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편하나님과 개인의 관계
유란시아 서
제 5 편
하나님과 개인의 관계
(62.1) 5:0.1 우주의 아버지처럼 그렇게 크고 훌륭한 하나님이, 무한히 완전한 그의 영원한 거처로부터 어떻게 개별 인간 생물과 사귀려고 내려올 수 있는지 사람의 유한한 지성은 이해할 수 없다면, 정상의 정신을 가지고 도덕 의식을 가진 모든 유란시아 필사자의 지능 안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실제 분신(分身)이 거한다는 사실이 진실함에 근거를 두고, 그러한 유한한 지능은 신이 사귐을 안심하고 믿어야 한다. 사람에게 깃드는 생각 조절자는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영원한 신의 일부이다.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와 교통하기 위해서 사람은, 이 영적 실체의 개념을 혼이 숙고하는, 자신의 속 체험보다 더 멀리 나가야 할 필요가 없다.
(62.2) 5:0.2 하나님은 여섯 절대 동등자의 실존하는 실체들을 통해서, 그의 영원한 성품의 무한성을 분배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 성격(前性格) 분신들의 대리 행위를 통해서, 창조의 어느 부분이나 단계나 종류와도 언제나 직접 친히 연락할지 모른다.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은, 온 우주의 신다운 창조자들과 살아 있는 피조물에게 성격을 수여하는 특권도 따로 남겨 두었고, 나아가서 하나님은 성격 회로를 통해서, 이 모든 성격자와 직접, 부모로서 연락을 유지하는 특권도 남겨 놓았다.
(62.3) 5:1.1 유한한 생물이 무한한 아버지한테 가까이 갈 수 없음은 아버지의 초연함이 아니라, 지음받은 존재들의 타고난 유한성과 물질적 한계에 본래부터 따른다. 우주에 존재하는 가장 높은 성격자들과 하등 집단의 피조 지성들 사이에 큰 영적 차이는 상상할 수 없다. 아버지 자신이 계신 앞으로, 하급 지성들을 한 순간에 수송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들은 자기가 그 자리에 서 있는 줄도 모를 것이다. 지금 있는 곳과 꼭 마찬가지로, 우주의 아버지가 자리에 계심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거기에 있을 것이다. 한결같이, 가능한 영역 안에서, 파라다이스의 우주의 아버지 앞으로 안전히 안내받기를 요구할 수 있기 전에, 필사자의 앞에는 머나먼 길이 놓여 있다. 일곱 으뜸 영 가운데 어느 한 분이라도 보게 만드는 영적 시력(視力)이 생기는 수준에 다다를 수 있기 전에, 사람은 영적으로 여러 번 모습이 바뀌어야 한다.
(62.4) 5:1.2 우리 아버지는 숨어 있지 않으며, 멋대로 은둔하지 않는다. 그의 우주 영토에 있는 아이들에게 자신을 나타내는 결코 그치지 않는 노력으로 그는 신다운 지혜의 자원을 동원하셨다. 무한한 웅대함과 말할 수 없는 관용이 그의 사랑의 훌륭함과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을 이해하거나, 사랑하거나, 그에게 가까이 올 수 있는 모든 창조된 존재와 사귐을 하나님이 동경하게 만든다. 따라서 네가 필사자로 올라가는 여행 목적지에 이르고, 만물의 중심에서 아버지 앞에 서는 그 시간과 장소와 경우를 정하는 것은, 네 안에 있는 타고난 한계요, 그것은 너의 유한한 성격과 물질 존재로부터 뗄 수 없다.
(63.1) 5:1.3 파라다이스에 아버지가 계신 앞으로 가까이 가는 것은, 네가 영적 진보의 가장 높은 유한 수준에 다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네 안의 혼, 그리고 영답게 변하는 너의 자아와 아주 밀접히 관련된 영, 아버지가 수여한 영과 즉시 교통하는 상존하는 가능성을 깨닫고 너는 기뻐해야 한다.
(63.2) 5:1.4 시공 영역에서 필사자들은 타고난 능력과 지능 자질이 크게 다를 수 있다. 사회의 진전과 도덕적 진보에서 예외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누릴 수도 있거나, 아니면 문명의 예술에서 문화, 그리고 기대된 진보를 돕는 거의 모든 인간적 혜택이 모자라서 고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올라가는 생애에서, 영적 진보의 가능성은 만민에게 평등하다. 진화 세계에서 다양하게 된 물질 환경에서 보는 모든 그러한 사회 도덕의 차이와 아주 별도로, 영적 통찰력과 우주 의미의 높아지는 수준이 달성된다.
(63.3) 5:1.5 유란시아의 필사자들이 그 지능•사회•경제적 기회, 심지어 도덕적 기회와 자질에서 어떤 차이가 있더라도, 그들의 타고난 영적 재산은 한결같고 독특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 그들은 모두 똑같이, 아버지가 선물한 신성한 계심을 누리고 있다. 그들은 신성한 기원을 가진, 안에 깃드는 이 영과 가까이 몸소 교통하는 특권을 똑같이 누리며, 또한 그들 모두가 이 신비의 감시자의 한결같은 영적 인도를 똑같이 받아들이기를 택할 수도 있다.
