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0 편알렉산드리아의 로단
유란시아 서
제 160 편
알렉산드리아의 로단
(1772.1) 160:0.1 9월 18일, 일요일 아침에, 안드레는 다음 주에 아무 일도 계획하지 않으리라고 발표했다. 나다니엘과 토마스를 제쳐 놓고, 사도들은 다 가족을 찾아보거나 친구들과 함께 머물려고 고향으로 갔다. 이 주에 예수는 거의 완벽한 휴식을 누렸지만, 나다니엘과 토마스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로단이라는 어떤 그리스인 철학자와 토론하느라고 무척 바빴다. 이 그리스인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아브너의 동료 중 한 사람의 가르침을 통해서, 요즘에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 로단은 이제 자기의 생활 철학과 예수의 새로운 종교적 가르침을 조화시키는 일에 진지하게 몰두해 있었고, 주가 이 문제들을 함께 이야기하기를 희망하면서 마가단으로 왔다. 또한 예수나 사도들 가운데 하나로부터 직접 들은, 복음의 권위 있는 해석을 손에 쥐기를 바랐다. 로단과 그런 회담에 들어가기를 거절했어도, 예수는 그를 품위 있게 받아들였고, 나다니엘과 토마스에게 그가 하고 싶어했던 말을 모두 듣고, 그 대가로 복음에 관하여 일러 주라고 즉시 지시했다.
(1772.2) 160:1.1 월요일 아침 일찍, 로단은 나다니엘과 토마스, 그리고 어쩌다가 마가단에 들렸던 스무 명 남짓한 신자들의 집단에게 연속된 10 강연을 시작했다. 현대의 말투로 응축하고 통합하고 다시 표현하면, 이 여러 연설은 고려하기 위하여 다음 생각을 제시한다:
(1772.3) 160:1.2 인간의 생활은 세 가지 큰 욕구―충동, 욕망, 유혹물―에 담겨 있다. 강인한 인격, 위엄 있는 인격은 오직 생명의 자연스러운 충동을 사회적인 살아가는 지혜로 바꿈으로써, 현재 욕망을 오래 지속되는 성취가 가능한 상급 욕망으로 변화시킴으로 얻어지며, 한편 존재에 있는 평범한 유혹물은 사람의 전통적이고 확립된 관념으로부터, 아직 탐구되지 않은 관념과 발견되지 않은 이상(理 想)의 분야, 더 높은 분야로 옮겨져야 한다.
(1772.4) 160:1.3 문명이 복잡하게 되면 될수록, 살아가는 지혜는 더욱 어렵게 될 것이다. 사회의 관습에서 변화가 빠르면 빠를수록, 인격을 개발하는 과제는 더욱 까다로워질 것이다. 진보가 계속되려면, 열 세대마다 인류는 살아가는 지혜를 새로 배워야 한다. 사람이 아주 재능이 있어서 더욱 빨리 사회를 복잡하게 만들면, 살아가는 지혜는 더 짧은 시간 안에, 아마도 한 세대마다, 다시 통달할 필요가 있겠다. 살아가는 지혜의 진화가 존재하는 기술과 발걸음을 맞추지 못하면, 인류는 인생의 단순한 충동―현재 욕망의 만족―으로 재빨리 돌아갈 것이다. 따라서 인류는 미숙한 채로 남아 있고, 사회는 성숙하기까지 자라지 못할 것이다.
(1773.1) 160:1.4 사회적 성숙은, 사람이 단지 일시적인 현재 욕망을 더 우수한 열망을 품기 위하여 기꺼이 포기하는 그 정도와 대등하며, 그런 열망을 이루려는 노력은 영구한 목표를 향하여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더욱 풍부한 만족을 마련해 준다. 그러나 사회의 성숙함을 가리키는 참된 표시는, 이상주의의 영적 실체들의 목표, 아직 발견되지 않은 목표를 달성하는 탐구되지 않은 가능성을 추구하면서, 불안하고 에너지를 소모하는 유혹물을 얻기 위하여, 기존 관념과 전통적 아이디어로 된 유혹물의 기준, 편안을 권장하는 기준 아래서 한 민족이 평화롭게 만족해서 사는 권리를 기꺼이 내던지는 것이다.
