈으로만 파악될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을 정말로 헤아리고 깃드는 조절자의 소리를 듣는 지성은 순수한 지성이다.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할지니라.” 내면적인 모든 그러한 영적 교통은 영적 통찰력이라 언급된다. 그러한 종교적 체험은, 조절자와 진리의 영이 하나님의 진화하는 아들들의 아이디어와 이상, 통찰력과 영적 노력이 있는 한가운데서, 그것들에 대하여, 작용하는 동안에, 조절자와 진리의 영의 통합된 작용이 사람의 머리에 주는 인상으로부터 생긴다.
(1105.1) 101:1.4 그러면 시각(視覺)이나 느낌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과 통찰력으로 종교는 살고 번성한다. 종교는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거나 독특한 체험을 찾아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류에게 이미 잘 알려진 사실에서 새로운 영적 의미를 찾아내는 데 있다. 가장 높은 종교적 체험은 믿음, 전통, 권한, 이러한 사전(事前) 행위에 달려 있지 않다. 종교는 숭고한 느낌과 순전히 신비스러운 감정의 산물도 아니다. 종교는 차라리 인간 지성 안에 거주하는 영의 영향력과 가지는 체험, 심오하게 깊고 실재하는, 영적 교통의 체험이다. 그러한 체험이 심리학의 용어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한, 종교는 다만 하나님을 믿는 현실을 그러한 순전히 개인적인 체험의 현실로서 겪는 체험이다.
(1105.2) 101:1.5 종교는 물질적 우주론에 관한 합리적 추측에서 생긴 산물이 아니지만, 그런데도 종교는 사람의 지성 체험에서 기원을 가지는 온통 합리적인 통찰력이 만든 작품이다. 종교는 신비스러운 명상으로부터 태어나지 않고, 따로 떨어져 숙고함으로 생기지도 않는다. 하지만 종교는 얼마큼 신비스럽고, 순전히 지적인 이치와 철학 논리의 방식으로서, 언제나 정의를 내릴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참된 종교의 싹은 사람의 도덕 의식의 영토에서 기원을 가지며, 이것은 사람의 영적 통찰력의 성장에서 드러난다. 이 통찰력은 하나님을 갈망하는 필사 지성 속에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생각 조절자가 계시는 결과로서 일어나는 재능, 그 인간 성격의 재질이다.
(1105.3) 101:1.6 믿음은 도덕적 통찰력을 양심적인 가치의 분별과 연합시키며, 선재하는 진화된 의무 감각이 참된 종교의 족보를 완성한다. 종교에서 얻는 체험은 결국 어떤 하나님 의식, 그리고 믿는 인격자가 살아남는다는 의심 없는 확신을 낳는다.
(1105.4) 101:1.7 그러므로 종교적인 열망과 영적 욕구는 겨우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기를 바라도록 이끌 그러한 성질로부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그러한 성품과 힘을 지녀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확신에 깊이 감명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계시의 빛을 받은 결과로서, 진화적 의무와 책임을 느끼는 감각이 사람의 도덕적 성품에 아주 깊은 감명을 주기 때문에,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을 믿지 않을 권리가 없다고 결론을 내리는, 바로 그 지성 위치와 바로 그 혼의 태도에 마침내 다다른다. 깨우치고 단련받은 그러한 개인들이 가진 상급의 지혜, 철학을 뛰어넘는 지혜는 그들에게 궁극에는,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그의 선하심을 불신하는 것은 인간의 지성과 혼 속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깊은 것―신다운 조절자―에 충실하지 않음을 증명하리라는 것을 가르친다.
(1105.5) 101:2.1 종교의 사실은 합리적인 보통 인간들이 겪는 종교적 체험에 온전히 있다. 오직 이 의미에서, 종교가 과학적인 것, 아니 심리학적인 것이라고 언제라도 간주할 수 있다. 계시가 계시라는 증명은 인간이 체험하는 바로 이 사실이다: 계시는 겉보기에 갈라진 여러 자연 과학, 그리고 종교의 신학을 일관성 있고 논리적인 한 우주 철학으로, 즉 과학과 종교, 이 두 가지의 조정되고 단절되지 않은 설명으로 합성한다는 사실이며, 이렇게 지성의 조화와 영의 만족을 창조한다. 그 설명은 인간의 체험에서 어떻게 무한자가 물질 속에서, 지성들과 함께, 영 위에 그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 나가는가 몹시 알고 싶어하는 필사 지성의 물음을 인간의 체험 속에서 대답해 준다.
(1106.1) 101:2.2 이성은 과학의 방법이요, 믿음은 종교의 방법이며, 논리는 철학이 시도하는 기법이다. 지성의 중재하는 작용으로 실체를 이해하고 물질과 영의 관계를 이해하는 과제에 통일을 성취하는 기법을 마련함으로써, 계시는 상물질 관점의 부재를 메워 준다. 참된 계시는 결코 과학을 부자연스럽게, 종교를 부조리하게, 또는 철학을 비논리로 만들지 않는다.
(1106.2) 101:2.3 과학을 연구함으로 이성은 자연을 통해서 첫째 원인으로 돌아가도록 이끌 수도 있지만, 과학의 첫째 원인을 구원의 하나님으로 변화시키는 데는 종교적 믿음이 필요하다. 계시는 더 나아가서, 그러한 믿음, 그러한 영적 통찰력을 정당화하는 데 요구된다.
(1106.3) 101:2.4 인간이 살아남는 것을 보살피는 하나님을 믿는 데는 두 가지 기본적 이유가 있다:
(1106.4) 101:2.5 1. 인간의 체험, 개인적 확신, 깃드는 생각 조절자가 시작하여 어떻게든 머리에 떠올린 희망과 신뢰.
(1106.5) 101:2.6 2. 진리의 영이 직접 손수 봉사하거나, 신다운 아들들이 세계에 자신을 수여하거나, 아니면 기록된 말씀의 계시를 통하거나 상관 없이, 진리가 계시되는 것.
(1106.6) 101:2.7 과학은 첫째 원인을 가정하면서 그 이성(理性)의 탐구를 그친다. 종교는 구원의 하나님을 확신할 때까지 믿음으로 날기를 멈추지 않는다. 분별하여 과학을 연구하는 것은 한 절대자의 실체와 존재를 논리적으로 암시한다. 종교는 성격이 살아남는 것을 보살피는 하나님의 존재와 실체를 아낌없이 믿는다. 형이상학이 형편없이 실패한 것, 철학조차도 부분적으로 해내지 못한 것을 계시(啓示)가 이룬다. 다시 말해서, 과학의 첫째 원인과 종교에서 구원의 하나님은 바로 똑같은 신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1106.7) 101:2.8 이성은 과학을 증명하고, 믿음은 종교를 증명하며, 논리는 철학을 증명한다. 그러나 오로지 인간의 체험이 계시를 정당화한다. 과학은 지식을 낳고, 종교는 행복을 낳고, 철학은 통일을 낳는다. 계시는 우주 실체에 이르는 이 삼자 일체 접근법이 체험으로 조화됨을 확인한다.