(63.4) 5:1.6 필사 인간이 진심으로 영적으로 자극받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데 아낌없이 헌신하면, 그 사람은 깃드는 신다운 조절자를 영적으로 아주 확실하게, 아주 효과적으로 받았으니까, 하나님을 갈수록 더 닮아 가는 진취적 체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는 숭고한 의식이, 그리고 하나님을 찾아내는 목적으로 살아남는다는 더할 나위 없는 확신이, 그 개인의 체험에서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63.5) 5:1.7 사람 안에는 살아남는 생각 조절자가 영적으로 깃든다. 그러한 인간의 지성이 진지하게 영적 면에서 자극받으면, 그러한 인간 혼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닮기를 바라고 정직하게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바라면, 인간의 결핍이 가져오는 어떤 부정적 영향도, 간섭이 가능한 긍정적 세력도, 그렇게 신성하게 자극받은 혼이 파라다이스 입구까지 안전히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63.6) 5:1.8 아버지는 모든 생물이 그와 몸소 교통하기를 바라신다. 생존(生存)의 지위와 영적 성품으로 보아서 그런 달성이 가능한 모든 사람을 받아들일 자리를 아버지는 파라다이스에 가지고 계신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영원히 너희의 철학 속에 잠겨 안심하여라: 너희 하나하나에게,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은 가까이할 수 있는 분이다. 우리는 아버지를 만나 뵐 수 있고, 그 길은 열려 있다. 우주마다 자격 있는 모든 지성 존재가 파라다이스의 우주의 아버지가 계신 앞까지 올라가는 것을 쉽게 만들려는 노력으로, 신의 사랑의 세력, 신성한 행정의 수단과 방법이 모두 서로 얽혀 있다.
(63.7) 5:1.9 하나님께 도달하는 데 방대한 시간이 든다는 사실은, 무한자의 계심과 성격의 현실성을 조금도 줄이지 않는다. 너의 승천은 일곱 초우주 회로의 일부요, 너는 그 둘레를 수없이 돌게 될 터이지만, 영과 신분의 면에서, 너는 언제나 안쪽을 향하여 도는 것을 기대해도 좋다. 이 구체(球體)에서 저 구체로, 바깥 회로에서 안쪽의 중 심으로 늘 가까이 옮겨진다는 것을 너는 믿어도 좋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네가 신성한 중심 앞에 서서, 상징으로 말하면, 얼굴을 마주하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말라. 그것은 실제로, 글자 그대로 영 수준에 도달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신비의 감시자가 안에 거한 적이 있는 존재, 그리고 그 생각 조절자와 나중에 영원히 합친 자마다, 이 영적 수준에 다다를 수 있다.
(64.1) 5:1.10 아버지는 영적으로 숨어 있지 않다. 그러나 아주 많은 피조물이 스스로 외고집으로 내린 결정의 안개 속에 숨어 버렸다. 자신들의 비뚤어진 길을 고르고, 참을성 없는 지성과 비영적 성품을 가진 자기 주장에 빠짐으로써, 그들은 아버지 영과 그 아들 영과 교통함으로부터 당분간 자신들을 차단해 버렸다.
(64.2) 5:1.11 필사 인간은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도 있고, 선택의 힘이 남아 있는 한, 신의 뜻을 거듭해서 저버릴 수도 있다. 사람이 아버지의 뜻을 택할 힘을 잃어버릴 때까지 사람의 마지막 멸망은 정해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마음이, 자식들의 필요와 탄원하는 소리에 문을 닫는 적은 한 번도 없다. 신의 뜻을 실행하려는―하나님을 알고 그와 같이 되려는―바람을 마지막으로 영원히 잃어버릴 때, 이 아이들은 아버지의 당기는 힘에 대하여 영원히 마음 문을 닫는다. 마찬가지로, 그러한 승천자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겠다고 마침내 돌이킬 수 없이 선택했다고 조절자 융합이 우주에 선포할 때, 사람의 영원한 운명이 보장된다.
(64.3) 5:1.12 크신 하나님은 필사 인간과 직접 접촉하며, 무한하고 영원하고 헤아릴 수 없는 자아의 일부를 그 사람 안에서 살고 머무르라고 주신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영원한 모험을 떠났다. 네 안에, 너의 둘레에 있는 영력(靈力)이 인도하는 데 네가 굴복하기만 하면, 공간의 진화 세계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그의 생물이 다다를 우주 목표로서 사랑의 하나님이 확정하신 운명을 달성하는 데 너는 실패할 수 없다.
(64.4) 5:2.1 무한자가 물리적으로 계신 것은 물질 우주의 현실이다. 지성 속에 신의 계심은 개인의 지적 체험의 깊이와 진화하는 성격자의 수준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틀림없다. 신의 영적 계심은 마땅히 우주에서 달라야 하며, 영적 감수 능력에 따라서, 또한 신의 뜻을 행하려는 피조물의 의지를 거룩히 바친 정도에 따라서 결정된다.
(64.5) 5:2.2 하나님은 영에게서 태어난 아들 각자 안에 살아 계신다. 파라다이스 아들들은 하나님 앞에, 곧 “하나님 바른 편”에 언제나 다가갈 수 있고, 모든 생물 성격자는 “아버지의 품”에 다가갈 수 있다. 이것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접촉되든지, 아니면 중앙 거처나, 다른 지정된 장소, 예를 들면, 파라다이스의 거룩한 일곱 구체 중 어느 한 곳과 같은 장소에서, 우주의 아버지와 몸소 자의식하는 접촉과 교통이 따르는 성격 회로를 말한다.
