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부터 유란시아 도서의 관리인
유란시아 재단의 역사 요약
“어떤 현실적인 문제점에 대한 올바른 관점은 오직 우주 실체의 세 가지 단계인 근원, 역사, 목적의 상관관계를 완전히 편견 없이 연구함으로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의 경험적인 실체들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 현재의 상황을 현명하게 평가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게 된다.” 19:1.6 (215.3)
유란시아 재단은 유란시아 북의 내용을 존중하면서 출판을 하고 그대로 보존하기 위하여, 1950년 1월 11일 일리노이즈 주의 법에 의거하여 설립되었다. 유란시아 북의 완전한 내용을 담고 있는 금속 인쇄판은 수령한 그대로, 유란시아 재단의 설립과 함께 재단으로 넘겨졌다. 신탁관리자 이사회는 기구를 통솔하기 위하여 선출되었으며, 이 인쇄판을 사용하여 유란시아 북 초판 1만 권을 인쇄하기 위한 자금을 확보하였다.
금속 인쇄판에 몇 년 앞서서, 유란시아 북은 타이프로 작성한 원고 상태로 방화 금고에 저장되었다. 손으로 씌어진 원고를 조심스럽게 옮겨 기록한 것이었다. 원고가 어떻게 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더 자세한 사항은 공개가 제한되어 있다. 유란시아 북 그 자체가 책으로 존재하게 된 과정에 대한 어떤 직접적인 사항과 관련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의 친우들은 “유란시아 외경(外經 Apacryhpa)”이 나타나는 것을 방지하기를 원했으며, 그리고 그들은 미래의 세대들이 이 책을 인간과의 관계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소유하도록 결정하게 되었다. 기억하라: 뛰어난 교향곡이나 예술 작품은 그 저자를 알지 못하면서, 또는 그 작품의 제작 과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감상을 할 수가 있다.
유란시아 북의 초판 인쇄는 1955년 10월 12일 가능하게 되었으며, 유란시아 재단은 그 보급을 정성껏 시작하였다. 또한 1955년, 유란시아 북의 가르침을 찬미하면서 이 책의 선포에 관심을 가진 그룹이, 하나의 자발적인 친교 기구인 유란시아 형제애 (Urantia Brotherhood) 를 결성하였다. 1955년부터, 유란시아 북
과 연결된 이 친교 기구는 미국 안에서 그리고 세계적으로 성장하고 진화를 하여 왔다.
오늘날 유란시아 재단은 면세 501(c)(3) 단체로서 유란시아 책과 그 가르침을 전 세계에 전파하는 사명을 가지고 계속 활동하고 있습니다. 원래의 금속 인쇄판은 현대 기술로 대체되었지만 유란시아 재단은 계속해서 텍스트가 훼손되지 않도록 보장하고 있습니다. 유란시아 재단은 25개 이상의 고품질 유란시아 서 번역본 출판을 감독했으며, 수업료가 없는 온라인 유란시아 서 국제 학교와 같은 학습 자료와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모 시걸
모는 카톨릭 수도원에 들어가서 2년 동안 학교를 다닌 후 1969년 유란시아 북을 읽기 시작하였다. 그는 1972년부터 유란시아 북 스터디 그룹을 진행하여 왔다. 지난 45년 동안, 모는 오직 유란시아 북을 위하여 헌신하면서, 세 개의 기구 위원회에서 활동하여 왔다. 모는 재니퍼와 결혼하여 다섯 자녀와 일곱 손자가 있으며, 미국, 콜로라도 주, 볼더에 살고 있다. 지난 삼십 년 동안, 23 곳의 영리 및 비-영리 기구에서 근무하였다. 그는 그의 대부분의 생애를 식품 산업으로 보냈다. 그는 1998년 신탁관리자가 되었다.
마리린 쿨리케
마리린은 1972년 고인이 된 그의 남편, 데이빗 쿨리케로부터 유란시아 북을 알게 되었으며, 남편의 부모와 삼촌 부부는 오랜 독자들이었다. 그 이후 마리린과 데이빗은 그들의 집에서 수백 명의 독자들과 스터디 그룹을 하였다. 1974년 유란시아 북 독자를 위한 첫 모임 단체에 참가하면서, 마리린은 책의 보급과 그 가르침을 위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그는 미국, 일리노이즈 주, 링컨사이어에서 살고 있다. 전문적인 직업으로서, 교육 연구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GAINS 교육 그룹에서 근무 중이며, 이 그룹은 학교와 교육 기관을 위하여 조사, 연구, 교육 업무를 제공하고 있다. 2007년, 그는 부-신탁관리자로 위원회에 참가하게 되었으며, 2008년 신탁관리자가 되었다.