(1106.8) 101:2.9 자연을 깊이 생각함은 자연의 하나님, 운동의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을 뿐이다. 자연은 기껏해야 물질, 운동, 생기―생명―을 나타낸다. 물질에 에너지를 더한 것은 어떤 조건 밑에서 살아 있는 형태로 명시된다. 그러나 이처럼 자연 생명은 한 현상으로서 상대적으로 계속되지만, 개성에 관해서는 통째로 잠시 있다. 자연은 인간의 성격이 살아남는 것을 논리적으로 믿을 기초를 제공하지 않는다.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종교적인 사람은 성격을 가진 바로 이 하나님을 이미, 먼저 자신의 혼 속에서 발견하였다.
(1106.9) 101:2.10 믿음은 혼 속에서 하나님을 드러낸다. 계시는 진화 세계에서 상물질 통찰력의 대용물이고, 믿음이 혼 속에서 보여 주는 바로 그 하나님을 사람이 자연 속에서 볼 수 있게 만든다. 이처럼 계시는 물질인 것과 영적인 것, 아니 피조물과 창조자 사 이,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다리를 놓는 데 성공한다.
(1107.1) 101:2.11 자연을 숙고하는 것은 총명한 인도하심, 아니 생생한 감독의 방향을 논리적으로 가리키지만, 어떤 만족스러운 방법으로도 성격을 가진 하나님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또 한편, 자연은 우주를 종교에서 하나님의 작품으로서 바라보는 것을 배제할 것을 전혀 노출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연만 가지고는 발견될 수 없지만, 사람은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을 찾았기 때문에, 자연을 연구함은 우주를 더 높이 더 영적으로 해석하는 것과 온통 양립한다.
(1107.2) 101:2.12 신기원(新紀元)의 현상으로서 계시는 주기를 따라 일어난다. 몸소 겪는 한 인간 체험으로서 계시는 연속성이 있다. 사람의 성격 안에서, 아버지의 조절자 선물로서, 아들의 진리의 영으로서, 우주 영의 성령으로서 신성이 활동하며, 한편 사람을 초월하는 이 세 가지 자질은 인간의 체험적 진화 속에서 최상위가 베푸는 봉사로서 하나가 된다.
(1107.3) 101:2.13 참된 종교는, 실체를 보는 통찰력, 즉 도덕 의식이 낳는 믿음의 산물이요, 어떤 독단적 교리 덩어리에 그냥 지적으로 찬성하는 것이 아니다. 참된 종교는 “영 자신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딸임을 우리의 영과 함께 증거하는” 체험으로 이루어져 있다. 종교는 신학의 주장이 아니라, 영적 통찰력, 그리고 혼이 가진 숭고한 믿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1107.4) 101:2.14 너의 가장 깊은 성품―신다운 조절자―는 올바름을 간절하게 목마르게 찾는 마음, 곧 신다운 완전을 찾는 어떤 갈망을 네 속에서 만들어 낸다. 종교는 신다운 달성에 이르려는 이 마음 속의 욕구를 인식하는 믿음의 행위이다. 구원의 길이라, 즉 성격과 참되고 선하다고 네가 바라보게 된 모든 가치가 살아남는 기법이라고 네가 의식하게 되는, 그 혼의 신뢰와 확신이 이렇게 생긴다.
(1107.5) 101:2.15 종교의 실천은 결코 큰 학문이나 영리한 논리에 의존한 적이 없고, 결코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영적 통찰력이며, 이것이 바로 세상의 가장 큰 종교 스승들 가운데 더러가, 아니 선지자들까지도, 때때로 세상의 지혜를 거의 소유하지 않았는가 하는 이유이다. 종교적 믿음은 배운 사람과 배우지 못한 사람에게 똑같이 소용된다.
(1107.6) 101:2.16 종교는 늘 그 자체의 비평가와 재판관이 되어야 한다. 종교는 바깥에서, 이해하기는커녕, 결코 지켜볼 수 없다. 몸소 대하는 하나님이라는 너의 유일한 확신은 영적 사물을 믿는 너의 신앙, 그것을 겪는 체험에 관한 너 자신의 통찰력에 있다. 비슷한 체험을 가져 본 모든 동료에게는, 하나님의 성격이나 실체에 관하여 아무런 논의가 필요 없으며, 한편 이렇게 하나님에 관하여 확신이 없는 모든 다른 사람에게는 결코 어떤 가능한 논리도, 참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수 없다.
(1107.7) 101:2.17 심리학은 정말로 사회적 환경에 대한 종교적 반응 현상을 연구하려 애쓸지 모르지만, 종교의 진정한, 마음 속의 동기와 작용을 파고들기를 바랄 수 없다. 오로지 신학이, 믿음의 영역과 계시하는 기법이, 종교적 체험의 성질과 내용을 얼마큼이라도 지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다.
(1107.8) 101:3.1 종교는 아주 활기가 넘쳐서 배움이 없는 데서도 지속한다. 그릇된 우주론과 거짓된 철학으로 더러워졌는데도 종교는 살아 있다. 형이상학의 혼란을 겪어도 살아남는다. 종교의 모든 역사적 변천에서, 또 이를 통해서, 인간이 진보하고 살아남는 데 불가결한 것이 늘 지속하는데, 곧 윤리적 양심과 도덕 의식이다.
(1108.1) 101:3.2 믿음의 통찰력, 곧 영적 직관(直觀)은 생각 조절자와 연결하여 우주 지성이 부여한 것이고, 이 조절자는 아버지가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다. 영적 이성(理性), 곧 혼의 지능은 성령이 부여한 것, 창조 영이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다. 영적 철학, 영 실체들에 관한 지혜는 진리의 영이 주는 재산이요, 수여된 아들들이 통합하여 사람의 아들딸에게 주는 선물이다. 이 영 자질의 조정과 상호 관계는 잠재 운명에서 볼 때 사람을 영 성격으로 만든다.
(1108.2) 101:3.3 원시적이고 싹트는 형태로 있는 바로 이 영 성격을 조절자가 소유하는 것이 육체로서 자연사를 겪고 살아남는다. 활기 있는 운동이 그쳐서, 물질인 것과 영적인 것의 그러한 일시 협동 관계가 분해될 때, 영 기원을 가진 이 복합 통일체는 인간의 체험과 결합하여, 신다운 아들들이 마련해 준 생명의 길의 수단을 써서, 지성과 물질로 이루어진 물질 자아의 분해를 (조절자의 보관 속에서) 견디고 살아남는다.