(64.6) 5:2.3 그러나 신의 계심은, 자연의 어디서나 또는 심지어 하나님을 아는 필사자들의 삶에서 발견되기보다, 안에 깃드는 신비의 감시자, 파라다이스의 생각 조절자와 네가 교통을 시도할 때, 아주 넉넉히, 아주 확실히 발견될 수 있다. 우주의 아버지의 영이 너 자신의 지성 속에 사는데, 창공에 멀리 떨어져 있는 하나님을 꿈꾸는 것은 얼마나 큰 잘못인가!
(64.7) 5:2.4 네 안에 깃드는 바로 이 하나님의 분신 때문에, 네가 조절자의 영적 인도와 조화를 이루며 진보하는 동안, 너를 둘러싸고 너와 마주치지만 너를 구성하는 일부로서 활동하지 않는 다른 영적 영향의 존재와 변화시키는 힘을 너는 더욱 잘 식별하 기를 바랄 수 있다. 깃드는 조절자와 가깝고 밀접하게 연락하는 것을 네가 지적으로 의식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조금도 그러한 숭고한 체험이 그릇되다고 반증하지 않는다. 신다운 조절자와 사귄다는 증명은, 전적으로 개별 신자의 생활 체험에서 맺는 영의 열매의 성질과 테두리에 있다. “너희는 열매로서 저희를 알지니라.”
(65.1) 5:2.5 필사 인간의 지성, 빈약하게 영적으로 변화된 물질 지성은, 파라다이스 조절자와 같이 그렇게 신다운 통일체의 영적 활동을 뚜렷이 의식하기가 지극히 힘들다. 지성과 조절자가 함께 빚어낸 혼의 존재가 더욱 뚜렷해짐에 따라서, 새 단계의 혼 의식이 또한 진화되는데, 이것은 신비의 감시자의 영적 인도하심과 기타 초물질 활동이 있음을 체험하고 알아보는 능력이 있다.
(65.2) 5:2.6 조절자와 교통하는 체험 전체는 도덕적 지위, 정신의 자극, 영적 체험이 따르는 체험이다. 그러한 성과를 자아가 이룩하는 것은, 순전히 그렇지는 않아도, 주로 혼 의식의 영역에 국한된다. 하지만 그 증거는 내부의 영과 연락하는 그런 모든 사람의 생활에서, 영의 열매의 표현에서 앞으로 나타나며 풍부하게 있다.
(65.3) 5:3.1 우주의 관점에서 볼 때 파라다이스 신들은 비록 하나와 같지만, 유란시아에서 사는 부류의 존재와 가지는 영적 관계에서 이들은 또한 서로 다르고, 따로 있는 세 분의 성격자이다. 성격의 매력과 교통의 문제에서, 그리고 기타 밀접한 관계에서 신위(神位)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가장 높은 의미에서, 우리는 우주의 아버지, 오직 그분을 예배한다. 그의 아들 창조자들 안에서 드러나는 그 아버지를 우리가 예배할 수 있고, 또 예배하는 것이 참말이지만, 직접 또는 간접으로 예배와 찬미를 받는 분은 아버지이다.
(65.4) 5:3.2 모든 종류의 간청(懇請)은 영원한 아들과 그 아들의 영적 조직의 분야에 속한다. 기도, 모든 정식 교통은, 우주의 아버지를 찬미하고 예배하는 것을 빼고, 지역 우주의 관심거리이다. 이런 기도(祈禱)는 보통 한 아들 창조자의 관할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의심할 여지 없이, 예배는 아버지의 성격 회로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창조자의 몸으로 연결되고 전해진다. 우리는 더욱 나아가서, 조절자가 깃드는 한 피조물이 표현하는 경의(敬意)를 기록하는 것은 아버지 영의 계심으로 말미암아 쉬워진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을 보여 줄 증거는 엄청나게 많이 있고, 모든 계급의 아버지 분신들은 그 백성의 진정한 찬미를 우주의 아버지가 계신 앞에서 알맞게 기록하라고 권한을 받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조절자들은 하나님과 전 성격으로 직접 교통하는 경로도 또한 이용하며, 이들은 영원한 아들의 영 인력 회로도 마찬가지로 쓸 수 있다.
(65.5) 5:3.3 예배는 그 자체를 위한 것이다. 기도는 자신이나 생물의 이익(利益) 요소를 담고 있으며, 이것이 예배와 기도의 큰 차이이다. 참된 예배에는, 자신을 위한 요청이나 기타 개인 이익의 요소가 아예 없다. 우리가 하나님을 헤아리는 그대로 하나님을 예배할 뿐이다. 예배는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고, 예배하는 사람을 위해서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한 존경으로부터 우리가 무언가 얻을까 싶어서 우리가 아버지를 예배하지는 않는다. 아버지의 비할 데 없는 성격을 깨달음에 따라서 자연스럽고 저절로 우러나오는 반응으로서, 또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성품과 찬미할 속성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교통하고 예배에 참여한다.