조지 미셸-듀퐁
조지의 아버지가 1960년대 초, 그에게 "유란시아 북"을 알게 하였다. 조지는 프랑스어 번역을 위한 팀의 한 멤버로서 15년간 수정하고 교정을 하였다. 또한 그는 오랜 기간 동안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여러 나라에서 유란시아 북 프랑스어 번역본의 배포 활동을 관장하였다. 유란시아 북을 위한 전자 검색 엔진을 처음 만들었으며, 여러 가지 언어의 소형 비닐 양식 책을 만들었다. 1999년, 유란시아 북을 깊이 공부하기 위한 온라인 학교를 처음 공동으로 세웠으며, 현재 그 이름은 유란시아 북 국제 학교 (UBIS) 이다. 프랑스 레끄로스에서 아내 51살 마르네와 살고 있다. 장성한 두 딸과 외손자 한 명이 있다. 직업으로는, 전자-금속공학 기술자이었다. 부부는 2010년 은퇴하였다. 조지는 1995년 신탁관리자가 되었다.
쥬디 반 크리브
주디는 1973년 언니의 소개로 유란시아 북을 알게 된 후, 독자가 되었다. 스터디 그룹에 참여하였고 진행도 하였으며, 현재 아이다호 유란시아 협회의 설립회원이고, 유란시아 미국 협회 그리고 유란시아 국제 협회의 임원으로 봉사하고 있다. 미국, 아이다호 주, 보이스에 살고 있으며, 이곳에서 1976년 공기 조절기기 사업을 시작하여 현재 가족이 운영하고 있다. 주디는 가족을 돌보면서, 아들과 딸의 활동과 연관된 여러 지역 기구의 자원봉사자 임원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지금은 손자들과 아주 가까이 즐기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주디는 2007년 부-신탁관리자로서, 그리고 2008년 신탁관리자로 선출되었다.
가드 제임슨
가드는 1972년 스탠포드 대학에서 비교종교학을 공부하면서 유란시아 북 한 권을 구입하였다. 가드는 “유란시아 북을 처음 읽게 된 것은 순례(巡禮) 의 길 (pilgrimage) 을 찾아서 나서게 된 시작이 되었으며, 하나님이 우리들 개개인 생명체에 대하여 의지/뜻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순례의 길은 인간이 상상할 수도 없는 가장 위대한 모험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가드는 책 140편, 열두 사도에 대한 서품(敍品 ordination) 의 내용은, 행성의 역사 기간 동안 주어진 메시지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으로 이해하고, 이에 몰두하면서, 자주 읽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가드는 “패시피커 대학졸업생 학원”에서 비교종교학에 대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책 세 권을 출판했으며, 미국, 라스베이거스, 네바다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네바다 지역 재단”, “남-네바다 종교-교류 위원회”, “어린이를 위한 변호 동맹”의 공동 설립자이며, 그의 아내와 40년이 넘도록, “남-네바다 의학” 단체에서 자원봉사자로서 활약하고 있다. 그는 1990년부터 신탁관리자이다.
올가 로뻬스 몰리나
올가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인근에 살고 있다. 컴퓨터 과학과 철학에 대한 학위를 가지고 있다. 공공 기업에서 컴퓨터 애널리스트로 근무하는 사회 봉사자이다. 결혼을 하여 이십 대 두 명의 딸이 있으며, 1995년부터 유란시아 북의 독자로서 국내외적으로 유란시아 단체에서 점점 더 활동을 증가하여 오고 있다. 8년 동안 스페인 유란시아 협회의 회장으로 있었으며, 유란시아 스페인어 번역본의 수정 팀에서 십여 년 간 활동을 하였다. 올가는 2022년 신탁관리자로서 선출되었으며, UBIS 스페인 지부의 운영자로서 봉사하고 있다.