(1108.3) 101:3.4 종교적 믿음을 통해서 사람의 혼은 그 자체를 드러내고, 그 혼이 필사 성격자가 지적이고 시험하는 어떤 벅찬 사회 상황에 반응하도록 유인하는, 특징 있는 방법으로, 솟아나는 혼의 성품이 지닌 잠재 신성을 나타낸다. 진정한 영적 믿음(참된 도덕 의식)은 다음 면에서 드러난다. 그 믿음은:
(1108.4) 101:3.5 1. 타고난 불리한 동물 성향이 있는데도, 윤리와 도덕이 진보하게 만든다.
(1108.5) 101:3.6 2. 쓰라린 실망과 마음을 짓밟는 패배에 부딪쳐서도 하나님이 선함을 믿는 숭고한 믿음을 낳는다.
(1108.6) 101:3.7 3. 자연의 역경과 물리적 재난이 있는데도 깊은 용기와 자신감을 불러일으킨다.
(1108.7) 101:3.8 4. 좌절시키는 병, 살을 에는 육체의 고통이 있더라도, 설명할 수 없는 차분함과 지속하는 고요함을 나타낸다.
(1108.8) 101:3.9 5. 부당한 대우와 고약한 불공정과 마주쳐서, 신비스러운 차분함과 성격의 침착을 잃지 않는다.
(1108.9) 101:3.10 6. 겉보기에는 눈먼 운명이 잔인하고, 겉보기에는 자연력이 인간의 복지에 통째로 아랑곳하지 않는 듯해도, 궁극에 승리한다는 신성한 신뢰를 유지한다.
(1108.10) 101:3.11 7. 반대되는 온갖 논리의 전시가 있는데도, 하나님을 믿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지속하고, 머리를 굴린 모든 다른 궤변을 견디는 데 성공한다.
(1108.11) 101:3.12 8. 거짓된 과학의 속이는 가르침과 건전하지 않은 철학의 설득력 있는 망상에 상관 없이, 혼이 살아남는다는 꺾이지 않는 신앙을 계속 나타낸다.
(1108.12) 101:3.13 9. 현대의 복잡하고 부분적인 문명이 지워 주는 짓누르는 과중한 짐에 상관 없이 살고 승리한다.
(1108.13) 101:3.14 10. 인간의 이기심, 사회의 저항, 산업의 욕심, 정치적 부적응이 있는데도 이타주의가 계속 살아남도록 이바지한다.
(1108.14) 101:3.15 11. 어리둥절하게 죄와 악이 존재하는 데 상관 없이, 우주의 통일과 신의 인도하심을 믿는 숭고한 믿음에 꿋꿋하게 매달린다.
(1108.15) 101:3.16 12. 어떤 것이나, 무엇이 있더라도, 줄곧 하나님을 섬긴다. “그가 나를 죽이더라도, 그래도 나는 그에게 봉사하리라”하고 감히 선언한다.
(1108.16) 101:3.17 그러면 세 가지 현상 때문에, 우리는 사람이 자기 안에서 거주하는 신다운 영이나 영들을 가졌다는 것을 안다. 첫째는 개인의 체험―종교적 믿음―으로, 둘째는 개인 및 종족에게 주는 계시로, 셋째는 진짜 인간 존재에서 실제의 벅찬 상황이 있는 가운데, 앞서 말한 12가지의 영 같은 성취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사람의 물질 환경에 대하여 그러한 특별하고 부자연스러운 반응을 놀랍게 전시함으로 말미암아, 아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것들이 더 있다.
(1109.1) 101:3.18 필사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 성품에서 더할 나위 없는 그 자질, 즉 종교적 체험을 몸소 소유하고 그 영적 실체를 확인할 자격을 주는 것은, 종교의 분야 안에서 신앙을 바로 그렇게 활기 있고 힘차게 연출하는 것이다.
(1109.2) 101:4.1 너희 세계가 대체로 기원, 물리적 기원에 관해서도 무식하므로, 때때로 우주론을 교육하는 것이 현명한 듯 보였다. 그리고 이것은 반드시 앞날을 위하여 문제를 일으켰다. 계시의 법칙은 벌어들이지 않거나 때 이른 지식을 나누어 주기를 금지함으로 우리를 몹시 거북하게 만든다. 계시된 종교의 일부로서 발표된 어떤 우주론도 아주 짧은 시간이 지나면 작아서 못 쓰게 되어 있다. 따라서, 그러한 계시를 공부하는 앞날의 학자들은, 계시 안에 발표된 관련된 우주론의 표면에서 오류를 발견하기 때문에, 그 계시가 담고 있을까 싶은 진정한 종교적 진리의 어떤 요소라도 던져 버릴 유혹을 받는다.
(1109.3) 101:4.2 진리의 계시에 참여하는 우리가 상관들의 지침에 무척 엄격하게 제한을 받는다는 것을 인류는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1천 년 동안에 있을 과학의 발견을 예상할 자유가 없다. 계시자들은 계시 명령의 일부를 이루는 지침에 따라서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이나 어느 앞날에도, 이 어려움을 극복할 아무런 방법을 모른다. 이 시리즈의 계시 발표에 담긴 역사적 사실과 종교적 진리는 다가올 시대의 기록 위에 굳게 서겠지만, 자연 과학에 관하여 우리가 진술한 많은 것이 짧은 몇 년 안에, 추가된 과학의 발전과 새로운 발견의 결과로서 수정할 필요가 있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이 새로운 여러 발전을 우리가 지금 내다보기도 하지만, 우리는 계시하는 기록에서 사람이 찾아내지 않은 그런 사실을 담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계시가 반드시 영감을 받지는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해 두자. 이 계시에 담긴 우주론은 영감을 받지 않았다. 이 우주론은 오늘날의 지식을 조정하고 분류하도록 우리가 받은 허가에 제한을 받는다. 신이 준 통찰력, 곧 영적 통찰력은 선물이지만, 인간의 지혜는 진화되어야 한다.
(1109.4) 101:4.3 진리는 언제나 계시이다: 깃드는 조절자가 일하는 결과로서 계시가 솟아날 때 그것은 자기 계시이다. 어떤 다른 하늘 대리자나 집단이나 성격자의 활동으로 발표되었을 때 그것은 신기원(新紀元)의 계시이다.
(1109.5) 101:4.4 결국, 종교는 그 열매로, 종교가 그 자체에 본래부터 있는 신성한 탁월성을 전시하는 방법과 한도에 따라서, 판단해야 한다.
(1109.6) 101:4.5 계시가 변함없이 영적 현상이더라도, 진리는 오직 상대적으로 영감을 받는가 싶다. 우주론을 언급하는 여러 진술은 결코 영감을 받지 않았지만, 그러한 계시는 다음 방법으로 적어도 일시 지식을 뚜렷이 해 준다는 점에서, 엄청난 가치가 있다:
(1109.7) 101:4.6 1. 권위 있게 오류를 없앰으로 혼란을 줄인다.