(65.6) 5:3.4 자기 이익의 요소가 예배에 끼어드는 그 시각, 그 순간에, 교통은 예배에서 기도로 바뀌고 더욱 적절하게 영원한 아들이나 아들 창조자의 몸에 지향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종교적 체험에서, 진정한 예배의 일부로서 아버지 하나님한테 기도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66.1) 5:3.5 일상 생활의 실무를 다룰 때 너는 셋째 근원 중심에 기원을 가지는 영 성격자들의 손에 맡겨지며, 너는 합동 행위자의 대리자들과 협조하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너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아들에게 기도하고 그와 교통하며, 네가 사는 세계에서, 너의 우주에 두루 작용하는 무한한 영의 지성 존재들과 연락하여, 네가 땅에서 머무르는 동안에 생기는 자세한 일을 풀어 나간다.
(66.2) 5:3.6 지역 우주의 운명을 주관하는 아들 창조자나 군주 아들은 파라다이스에 계신 우주의 아버지와 영원한 아들, 이 두 분을 대신한다. 이 우주 아들들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 각자의 창조 전역에 걸쳐서 예배 성질의 찬미를 받고, 탄원하는 백성의 간청에 귀를 기울인다. 한 지역 우주의 아이들에게는, 모든 실질 의도와 목적에서 볼 때, 미가엘 아들 한 분이 하나님이다. 그는 우주의 아버지와 영원한 아들이 지역 우주에서 성격화된 것이다. 무한한 영은 우주 영들을 통해서 이 영역의 아이들과 개인적 접촉을 유지하며, 이들은 파라다이스 아들 창조자들에게 행정 및 창조에 동료이다.
(66.3) 5:3.7 진지한 예배는, 진화되는 혼의 지배 밑에서, 관계된 생각 조절자의 신성한 방향지도를 받고, 인격의 모든 힘을 동원함을 뜻한다. 물질적 한계를 가진 지성은, 참 예배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 결코 깊이 의식할 수 없다. 예배하는 체험의 현실을 사람이 깨닫는 것은, 진화되는 그 불멸의 혼의 발육 상태에 따라서 주로 좌우된다. 혼의 영적 성장은, 지적 자의식과 전혀 따로 일어난다.
(66.4) 5:3.8 예배하는 체험은 약혼한 조절자가 인간 혼의 말할 수 없는 바람과 입밖에 낼 수 없는 희망을 신성한 아버지께 전하려고 숭고하게 시도하는 데 있으며, 하나님을 찾는 필사 지성과 하나님을 계시하는 불멸의 조절자가 공동으로 이 혼을 창조한다. 그러므로 예배는 관계된 영의 인도하심 밑에서, 영답게 변하는 자아가 우주의 아버지의 아들, 믿음의 아들로서 하나님과 교통하려고 애쓰는 데 그 물질 지성이 찬성하는 행동이다. 필사자의 지성은 예배 드리는 데 찬성하고, 불멸의 혼은 예배를 갈망하고 개시한다. 신다운 조절자의 계심은 필사자의 지성과 생성되는 불멸의 혼을 위하여 그러한 예배를 지휘한다. 최종으로 분석해 보면, 참된 예배는 지성, 상물질, 영, 성격, 이 네 가지 우주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체험이 된다―지성과 혼과 영의 의식(意識), 그리고 성격 안에서 이 세 가지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66.5) 5:4.1 하나님을 추구하는 여행에서, 진화 종교들이 지닌 도덕은 두려움의 원동력으로 사람을 앞으로 민다. 사람이 하나님처럼 되기를 몹시 바라니까, 계시 종교는 사랑의 하나님을 찾으라고 사람을 유혹한다. 그러나 종교는 단지 “절대로 의존”하고 “영생을 보장”하는 피동적 느낌이 아니다. 종교는 인류에 봉사하는 데 기초를 두고 신성에 다다르는, 생생하고 동태적인 체험이다.
(66.6) 5:4.2 참 종교가 크게 즉시 베푸는 봉사는, 인간의 체험 속에서 지속되는 통일성, 곧 오래 가는 평화와 깊은 확신이 서는 것이다. 원시인에게는, 다신교조차도 신에 대 한 진화하는 개념이 상대적으로 통일된 것이며, 다신교는 싹트는 일신교이다. 머지 않아 하나님이 가치 있는 실체, 의미의 알맹이, 진리의 생명이라고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운명이 정해져 있다.
(67.1) 5:4.3 하나님은 운명을 결정하시는 분일 뿐 아니라, 사람의 영원한 목적지이다. 인간의 모든 비종교 활동은, 우주를 굽혀서 자신의 비뚤어진 용도에 쓰기를 추구한다. 참으로 종교적인 사람은 자아를 우주와 동일시하기를 구하며, 그리고 나서 이렇게 통일된 자아의 활동을, 우주 가족의 인간 및 초월 인간 동료 존재들에게 봉사하는 데 바치려고 애쓴다.
(67.2) 5:4.4 철학과 예술의 분야는, 인간 자아의 비종교 활동과 종교 활동 사이에 낀다. 예술과 철학을 통해서, 물질적 머리를 가진 사람은 영원한 의미를 담은 영적 실체와 우주의 가치를 숙고하라고 유혹을 받는다.