쉐리 케스카트 차비스
쉐리는 고등학교 때부터 유란시아 북을 공부하여 오고 있다. 국내외적으로 비영리적인 사업의 개발과 자금조달 업무 분야의 전문가이다. 그는 듀크 대학에서 일반 교양과정 박사 학위를 받았다. 듀크 대학 의료 센터, 듀크 의료 학교, 듀크 의학 연구 기관에서 전략 기획과 사업 개발을 지도하고 있다. 현재 포춘 500 IT 회사에서 사업 개발 관리자로서 일하고 있다. 여러 봉사 활동 임무 가운데, 그는 UAI의 Tiding 과 The Journal 의 편집자로서 활동했으며, 그리고 유란시아 북 팰로쉽에서 교육 분과 위원으로 봉사하였다. 그는 결혼하여 노스 캐롤라이나 주, 듀햄에서 살고 있다. 2016년 부-신탁관리자 그리고 2022년 신탁관리자가 되었다.
빅터 가르시아-보리
오랜 세월 동안 책을 공부하여 온 빅터는 멕시코 시티에서 태어나서, 지금 가족과 함께 뉴욕에서 살고 있다. 30년이 넘도록, 미국과 국제적으로 비-영리 기업의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활동한 그의 전문 경력은, 여러 국가의 문화 분야 사람들과 작업하고, 봉사하고, 함께 활동하도록 하였다. 그는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유란시아 재단에서 스페인 업무 관리자였으며, 2022년 신탁관리자가 될 때까지 명예 부-신탁관리자로서 봉사하였다.
크리스 우드
크리스는 1998년부터 유란시아의 단체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왔다. 그는 유란시아 재단과 관련하여 자발적으로, 몇 년 동안은 스탭으로서, 지역이나 국가적인 위원회에서, 여러 기구 조직의 임원으로서, 그리고 2013년부터 2021년까지 유란시아 국제 협회(Uai) 의 회장으로서 봉사하였다. 유란시아의 활동 이외에, 그는 미국, 위스콘신 주, 그린 베이에서, 15년이 넘도록 항공 교통 관제사로서 근무했으며, 그리고 그가 속한 모임에서 사회적으로 정신적으로 봉사활동을 활발하게 하였다. 앨리스 우드와 결혼하였으며, 또한 앨리스도 유란시아 모임에서 활동하는 지도자이다. 그들의 두 자녀에게는 아주 드물게도 유란시아 북을 읽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네 분이 계신다. 크리스는 2021년 4월에 부-신탁관리자로, 그리고 2022년에 신탁관리자가 되었다.
게리 존슨
다문화 사회인 하와이에서 성장하면서, 십 대의 한 친구가, “예수가 만약 우리의 죄를 위하여 이곳으로 와서 죽어야만 했다면, 다른 모든 세상에 가서도 죽어야만 하지 않느냐?”라고 물었다. 그 질문은 게리가 스무 살이 되어서 유란시아 북을 찾을 때까지 게리의 속을 편치 않게 하였다. 그는 유란시아 팰로쉽 그랜드 캐년 모임의 창립 멤버였으며, 유란시아 북 팰로쉽 총괄 위원회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싱가폴과 인도에서 스터디 그룹을 만들었으며 여러 행사에서 발표를 하였거나 행사 지도자로서 활약하였다. 연설 병리학과 청각학의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사우디 아라비아, 싱가폴, 인도에서 학교 연설 전문 교육자와 부-교장으로서 26년 간 근무하였다. 은퇴를 한 후, 교육 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으며, 개인의 정신적인 성장을 위한 지도를 위하여 워크샾을 운영하고 있다. 게리는 남편 롭 마스트로이아니와 마우이에서 살고 있으며, 아들 둘, 손자 셋, 증손녀 한 명이 있다. 그는 2019년 부-신탁관리자가 되었다.
마르셀 피어붐
마르셀은 네덜란드 시민으로서 1980년 후반에 유란시아 북을 알게 되었으며, 유란시아 북을 네덜란드어로 번역한 가족의 스터디 그룹에 참가하였다. 2007년, UAI 네덜란드 협회에서 협회 웹사이트 개선을 도왔으며, 그 후 그 연도 8월 21일에 개최한 네덜란드 유란시아 모임 행사의 조직과 진행에 참가하였다. 2015년, 네덜란드 협회는 2018년 제 10회 국제 회의 개최의 조직을 의뢰 받았다. 행사는 크게 성공하였으며, 이 행사에서 마르셀은 유란시아 재단의 임원들을 만났었다. 그때부터 그는 재단 모임의 한 역할을 맡았으며, 2020년 부-신탁관리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