(1109.8) 101:4.7 2. 알려졌거나 알려질 때가 가까운 사실과 관찰을 조정한다.
(1110.1) 101:4.8 3. 아득한 과거에 있었던 신기원의 거래들에 관하여, 잃어버린 지식의 중요한 조각을 회복한다.
(1110.2) 101:4.9 4. 다른 방법으로 얻은 지식에서 중요한 빠진 간격을 채울 정보를 제공한다.
(1110.3) 101:4.10 5. 동반되는 계시에 담긴 영적 가르침을 비추는 방법으로 우주 자료를 제시한다.
(1110.4) 101:5.1 계시는 영이 획득한 진리로부터 진화의 잘못들을 가려 내고 체질하는 필요한 작업에서, 말할 수 없이 긴 세월을 절약하는 기법이다.
(1110.5) 101:5.2 과학은 사실을 다루며, 종교는 오로지 가치에만 관여한다. 깨우친 철학을 통해서 지성은 사실과 가치, 이 두 가지의 의미를 통일하려고 애쓰고, 이로서 총 실체의 개념에 다다른다. 과학은 지식의 영토이고, 철학은 지혜의 영역이며, 종교는 믿음을 체험하는 분야임을 기억하여라. 그렇기는 해도 종교는 두 단계의 명시를 제시한다:
(1110.6) 101:5.3 1. 진화로 생긴 종교. 원시적 예배의 체험, 지성의 파생물인 종교.
(1110.7) 101:5.4 2. 계시된 종교. 우주에 대한 태도, 이것은 영에게서 파생된 것이다. 영원한 실체들의 보존, 성격이 살아남는 것, 궁극에는 우주의 신에 도달한다는 확신과 그를 믿는 것, 이 모두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우주의 신의 목적이다. 조만간에 진화 종교가 확대되는 영적 계시를 받도록 정해진 것은 우주 계획의 일부이다.
(1110.8) 101:5.5 과학과 종교, 이 둘은 논리적 연역(演繹)을 위해서 널리 받아들이는 어떤 기초를 가정하고서 시작한다. 그래서 철학도 세 가지 사물의 실체를 가정하고 그 경력을 시작해야 한다:
(1110.9) 101:5.6 1. 물질인 몸.
(1110.10) 101:5.7 2. 인간의 초물질 단계, 곧 혼이나 깃드는 영까지도 포함한다.
(1110.11) 101:5.8 3. 인간의 지성, 곧 영과 물질 사이, 물질인 것과 영적인 것 사이에 서로 통신하고 서로 결합하는 작용.
(1110.12) 101:5.9 과학자들은 사실을 수집하고, 철학자들은 관념을 조정하고, 선지자들은 이상을 높인다. 느낌과 감정은 종교에 변함없이 따르기는 해도 종교는 아니다. 종교는 체험하는 느낌일지 모르지만, 도저히 느낌을 체험하는 것은 아니다. 논리(합리화)도 감정(느 낌)도 기본적으로 종교적 체험의 일부가 아니다. 하지만 개인의 지성 상태와 기질의 경향에 따라서, 이 두 가지는 실체를 꿰뚫는 영적 통찰력을 촉진하는 일에 신앙 연습과 여러 가지로 결합될지 모른다.
(1110.13) 101:5.10 진화 종교는 진화하는 사람 안에서 예배하는 특성을 만들어 내고 육성하는 일을 맡은 지역 우주 지성 보조자가 부여한 자질의 작용이다. 그러한 원시 종교들은 윤리와 도덕, 즉 인간의 의무 감각에 직접 관계된다. 그러한 종교들은 양심의 확신에 바탕을 두며, 비교적 윤리 있는 문명을 안정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1111.1) 101:5.11 친히 계시된 종교들은 파라다이스 삼위 일체의 세 분을 대표하는 수여 영들의 후원을 받으며, 특별히 진리를 확대하는 데 관여한다. 진화로 생긴 종교는 개인에게 개인 의무의 관념을 못박아 준다. 계시된 종교는 사랑하기를, 즉 황금률을 더욱 크게 강조한다.
(1111.2) 101:5.12 진화된 종교는 온통 믿음에 의존한다. 계시는 신성과 실체에 관한 진리의 확대된 발표에서 추가된 보장을 가지고 있으며, 진화로 생긴 믿음과 계시된 진리, 이 두 가지의 실용적 기초적 연합의 결과로서 쌓이는 실제 체험에 관하여 더욱 가치 있는 증언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믿음과 신이 준 진리의 그러한 기초적 연합은 상물질 성격을 실제로 얻는 길에 한창 나아간 인격을 소유하는 것이다.
(1111.3) 101:5.13 진화된 종교는 믿음의 확신과 양심의 확인을 마련해 줄 따름이다. 계시 종교는 신앙의 확신, 그리고 계시된 실체들 속에서 생생한 체험의 진리를 마련해 준다. 종교에서 셋째 걸음, 종교적 체험에서 셋째 단계는 상물질 상태, 즉 상지혜(上知慧)를 더 단단히 붙드는 것과 상관이 있다. 상물질계의 진보에서는 계시된 종교의 진리가 갈수록 더 커진다. 너희는 최상의 가치, 신다운 선함, 보편적 관계, 영원한 실체, 궁극의 운명에 관한 진리를 더욱 알게 될 것이다.
(1111.4) 101:5.14 상물질계의 진보를 통해서 내내, 진리의 확신은 점점 더 믿음의 확신을 갈아치운다. 너희가 마침내 실제 영 세계에 부름받을 때, 그 때 순수한 영 통찰력의 확신은 믿음과 진리의 자리에서 작용하든지, 또는 오히려 성격자가 확신하는 이 예전의 기법과 협력하여, 그 위에 겹쳐서, 작용할 것이다.
(1111.5) 101:6.1 계시된 종교의 상물질 단계는 살아남는 체험과 상관이 있고, 그 단계의 큰 욕구는 영의 완전을 이룩하는 것이다. 또한 윤리적 봉사를 늘이도록 강제하는 부름과 관련하여, 상급의 예배 욕구가 있다. 상물질계 통찰력에는 칠중자, 최상위를, 아니 궁극위까지도, 늘 더욱 크게 의식하는 일이 따른다.
(1111.6) 101:6.2 물질 수준에서 맨 처음에 시작할 때부터 완전한 영 지위를 얻을 때까지 모든 종교 체험에 두루, 조절자는 최상위 존재의 실체를 몸소 깨닫는 비결이다. 바로 이 조절자는 또한 궁극위까지 초월하여 달성함을 믿는 너희 신앙의 비결도 쥐고 있다. 진화하는 사람의 체험적 성격은, 실존하는 하나님의 조절자 본질에 연결되어 최상 실존의 잠재적 완성을 구성하며, 그것은 본래부터, 유한을 뛰어넘어서 궁극에는 초월 성격에 도달하기 위한 기초이다.