(67.3) 5:4.5 모든 종교는 신을 예배하기를 가르치고 인간이 구원된다는 어떤 교리를 가르친다. 불교(佛敎)는 고통으로부터 구원받는 것, 끝없는 평화를 약속한다. 유대교는 어려움으로부터 구원받는 것, 올바름에 기초를 둔 번영을 약속한다. 그리스인의 종교는 아름다움을 실현함으로, 부조화와 더러움으로부터 구원을 약속했다. 그리스도교는 죄로부터 구원, 거룩함을 약속하고, 모하메드교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준엄한 도덕 기준으로부터 구제를 마련해 준다. 예수의 종교는 자아로부터 구원이요, 곧 시간과 영원 속에서 피조물이 떨어져 있는 악으로부터 구원받는 것이다.
(67.4) 5:4.6 히브리인들은 종교의 기초를 선에 두고, 그리스인들은 아름다움에 두었으며, 두 종교가 진리를 추구했다. 예수는 사랑의 하나님을 보여 주었고, 사랑은 진리•아름다움•선을 모두 둘러싼다.
(67.5) 5:4.7 조로아스터 교인들은 도덕성을 가진 종교가 있고, 힌두 교인들은 형이상학의 종교가 있으며, 공자(孔子)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은 윤리의 종교가 있었다. 예수는 봉사하는 종교를 실천했다. 이 모든 종교가 예수의 종교에 이르는 바른 접근법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종교는 인간의 체험에서 좋고 아름답고 참된 모든 것을 영적으로 통일하는 실체가 되는 운명을 가졌다.
(67.6) 5:4.8 그리스인의 종교에는 “너 자신을 알라”는 표어가 있었고, 히브리인들은 “너의 하나님을 알라”는 가르침에 집중했으며, 그리스도 교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목표를 둔 복음을 전파했다. 예수는 “하나님을 알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라”는 복음을 선포했다. 종교의 목적에 대하여 이처럼 다른 개념들은 다른 생활 상황 속에서 개인의 태도를 결정하고, 예배의 깊이, 그리고 사람이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습관의 성질을 예시한다. 어떤 종교라도 그 영적 지위는 그 기도의 성질에 따라 좌우되는가 싶다.
(67.7) 5:4.9 반(半) 인간답고 시샘하는 하나님의 개념은, 다신교에서 숭고한 일신교(一神敎)로 넘어가는 사이에 불가피한 과도기 현상이다. 신을 인격화하는 사상을 높인 것은, 순전한 진화 종교가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리스도교는 신을 인격화하는 사상을, 인간의 이상으로부터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 인격의 초월하는 신성한 개념까지 높이 들어올렸다. 이것이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으로 신을 인격화한 것이다.
(67.8) 5:4.10 그리스도교에서 하나님 개념은 세 가지 다른 가르침을 통합하려는 시도이다:
(67.9) 5:4.11 1. 히브리 개념―도덕적 가치의 옹호자인 하나님, 올바른 하나님.
(67.10) 5:4.12 2. 그리스 개념―통일자인 하나님, 지혜의 하나님.
(68.1) 5:4.13 3. 예수의 개념―살아 계신 친구, 사랑의 아버지요, 신성한 존재인 하나님.
(68.2) 5:4.14 따라서 그리스도교의 복합된 교리는 일관성을 얻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이 뻔하다. 이러한 어려움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교리가 알렉산드리아의 필로, 나사렛 예수, 타르수스의 바울, 다른 이 세 사람이 몸소 겪은 종교적 체험에 대체로 기초를 두었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악화되었다.
(68.3) 5:4.15 예수의 종교적 일생을 연구하면서, 예수를 긍정적으로 보라. 그가 죄 없다는 사실보다 그의 올바름, 사랑의 봉사를 생각하라. 예수는 하늘 아버지에 관한 히브리인의 개념에서 나타나는 피동적 사랑을, 죄짓는 사람조차도 포함해서 모든 사람의 아버지인 하나님의 더 높은 사랑, 적극적이고 피조물을 사랑하는 애정의 높이까지 들어올렸다.
(68.4) 5:5.1 도덕은 스스로 의식하는 이성(理性)에 그 기원이 있다. 도덕은 동물 성향을 초월하지만 순전히 진화된 것이다. 인간의 진화는 그것이 전개되면서, 조절자들이 수여되고 진리의 영이 퍼부어지기 전에 있던 자원을 모두 포함한다. 그러나 도덕 수준에 다다르는 것은 필사자의 삶에서 생기는 진짜 투쟁으로부터 사람을 구원하지 않는다. 사람의 물리적 환경은 살기 위한 싸움을 수반하고, 사회의 배경은 윤리적 조정을 필요하게 한다. 도덕적 상황은 이성의 가장 높은 분야에서 선택하기를 요구하며, 영적 체험(하나님을 깨달은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고 그처럼 되도록 진지하게 애쓰기를 요구한다.
(68.5) 5:5.2 종교는 과학의 사실, 사회에 대한 책임, 철학의 가정(假定), 또는 도덕이 암시하는 의무에 기초를 두지 않는다. 종교는 생활 형편에 대하여 인간이 반응하는 독립된 분야이며, 도덕이 생긴 뒤 인간이 성장하는 모든 단계에서, 종교는 어김없이 드러난다. 종교는 가치를 실현하고 우주 친교를 누리는 모두 네 수준에 침투한다: 자아를 보호하는 물리적 수준, 곧 물질 수준. 친교하는 사회 수준, 곧 감정의 수준. 이성이 작용하는 도덕 수준, 곧 의무 수준. 신성한 예배를 통하여 우주 친교를 의식하는 영적 수준.
(68.6) 5:5.3 사실을 추구하는 과학자는 하나님을 첫째 근원, 물력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적인 예술가는 하나님이 아름다움의 이상(理想), 미학의 하나님이라고 본다. 이치를 따지는 철학자는 때때로, 우주를 통일하는 하나님, 아니 범신적 신조차 가정해 보고 싶어한다. 믿음을 가진 종교가는 살아남는 것을 보살피는 하나님, 하늘에 계신 아버지,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다.
(68.7) 5:5.4 도덕적 행위는 언제나 진화된 종교에 앞서며, 계시된 종교의 일부가 되는 일도 있지만, 결코 종교적 체험의 전부는 아니다. 사회에 봉사하는 것은 도덕적 생각과 종교적 생활이 낳는 결과이다. 도덕은 종교적 체험을 가지는 더 높은 영적 수준까지 생물학적으로 이끌지 않는다. 추상적 아름다움을 찬미함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을 격찬하는 것도 통일성을 경외하는 것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다.
(68.8) 5:5.5 진화된 종교는 과학•예술•철학의 어머니요, 이것은 조절자가 수여되고 진리의 영의 오심까지 넣어서, 계시된 종교를 받아드리는 수준까지 사람을 높여 주었다. 인간 존재의 진화적 그림은, 종교에서 시작하고 종교에서 끝난다. 종교의 질에서 아주 다르지만, 하나는 진화적•생물학적 종교요, 다른 하나는 계시적이고 주기성이 있는 종교이다. 그래서 종교가 사람에게는 정상이고 자연스러운 한편, 또한 사람이 선택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 뜻을 거역하여 종교적일 필요가 없다.
(69.1) 5:5.6 종교적 체험은 그 본질이 영적 체험이니까, 결코 물질 지성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신학, 종교의 심리학이 생긴다. 인간이 하나님을 깨닫는다는 기본 교리는 유한하게 이해했을 때 역설(逆說)을 만들어 낸다. 인간의 논리와 유한한 추리는 신이 안에 계신다는 개념, 하나님이 모든 개인 안에 계시고 그 일부라는 개념을 하나님의 초월 관념, 신이 온 우주를 지배한다는 관념과 조화시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지적 예배를 정당화하고 성격이 살아남을 희망을 확인하기 위해서, 성격을 가진 하나님의 초월성 개념을 믿음으로 이해하고, 바로 그 하나님의 분신(分身)이 깃드는 계심을 깨닫는 가운데, 이 두 가지 주요한 신 개념이 통일되어야 한다. 종교의 실체를 필사자가 지적으로 이해할 능력이 도무지 없다는 사실에, 종교의 어려움과 역설이 본래부터 생긴다.
(69.2) 5:5.7 필사자는 땅에서 현세에 머무르는 동안에도, 종교적 체험에서 세 가지 큰 만족을 확보한다:
(69.3) 5:5.8 1. 지적으로 사람은 더욱 통일된 인간 의식의 만족함을 얻는다.
(69.4) 5:5.9 2. 철학적으로 사람은 도덕적 가치에 관한 그의 이상이 구체화되는 것을 즐긴다.
(69.5) 5:5.10 3. 영적으로 신의 동반자가 되는 체험을 맛보면서, 참된 예배에서 얻는 영적 흐뭇함 속에서 사람은 잘 자란다.
(69.6) 5:5.11 그 영역의 진화하는 필사자가 체험하다시피,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은 세 가지 다른 요소, 곧 실체를 의식하는 세 가지 차별 수준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첫째로, 지성 의식―하나님 관념을 이해하는 것이다. 다음에는, 혼 의식―하나님의 이상을 깨달음이 따른다. 마지막으로, 영 의식―하나님이 영 실체라는 깨달음이 떠오른다. 아무리 어설프더라도 신을 깨닫는 데 필요한 이 요소들을 통일함으로, 사람의 인격은 하나님의 성격을 깨달으면서, 항상 모든 의식 수준을 덮는다. 최후 군단에 도달한 필사자의 경우에는, 시간이 지나면 이 모두가 하나님이 최상위임을 깨닫도록 이끌고, 그 뒤에는 하나님이 궁극위v임을 깨닫는 단계에 궁극에 이르게 될지 모르며, 이것은 파라다이스 아버지를 초한하게 초월 의식하는 어떤 단계이다.
(69.7) 5:5.12 하나님을 의식하는 체험은 대대로 똑같지만, 인간의 지식이 향상되는 새 시대마다 하나님에 대한 철학적 개념과 신학적 정의가 바뀌어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것, 종교적 의식(意識)은 한 우주 현실이다. 그러나 종교적 체험이 아무리 옳다(진실)하더라도, 그것은 총명한 비평과 이치에 맞는 철학적 해석에 기꺼이 복종해야 한다. 종교적 의식은 인간 체험의 총체로부터 동떨어진 물건이 되기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
(69.8) 5:5.13 성격이 영원히 살아남는 것은 전적으로 필사자의 지성이 선택하는 데 달려 있고, 그 지성의 결정은 불멸의 혼이 살아남는 잠재성을 좌우한다. 지성이 하나님을 믿고 혼이 하나님을 알 때, 양육하는 조절자와 함께 지성과 혼 모두가 하나님을 바랄 때, 그 때 살아남는 것이 보장된다. 지능의 한계, 교육의 부족, 교양의 결핍, 사회적 지위의 빈약, 아니 교육 및 교양의 이점과 사회적 이점이 불행히 없어서 생기는 인간의 도덕 수준의 열등함조차, 그렇게 불운하고 인간적으로 불리해도 믿는 사람들 속에 신의 영이 계신 것을 무효로 만들 수 없다. 신비의 감시자가 깃드는 것은 시작이며, 그것은 불멸의 혼이 자라고 살아남는 잠재 가능성을 보장한다.