(1111.7) 101:6.3 추론한 지식에 기초를 두고, 지혜로 말미암아 확대되고, 종교적 믿음이 인가한 결정을 도덕적 의지가 포함한다. 그러한 선택은 도덕적 성질을 띠는 행위이고, 도덕적 성격이 존재함을 증거하며, 그것은 상물질 성격, 그리고 궁극에는 참된 영 지위의 선구자이다.
(1111.8) 101:6.4 진화하는 종류의 지식은 오직 원형질의 기억 물질이 축적된 것일 뿐이다. 이것은 가장 원시 형태의 생물 의식이다. 지혜는 결합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원형질의 기억으로부터 형성된 관념들을 담고, 그러한 현상은 인간의 지성을 단순한 동물 지성과 구별한다. 동물은 지식이 있지만, 오로지 사람이 지혜 능력을 소유한다. 그러한 지성 위에 아버지와 아들들의 영, 즉 생각 조절자와 진리의 영을 수여함으로, 진리는 지혜를 받은 사람이 접근할 수 있게 된다.
(1112.1) 101:6.5 유란시아에 수여되었을 때, 그리스도 미가엘은 세례를 받기까지 진화된 종교에 지배를 받으면서 살았다. 그 순간부터 십자가에 못박히는 사건을 포함하여 그 때까지, 그는 진화되고 계시된 종교의 통합된 인도를 받고서 일을 해 나갔다. 부활한 아침부터 하늘에 오를 때까지, 물질 세계로부터 영의 세계까지, 그는 사람으로 이동하는 여러 단계의 상물질 생명을 거쳤다. 하늘에 오른 뒤에, 미가엘은 최상위 체험, 곧 최상 존재에 이르는 체험을 겪은 주인이 되었다. 네바돈에서 최상위의 실체를 체험한 무제한 능력을 가진 성격자이기 때문에, 그의 지역 우주에서, 그 우주에 대하여, 그는 당장에 최상 군주권의 지위에 이르렀다.
(1112.2) 101:6.6 사람의 경우에, 깃드는 조절자와 궁극에 융합하고 그 결과로 일체가 되는 것―사람과 하나님 본질의 성격 합성―은 그를 잠재성에서 최상위의 살아 있는 부분으로 만들며, 최상위를 위해서, 그와 함께, 우주 봉사의 최종을 끝없이 추구하는 영원한 생득권을 한때 필사자였던 그러한 존재에게 보장해 준다.
(1112.3) 101:6.7 차츰 흐르는 시간의 수단을 써서 공간을 거치는 그러한 멋지고 흥미를 자아내는 모험을 떠나기 위해서, 지식을 관념과 결정 속으로 체계화함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계시는 필사 인간에게 가르친다. 다음에, 그는 자신이 소유한 관념을, 점점 더 실용적이지만 그런데도 하늘 같은 이상으로 더욱 변화시키는 고귀한 과제에 지혜가 그침 없이 수고하라고 명령해야 한다. 그러한 이상은 관념으로서 무척 이치가 있고 이상으로서 아주 논리적인 그러한 개념까지도 포함하며, 그래서 그 개념들을 이처럼 아들들의 진리의 영이 활동하기 위하여 준비된 실제 인간 보충물로 만들도록, 유한한 지성 안에서 그러한 결합에 소용되게 하려고 조절자가 그 개념들을 합치고 영답게 만든다. 이 진리의 영은 파라다이스 진리―보편적 진리―가 시공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관념과 결정, 논리적 이상, 신성한 진리를 조정하는 것은 올바른 인격을 소유하는 것이며, 이것은 늘 확장하고 갈수록 더 영적인 실체, 상물질 세계의 실체들에 사람이 입장하는 데 필수 조건이다.
(1112.4) 101:6.8 예수의 가르침은 어울리게 조정된 지식, 지혜, 믿음, 진리, 사랑을 아주 넘치게 담고 있으며, 그래서 현세에서 차분함, 지적 확실성, 도덕적 깨우침, 철학적 안정, 윤리적 민감성, 하나님 의식, 그리고 성격이 살아남는다는 분명한 확신을 완벽하게, 동시에 마련해 주는 첫 유란시아 종교였다. 예수의 믿음은 다음을 마련해 주었기 때문에, 인간의 구원의 최종에 이르는 길, 사람이 우주에서 성취하는 궁극의 것에 이르는 길을 가리켰다:
(1112.5) 101:6.9 1. 영이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몸소 깨닫고 물질의 사슬로부터 구원받는 것.
(1112.6) 101:6.10 2. 지성의 속박으로부터 구원받는 것: 사람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그를 매인 데서 풀어 주리라.
(1112.7) 101:6.11 3. 영적으로 눈먼 상태로부터 구원을 얻는 것. 필사 존재들의 친교 관계를 인간으로서 깨닫고 모든 우주 생물이 형제임을 상물질적으로 깨우치는 것. 영적 실체를 봉사로 발견하고, 영의 가치가 선함을 봉사로 드러내는 것.
(1113.1) 101:6.12 4. 우주의 여러 영 수준의 달성을 통해서, 또 하보나의 조화와 파라다이스의 완전을 궁극에 깨달음을 통해서, 자아의 불완전으로부터 구원받는 것.
(1113.2) 101:6.13 5. 자아로부터 구원받는 것, 최상위 지성의 우주 수준에 다다름을 통해서, 자의식하는 모든 다른 존재의 달성과 조정함으로, 자의식의 한계로부터 구원받는 것.
(1113.3) 101:6.14 6. 시간으로부터 구원받는 것, 하나님을 알아보고 하나님께 봉사하면서 끝없이 나아가는 영원한 삶을 얻는 것.
(1113.4) 101:6.15 7. 유한으로부터 구원받는 것, 즉 최상위 안에서, 그를 통해서, 신과 하나인 상태의 완전함, 이로서 생물은 초한(超 限)한 것의 최후자 이후 수준에서 초월하여 궁극위를 찾으려 애쓴다.
(1113.5) 101:6.16 그러한 일곱 가지 구원은 우주의 아버지를 궁극에 체험하는 일을 마치고 완성함과 대등하다. 이 모두가 잠재적으로, 인간의 종교 체험에서 믿음의 실체 안에 포함되어 있다. 그렇게 담겨 있을 수 있는 것은 예수의 믿음이 궁극의 것을 뛰어넘은 실체들로부터도 자양분을 받았고, 그 실체들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예수의 믿음은 그러한 것이 시공의 진화하는 우주에서 명시가 가능한 한, 한 우주의 절대 상태에 접근했다.