(70.1) 5:5.14 필사자인 부모의 출산하는 능력은 그들의 교육, 문화, 사회 또는 경제적 지위에 달려 있지 않다. 자연의 조건 밑에서 부모 요인들의 결합은 자식을 낳기에 아주 넉넉하다. 신다운 조절자와 결합해서, 옳고 그른 것을 헤아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의 지성은, 그 사람 안에서 살아남을 자질을 가진 불멸하는 혼의 생산을 시작하고 기르는 데 필요한 전부이며, 그러한 영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처럼 되기를 참으로 바라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정직하게 택하기만 하면 된다.
(70.2) 5:6.1 우주의 아버지는 성격자들의 하나님이다. 성격자 지위를 가지고 필사자인 가장 낮은 물질 생물부터 창조자의 위엄과 신의 지위를 가진 가장 높은 성격자에 이르기까지, 우주 성격자의 분야는 그 중심과 테두리가 우주의 아버지 안에 있다. 아버지 하나님은 모든 성격을 주고 보존하는 분이다. 마찬가지로, 파라다이스 아버지는 마음을 다하여 신의 뜻을 행하기를 택하는 모든 유한한 성격자,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처럼 되기를 몹시 바라는 자들의 운명이다.
(70.3) 5:6.2 성격은 우주에서 풀리지 않은 신비 가운데 하나이다. 여러 계급과 수준의 성격을 구성하는 데 들어가는 요소에 대하여 우리는 알맞는 개념을 지어낼 수 있지만, 성격 자체의 참 본질을 넉넉히 알지 못한다. 한데 모았을 경우에 인간 성격의 수송수단을 이루는 수많은 요소를 우리는 뚜렷이 파악하고 있지만, 그러한 유한한 성격의 본질과 중요성을 우리는 넉넉히 이해하지 못한다.
(70.4) 5:6.3 자의식하는 최소한으로부터 하나님을 의식하는 최대한까지, 지성 자질을 소유하는 모든 피조물 안에 성격은 잠재한다. 그러나 지성 자질만으로는 성격이 아니요, 영이나 물리적 에너지도 성격이 아니다. 성격이란 물질•지성•영 에너지가 결합되고 조정된 이 살아 있는 조직에 아버지 하나님이 혼자 수여한, 우주 실체 안에 있는 그 질과 가치이다. 성격은 점진적으로 성취하는 것도 아니다. 성격은 물질적이거나 영적일 수 있지만, 성격은 있든지 아니면 없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성격이 아닌 다른 것들은, 파라다이스 아버지가 직접 행위하시는 경우를 빼고, 결코 성격을 가진 자의 수준에 다다르지 못한다.
(70.5) 5:6.4 성격의 수여는 오로지 우주의 아버지의 독점(獨占) 기능, 곧 살아 있는 에너지 조직을 성격화하는 것이며, 그 조직에 우주의 아버지는 상대적 창조 의식의 속성과 그것을 자유 의지로 통제하는 속성을 준다.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따로 떨어진 성격자는 아무도 없고, 아버지 하나님이 아니면 아무 성격자도 있을 수 없다. 인간의 성격에 있는 절대 조절자 알맹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자아의 근본적 속성은, 우주에게 베푸는 봉사에서 우주의 아버지가 독점인 성격 영토에서 활동하면서 주신 것이다.
(70.6) 5:6.5 전(前) 성격 지위를 가진 조절자들은 수많은 종류의 필사 인간에게 깃들며, 그처럼 바로 이 존재들이 죽음을 겪고 다시 살아나서, 궁극에는 영에 도달하는 잠재성을 가진 상물질 생물로 성격화되는 것을 보장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성격을 받은 생물의 지성에, 성격자인 아버지의 전 성격 선물, 영원한 하나님 영의 분신이 깃들 때, 그 때 이 유한한 성격은 신답고 영원한 자의 잠재성을 소유하고, 궁극위와 비슷한 운명을 바라고, 아니 절대자를 깨달으려고 손을 뻗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71.1) 5:6.6 신이 준 성격을 받아들이는 능력은 전 성격인 조절자에게 본래부터 있다. 인간 성격을 받아들이는 능력은, 인간이 받은 우주 지성 자질에 잠재한다. 그러나 필사 인간의 물질 생명을 수송하는 수단이, 우주의 아버지의 해방시키는 신성의 손길을 받고, 이처럼 자의식을 가지고 (상대적으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창조하는 성격자로서 체험의 바다로 나가기까지, 필사 인간의 체험적 성격을 활동적•기능적 실체로서 관찰할 수 없다. 물질적 자아는 참으로 또 제한 없이 성격을 가진다.
(71.2) 5:6.7 물질적 자아는 성격과 신분, 현세의 신분이 있으며, 전 성격인 영 조절자도 신분, 영원한 신분이 있다. 이 물질 성격과 영(靈)인 이 전 성격은 그들의 창조 속성을 모아서, 불멸하는 혼의 살아남는 신분을 빚어낼 수 있다.