(1113.6) 101:6.17 예수의 믿음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필사 인간은 시간 속에서 영원의 실체들을 미리 맛볼 수 있다. 예수는 인간의 체험 속에서 최후의 아버지를 발견했고, 필사 생명의 육체를 입은 그의 형제들은 아버지를 발견하는 바로 그 체험을 따라서 그를 따라갈 수 있다. 그들은 현재 신분 그대로, 예수가 그의 신분대로 한 것처럼 아버지와 함께 하는 이 체험 속에서 똑같은 만족도 얻을 수 있다. 미가엘이 마지막으로 자신을 수여한 결과로서 새로운 잠재성이 네바돈 우주에서 현실화되었고, 이 중의 하나는 만물의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영원의 길을 새롭게 비추는 것이었다. 이것은 공간의 혹성에서 사는 첫 생명에서 물질인 살과 피를 가진 필사자도 거쳐 갈 수 있는 길이다. 예수는 사람이 신의 상속(相續)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생명의 길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 재산은 요청하기만 하면 사람의 것이 되리라고 아버지가 선포하셨다. 인류의 신앙 체험의 처음과 끝이, 신다운 인류라도, 예수 안에서 넘치도록 펼쳐진다.
(1113.7) 101:7.1 아이디어는 행동을 위한 이론적 계획일 따름이며, 반면에 분명한 결정은 인가를 받은 행동 계획이다. 고정 관념은 인가를 거치지 않고 받아들인 행동 계획이다. 개인의 종교 철학을 세우는데 들어가는 물질은 그 개인의 내부 체험과 환경 체험, 이 두 가지로부터 얻는다. 사람이 처한 때와 장소에서, 사회적 지위, 경제 조건, 교육 기회, 도덕 성향, 제도의 영향, 정치의 발전, 종족의 경향, 종교적 가르침은 모두 개인의 종교 철학을 형성하는 데 요인이 된다. 타고난 기질과 지적 소질조차도, 종교 철학의 형태를 뚜렷이 좌우한다. 직업•결혼•친족은 모두 사람의 개인적 생활 기준의 진화에 영향을 미친다.
(1113.8) 101:7.2 종교에 관한 철학은, 관념과 실험하는 생활이 동료들을 모방하는 경향에 따라 수정되는 바와 같이, 이 둘의 기본 성장으로부터 진화한다. 철학을 담은 결론의 건전성은 의미에 대한 민감도 및 평가의 정확성과 관련하여, 날카롭고 정직하고 분별 력 있는 사고(思 考)에 의존한다. 도덕 면에서 비겁한 자들은 결코 높은 수준의 철학 사고에 이르지 못한다. 새로운 수준의 체험을 시작하고, 알지 못하는 지적 생활 분야의 탐구를 시도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1114.1) 101:7.3 대번에 새로운 체계의 가치가 존재하게 된다. 원칙과 기준이 새롭게 형성된다. 버릇과 이상이 다시 모습을 갖춘다. 성격을 가진 하나님에 대한 어떤 관념을 얻고, 그와 가지는 관계에 대하여 확대되는 개념들이 뒤따른다.
(1114.2) 101:7.4 삶에 관하여 종교 철학과 비종교 철학의 큰 차이점은 인정된 여러 가치의 성질과 수준에, 그리고 충성심의 대상에 있다. 종교 철학의 진화에는 네 단계가 있다: 그러한 체험은 전통과 권한에 복종하도록 몸을 맡기면서, 다만 순응하는 체험이 될 수 있다. 아니면 나날의 생활을 안정시키기에 겨우 넉넉할 정도로, 하찮은 성취로 만족될 수도 있고, 따라서 그러한 우발적 수준에서 일찍부터 그친다. 그러한 사람들은 충분히 좋은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을 믿는다. 셋째 집단은 논리로 지적 수준까지 진보하지만, 거기서 문화적 노예 상태의 결과로서 침체에 빠진다. 문화적 사슬의 잔인한 손아귀 안에 아주 단단히 붙들려 있는 거대한 지능(知 能)들을 바라보는 것은 정말로 딱하다. 자기의 문화의 사슬을, 과학이라 거짓되게 부르는 물질적 사슬과 바꾸는 자들을 지켜보는 것은 똑같이 애처롭다. 넷째 수준의 철학은 모든 관습과 전통의 장애로부터 자유를 얻고, 감히 정직하게, 충성스럽게, 두려움 없이, 진실하게 생각하고 행위하고 산다.
(1114.3) 101:7.5 어떤 종교 철학이라도 그 엄격한 시험은 그것이 물질 세계와 영적 세계의 실체들을 구별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동시에 지적 노력과 사회 봉사에서 그 실체들의 통일을 인식하는 데 있다. 건전한 종교 철학은 하나님의 것과 케자의 것을 혼동하지 않는다. 순전한 경이로 이루어진 미학(美學)의 종파를 종교의 대용물로 인정하지도 않는다.
(1114.4) 101:7.6 철학은, 대체로 양심을 일깨우는 꾸민 이야기였던 원시 종교를 우주 실체의 높아지는 가치를 맛보는, 산 체험으로 변화시킨다.
(1114.5) 101:8.1 생명을 자극하고 생활 방식에 형태를 줄 때 관념은 믿음의 수준에 이른 것이다. 어느 가르침을 진리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관념이다. 확실성도 납득도 믿음이 아니다. 지성의 상태는 생활 방식을 실제로 지배할 때에야 믿음의 수준에 이른다. 믿음은 진정한 몸소 겪는 종교적 체험의 살아 있는 속성이다. 사람은 진리를 믿고,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선을 존경하지만, 이것들을 숭배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유익한 믿음의 태도는 오로지 하나님에게 집중하며, 하나님은 이 모두가 성격화된 것이고 그보다 무한하게 크다.
(1114.6) 101:8.2 관념은 언제나 제한하고 묶는다. 믿음은 커지고 사람을 풀어 놓는다. 관념은 고정시키지만, 믿음은 해방한다. 그러나 살아 있는 종교적 믿음은 고귀한 관념들의 결합을 넘는 것이요, 고상한 철학 체계보다 더 크다. 영적 의미, 신성한 이상, 최고의 가치에 관여하는 산 체험이다. 그 믿음은 하나님을 알고, 사람에게 봉사한다. 관념은 집단의 소유물이 될 수도 있지만, 믿음은 개인의 것이다. 신학적 관념을 한 집단에게 제시할 수 있지만, 믿음은 오직 개별 종교가의 가슴 속에서 일어날 수 있다.
(1114.7) 101:8.3 믿음은 감히 실체들을 부인하고 추종자들에게 가상된 지식을 수여할 때 신뢰를 저버린 것이다. 믿음이 지적 인격을 배반하도록 조장하고, 최고의 가치와 신다운 이상에 바치는 충성을 헐뜯을 때, 믿음은 배반자가 된다. 믿음은 필사자의 생활에서 문제를 해결할 의무를 결코 피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믿음은 편협이나 박해나 불관용을 조장하지 않는다.