(71.3) 5:6.8 이처럼 불멸의 혼이 자라도록 마련하고, 사람의 속 자아를 선행(先行) 원인에 절대로 의존하는 사슬로부터 풀어 놓았기 때문에, 아버지는 옆으로 비켜 서신다. 이제 적어도 영원한 운명에 관한 한, 원인에 대한 반응의 사슬로부터 사람이 이처럼 풀려나고, 불멸의 자아, 곧 이 혼이 성장하도록 준비되었기 때문에, 사람 자신은 살아남는 영원한 자아의 창조를 의지(意志)하거나 그 창조를 억제하기만 하면 되고, 이 영원한 자아는 택하는 대로 자기 것이 된다. 넓은 온 우주에서 어떤 다른 존재, 물력, 창조자, 또는 대리자도, 필사자가 가진 자유 의지의 절대 주권에 어느 정도라도 간섭할 수 없으며, 이는 선택하는 사람 인격의 영원한 운명에 관하여, 선택 영역 안에서 그 자유 의지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영생에 관해서 말하면, 하나님은 물질적 필사자의 의지가 주권을 가졌음을 선포했고 이 선포는 절대적이다.
(71.4) 5:6.9 피조물에게 성격을 수여하는 것은, 선행하는 원인에 대하여 노예처럼 반응함으로부터 상대적 해방을 부여한다. 그러한 모든 도덕 존재의 성격은, 진화하든 그렇지 않든, 우주의 아버지의 성격에 집중된다. 영원한 하나님의 광대하고 우주적인 가족 사회와 친교 집단을 구성하는, 존재의 그 친족 관계로 말미암아, 그들은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계심 앞으로 늘 이끌린다. 모든 성격 안에는 신성한 자발성의 친족 관계가 있다.
(71.5) 5:6.10 온 우주의 성격 회로는 우주의 아버지의 몸에 집중된다. 파라다이스 아버지는 자의식하며 존재하는, 모든 수준의 성격자를 모두 친히 의식하고 그들과 친히 연락하신다. 그리고 모든 창조의 이 성격 의식은 생각 조절자의 임무와 별도로 존재한다.
(71.6) 5:6.11 모든 인력이 파라다이스 섬에 회로가 연결되며, 모든 지성이 합동 행위자에, 모든 영이 영원한 아들 안에서 연결되다시피, 모든 성격은 우주의 아버지가 몸소 계신 앞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회로는 모든 성격자의 예배를 최초의 영원한 성격자에게 어김없이 전해 준다.
(71.7) 5:6.12 조절자가 깃들지 않는 성격자들에 관하여 말하면, 우주의 아버지가 선택하는 자유의 속성도 수여했으며, 그러한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신의 사랑의 큰 회로, 곧 우주의 아버지의 성격 회로에 둘러싸인다. 하나님은 모든 참 성격자가 주권을 가지고 선택하게 한다. 어떠한 성격 생물도 영원한 모험을 하라고 강제될 수 없다. 오로지 자유 의지 하나님의 아들들, 자유 의지를 가진 아들들이 자유 의지로 선택하는 데 반응하여 영원의 입구(入口)가 열린다.
(72.1) 5:6.13 이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이 시간의 아이들과 가지는 관계를 발표하려는 나의 노력을 나타낸다. 모든 것을 종합해 보건대, 하나님이 너희의 우주 아버지요, 너희는 모두 혹성에서 그의 자식임을 되풀이하는 것보다 더 유익한 아무 일도 나는 할 수 없다.
(72.2) 5:6.14 [이 글은 유버르사의 한 신성한 조언자가 우주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발표한 시리즈의 다섯째이자 마지막 글이다.]
유란시아 서
- 표제지
- 제 1 부 중앙 우주와 초우주
- 제 1 편우주의 아버지
- 제 2 편하나님의 성품
- 제 3 편하나님의 속성
- 제 4 편하나님과 우주의 관계
- 제 5 편하나님과 개인의 관계
- 제 6 편영원한 아들
- 제 7 편영원한 아들과 우주의 관계
- 제 8 편무한한 영
- 제 9 편무한한 영과 우주의 관계
- 제 10 편파라다이스 삼위 일체
- 제 11 편영원한 파라다이스 섬
- 제 12 편온 우주
- 제 13 편파라다이스의 신성한 여러 구체
- 제 14 편신성한 중앙 우주
- 제 15 편일곱 초우주
- 제 16 편일곱 으뜸 영
- 제 17 편일곱 최상의 영 무리
- 제 18 편최상 삼위 일체 성격자
- 제 19 편삼위 일체 기원을 나란히 가진 존재
- 제 20 편하나님의 파라다이스 아들
- 제 21 편파라다이스 아들 창조자
- 제 22 편삼위 일체를 체험한 하나님의 아들
- 제 23 편외톨 사자
- 제 24 편무한한 영의 고등 성격자
- 제 25 편공간의 사자 무리
- 제 26 편중앙 우주에서 봉사하는 영
- 제 27 편1차 상천사의 봉사
- 제 28 편초우주의 봉사하는 영
- 제 29 편우주 동력 지휘자
- 제 30 편대우주의 성격자
- 제 31 편최후 군단
- 제 2 부 지역 우주
- 제 3 부 유란시아의 역사
- 제 4 부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