(1115.1) 101:8.4 믿음은 창조적 상상력에 쇠고랑을 채우지 않으며, 과학적 조사로 얻는 발견에 대하여 이치에 맞지 않는 편견을 유지하지도 않는다. 믿음은 종교를 활기 있게 만들고, 종교가가 영웅답게 황금률을 실천하라고 제어한다. 믿음의 정열은 지식에 비례하고, 그것이 기울이는 노력은 숭고한 평화의 전주곡이다.
(1115.2) 101:9.1 종교에서 공언(公言)된 어떤 계시도, 선행(先行)하는 진화 종교가 지어 내고 육성한 윤리적 책임의 마땅한 요구를 인정하지 못하면, 진정하다고 여길 수 없다. 계시는 진화된 종교의 윤리적 지평을 어김없이 확대하고, 한편 동시에, 어김없이, 모든 이전 계시의 도덕적 책임을 확대한다.
(1115.3) 101:9.2 사람의 원시 종교에 (또는 원시인의 종교에) 대하여 너희가 감히 비평하는 판단을 내릴 때, 너희는 그러한 야만인들의 깨우침과 양심의 상태에 따라서 그들을 판단하고 그들의 종교적 체험을 평가할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종교를 네 자신의 지식 및 진리의 표준에 따라 판단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
(1115.4) 101:9.3 참된 종교는 혼 안에서 숭고하고 깊은 확신이며, 그 혼은 사람의 가장 높은 윤리 개념과 도덕 개념, 생명의 가장 큰 가치와 우주의 가장 심오한 실체들에 대하여 사람의 가장 높은 해석을 구성하는 그 상물질 실체들을 믿지 않는 것이 그릇되리라고, 어찌할 도리 없게 훈계한다. 그러한 종교는 다만 영적 의식이 내리는 가장 높은 명령에 지적 충성을 바치는 체험이다.
(1115.5) 101:9.4 윤리에 맞는 한, 도덕적인 자의 개념을 강화하는 테두리 안에서만, 아름다움의 추구는 종교의 일부이다. 높은 영적 동기로부터 얻은 목적을 가지고 퍼뜨렸을 때에야 예술은 종교성을 띤다.
(1115.6) 101:9.5 문명화된 사람의 깨우친 영적 의식은 어떤 특정한 지적 관념이나 어느 한 가지 특별한 생활 방식보다, 오히려 생활에 관한 진리의 발견에, 즉 필사 존재에서 늘 다시 일어나는 형편에 반응하는, 선하고 옳은 기법에 관여한다. 도덕 의식은 그저, 하루하루의 행위를 통제하고 안내하는 데서 사람이 지켜야 하리라고 의무가 요구하는 가치, 윤리적이고 솟아나는 그 상물질 가치를 인간이 인식하고 깨닫는 데 적용되는 이름일 뿐이다.
(1115.7) 101:9.6 비록 종교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종교는 적어도 그 성질과 기능 면에서 두 가지로 실용적으로 명시된다:
(1115.8) 101:9.7 1. 종교의 영적 욕구와 철학적 압력은 사람으로 하여금, 도덕적 가치에 대한 그의 평가를 동료들의 일에, 직접 바깥으로 투영하게 만든다―이것은 종교의 윤리적 반응이다.
(1115.9) 101:9.8 2. 영적 가치를 가진 첨가된 개념들과 조정되고, 도덕적 가치가 있는 선행하는 개념들에 기초를 두고, 그로부터 얻어진 믿음에 따라서, 종교는 신다운 실체를 깨닫는 영적으로 변화된 의식(意識)을 인간 지성을 위하여 창조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종교는 사람의 일에 검열자가 되며, 이것은 실체, 시간 속에서 향상된 실체들과 더 오래 가는 영원의 실체들을 믿는, 일종의 영화롭게 된 도덕적 신뢰와 확신이다.
(1116.1) 101:9.9 믿음은 도덕적 의식, 그리고 지속하는 실체에 대한 영적 개념을 잇는 연결이다. 종교는 구원하는 기법, 점진적으로 상물질로 변화하는 기법에 따라서, 그를 통해서, 현세의 자연 세계의 물질적 한계로부터 영원한 영적 세계에 있는 하늘의 실체들까지 사람이 달아나는 길이 된다.
(1116.2) 101:10.1 총명한 사람은 그가 자연의 아이요, 물질 우주의 일부임을 안다. 마찬가지로, 그는 에너지 우주의 수학 수준에 있는 움직임과 긴장 속에서 개인의 성격이 살아남지 못함을 헤아린다. 사람은 물리적 원인과 결과를 살펴봄으로써 결코 영적 실체를 헤아릴 수도 없다.
(1116.3) 101:10.2 인간은 또한 그가 관념적 우주의 일부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비록 개념이 필사 생명의 길이를 넘어서 지속되더라도, 개념 속에는 아무 것도 본래부터, 파악하는 인격자의 성격이 살아남는다는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논리와 이성의 가능성을 다 써 버린다 해도, 논리를 따지는 자나 추리하는 자에게 성격이 살아남는다는 영원한 진리를 결코 드러내지도 않을 것이다.
(1116.4) 101:10.3 물질 수준의 법칙은 원인의 연속성, 즉 선행(先行)하는 행위에 대하여 결과의 끊임없는 반응을 마련해 준다. 지성 수준은 관념적 연속성이 영구하게 되는 것, 곧 선재하는 개념들로부터 개념 잠재성이 그침 없이 흐름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 우주 수준의 어느 것도 지위의 불공평으로부터, 우주에서 일시적 실체라는 불안, 제한된 생명 에너지를 써 버리고 나서 꺼질 운명을 가진 덧없는 성격이라는 참을 수 없는 불안으로부터 달아나는 길을, 탐구하는 사람에게 드러내지 않는다.
(1116.5) 101:10.4 오직 영적 통찰력으로 인도하는 상물질계의 길을 통해서, 사람은 우주에서 그의 필사 지위에 본래부터 있는 사슬을 언젠가 깨뜨릴 수 있다. 에너지와 지성은 파라다이스와 신에게로 돌아가도록 이끌지만, 사람의 에너지 재산이나 지성 재산도 그러한 파라다이스 신으로부터 직접 진행하지는 않는다. 오직 영적 의미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아이이다. 오직 영적 의미에서 사람에게 현재, 파라다이스 아버지가 자질을 부여하고 깃들기 때문에 이것이 참말이다. 종교적 체험의 길을 통하고 참된 믿음을 실천하지 않고서, 인류는 결코 신성을 발견할 수 없다. 하나님이 진리임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물질 한계의 막힌 울타리로부터 달아나게 하고, 그에게 죽음이 있는 물질 영역으로부터 영원한 삶이 있는 영의 나라까지, 안전하게 인도될 합리적 희망을 사람에게 준다.
(1116.6) 101:10.5 종교의 목적은 하나님에 관한 호기심을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필사인 것과 신다운 것, 부분적인 것과 완전한 것, 사람과 하나님을 섞음으로, 지적 항구성과 철학적 안전을 마련해 주고, 인간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부유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종교적 체험을 통해서 이상적인 것에 대한 사람의 개념들이 실체를 부여받는다.
(1116.7) 101:10.6 결코 과학이나 논리로 신성을 증명할 수 없다. 이성(理性)만 가지고는 종교적 체험의 가치와 선함을 결코 정당화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언제나 진리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의지(意志)하 는 자는 누구나 영적 가치의 타당성을 이해할 것이다. 이것이 필사자 수준에서 종교적 체험의 실체에 대한 증명을 내놓는 것에 가장 가까운 가능한 접근법이다. 그러한 믿음은 물질 세계의 기계 같은 손아귀로부터, 지적 세계의 불완전이 일으키는 잘못의 왜곡으로부터 유일하게 달아나는 길을 마련해 준다. 믿음은 개별 성격이 계속해서 살아남는 것에 관한 필사자의 생각 속에, 막다른 골목에 대하여 발견된 유일한 해결책이다. 믿음은 실체의 완성에 이르고, 사랑, 법칙, 통일이 있는 우주의 창조에서 영생에 이르고, 진보하면서 신에 도달하는 데 유일한 여권(旅券)이다.
(1117.1) 101:10.7 종교는 사람이 이상 면에서 고립되거나 영적으로 외롭다는 느낌을 실질적으로 치료한다. 종교는 하나님의 한 아들, 새롭고 의미 깊은 우주의 한 시민으로서, 믿는 사람을 해방시킨다. 혼 속에서 헤아릴 수 있는 올바름의 어슴푸레한 빛을 따르면서, 종교는 이로서 사람이 무한자의 계획과 영원자의 목적과 스스로 동일시하고 있다는 확신을 준다. 그러한 해방된 혼은 즉시 이 새 우주, 그의 우주에서 비로소 편안함을 느낀다.
(1117.2) 101:10.8 네가 그러한 믿음의 변화를 체험할 때, 너는 이제 더 수학적 우주에 노예 같은 일부가 아니라, 오히려 우주의 아버지의 아들, 해방되고 의지를 가진 아들이다. 그러한 해방된 아들은 이제 더, 현세의 존재가 끝나는, 움직일 수 없는 멸망에 맞서 혼자서 싸우지 않는다. 희망 없이 불리한 확률을 가지고 모든 자연과 이제 더 싸우지 않는다. 아마도 희망 없는 환상에 자기의 신뢰를 맡기거나, 공상하던 오류에 자기의 믿음을 못박았다는 두려움, 몸을 마비시키는 두려움 때문에 이제 더 비틀거리지 않는다.
(1117.3) 101:10.9 자,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들은 실체가 존재의 부분인 그림자에게 이기는 싸움에서 함께 지원했다. 하나님과 거의 한없는 우주에 사는 모든 신다운 무리들이, 영생과 신성한 지위를 얻으려고 벌이는 숭고한 싸움에서 그들의 편에 있다는 사실을 마침내 모든 피조물이 의식하게 된다. 믿음으로 해방된 그러한 아들들은 영원의 최상 세력과 신다운 성격자들의 편을 들어, 시간 속에서 벌어지는 전투에 분명히 지원했다. 그들이 가는 길에 별들도 이제는 그들을 위하여 싸우고 있다. 마침내 그들은 안으로부터, 하나님의 관점으로부터 우주를 바라보며, 모든 것이 물질적 고립의 불안으로부터 영원히 영적으로 진보한다는 확실성으로 변화된다. 시간 자체도 기껏해야 파라다이스 실체들이 공간 속에 움직이는 갑옷에 던진 영원의 그림자가 될 뿐이다.
(1117.4) 101:10.10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이 발표하였다.]
유란시아 서
- 표제지
- 제 1 부 중앙 우주와 초우주
- 제 2 부 지역 우주
- 제 3 부 유란시아의 역사
- 제 57 편유란시아의 기원
- 제 58 편유란시아에서 생명이 자리를 잡다
- 제 59 편유란시아의 해양 생명 시대
- 제 60 편초기 육지 생명 시대의<br>유란시아
- 제 61 편유란시아의 포유 동물 시대
- 제 62 편시초 인간의 원시 민족
- 제 63 편첫 인간 가족
- 제 64 편진화된 유색 인종
- 제 65 편진화의 전반적 통제
- 제 66 편유란시아의 혹성 영주
- 제 67 편혹성의 반란
- 제 68 편문명의 새벽
- 제 69 편원시적 인간 제도
- 제 70 편인간이 만든 정부의 진화
- 제 71 편국가의 발전
- 제 72 편이웃 혹성에 있는 정부
- 제 73 편에덴 동산
- 제 74 편아담과 이브
- 제 75 편아담과 이브의 실수
- 제 76 편둘째 동산
- 제 77 편중도인
- 제 78 편아담 시절 뒤의 보라 인종
- 제 79 편동양에서 안드 사람의 팽창
- 제 80 편서양에서 안드 사람의 팽창
- 제 81 편현대 문명의 발전
- 제 82 편결혼의 진화
- 제 83 편결혼 제도
- 제 84 편결혼과 가족 생활
- 제 85 편숭배의 기원
- 제 86 편종교의 초기 진화
- 제 87 편 귀신 숭배
- 제 88 편주물과 부적과 마술
- 제 89 편죄와 희생과 속죄
- 제 90 편주술 신앙―주술사와 사제
- 제 91 편기도의 진화
- 제 92 편후일에 종교의 진화
- 제 93 편마키벤타 멜기세덱
- 제 94 편동양에서 멜기세덱의 가르침
- 제 95 편레반트에서 멜기세덱의 가르침
- 제 96 편야웨―히브리인의 하나님
- 제 97 편히브리인 사이에서<br>하나님 개념의 진화
- 제 98 편서양에서 멜기세덱의 가르침
- 제 99 편종교의 사회적 문제점
- 제 100 편인간의 체험 속에서 종교의 영향
- 제 101 편종교의 참 본질
- 제 102 편종교적 믿음의 기초
- 제 103 편종교적 체험의 실체
- 제 104 편삼위 일체 개념의 성장
- 제 105 편신과 실체
- 제 106 편실체의 우주 수준
- 제 107 편생각 조절자의 기원과 성품
- 제 108 편생각 조절자의 사명과 봉사
- 제 109 편조절자와 우주 생물의 관계
- 제 110 편조절자와 개별 필사자의 관계
- 제 111 편조절자와 혼
- 제 112 편성격의 생존
- 제 113 편운명 수호 천사
- 제 114 편세라핌의 혹성 정부
- 제 115 편최상 존재
- 제 116 편전능 최상위
- 제 117 편최상위 하나님
- 제 118 편최상과 궁극―시간과 공간
- 제 119 편그리스도 미가엘의 자신 수여
- 제 4 부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