(1773.2) 160:1.5 동물은 생명의 충동에 훌륭하게 반응하지만, 오직 사람이 살아가는 지혜를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인류의 대다수는 기껏해야, 살려는 동물 같은 충동만 느낀다. 동물은 오직 맹목적이고 본능인 이 충동을 알며, 사람은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이 충동을 극복할 능력이 있다. 사람은 지적 예술의 높은 수준에서, 아니 하늘의 기쁨과 영적 환희가 있는 수준에서 살기를 택해도 좋다. 동물은 사는 목적을 찾으려고 묻지 않는다. 따라서 결코 걱정하지 않으며, 자살하지도 않는다. 사람들 사이에서 자살(自殺)이 있는 것은 그러한 존재들이 순전히 동물 단계의 존재에서 솟아 나왔고, 더 나아가서 그러한 인간들의 탐구 노력이 사람으로 체험하는 예술적 수준에 다다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동물은 생활의 의미를 모른다. 사람은 가치를 인식하고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을 소유할 뿐 아니라, 또한 의미 중의 의미를 깨닫는다―통찰력을 자의식한다.
(1773.3) 160:1.6 사람들이 모험적인 예술과 불확실한 논리로 이루어진 인생을 얻으려고 자연스럽게 갈망하는 인생을 감히 버릴 때, 적어도 어느 정도 지능과 감정이 성숙할 때까지, 그 결과로 감정적 피해―갈등, 불행, 불확실성―을 겪을 위험에 부딪칠 것을 기대해야 한다. 낙심•걱정•게으름은 도덕적으로 미숙하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인간 사회는 개인의 성숙에 이르고 종족의 성숙에 이르는 것, 이 두 가지 문제에 부닥친다. 성숙한 인간은 부드러운 느낌과 너그러운 감정으로 모든 다른 필사자를 곧 바라보기 시작한다. 성숙한 인간들은 부모가 자식들에게 가지는 사랑과 생각으로 미숙한 사람들을 바라본다.
(1773.4) 160:1.7 성공적인 삶은 보통 문제를 해결하는 믿을 만한 기술을 통달하는 예술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문제라도 그 해결의 첫 걸음은 어려움을 찾아내고, 그 문제를 분리하고, 솔직하게 그 성질과 중대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큰 잘못은, 생활 문제가 우리의 깊은 두려움을 건드릴 때, 인정하려 하지 않는 데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어려움을 인정하는 것이 오래 간직한 자만심을 줄이거나, 질투를 인정하거나, 뿌리 깊은 편견 버리기를 수반할 때, 보통 사람들은 안전한 옛 망상(妄想), 그리고 오래도록 간직했던 안전하다는 거짓 느낌에 달라붙기를 더 좋아한다. 오직 용감한 사람이, 성실하고 논리적인 머리가 발견하는 것을 기꺼이 솔직하게 인정하고 두려움 없이 그에 부닥친다.
(1773.5) 160:1.8 어떤 문제라도 지혜롭고 효과적인 해결은, 해결하도록 저절로 나타나는 문제의 구성에 들어가는 실제 요인(要因)을 냉정하게 조사하는 것을 방해할지 모르는 편견과 정열, 그리고 순전히 개인적인 모든 다른 선입관에 지성이 매이지 않기를 요구한다. 생활 문제의 해결은 용기와 성실성을 요구한다. 오직 정직하고 용감한 사람들이 어지럽고 혼란한 생활의 미로(迷路)를 거쳐서, 두려움 없는 지성의 논리가 이끌지 모르는 곳까지 용감하게 따라갈 수 있다. 이렇게 지성과 혼을 해방하는 것은, 종교적 정열에 가까이 가는 총명한 열심의 추진력이 없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어려운 물질적 문제와 다양한 지적(知的) 위험이 가득한 목표를 추구하도록 사람을 움직이는 데는 위대한 이상의 매력이 필요하다.
(1774.1) 160:1.9 너희가 삶의 어려운 상황에 대처하려고 실질적으로 준비되었다 하더라도, 너희로 하여금 동료들로부터 진심으로 지지와 협동을 얻게 만들 그 지성의 지혜와 인격의 매력을 갖추지 않으면, 도저히 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 어떻게 동료들을 설득하는가, 사람들을 설복하는가 너희가 배울 수 없으면, 세속이나 종교적 일에서 너희는 크게 성공하기를 바랄 수 없다. 너희는 다만 요령(要 領)과 관대함을 지녀야 한다.
(1774.2) 160:1.10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는 모든 방법 가운데 가장 큰 것을 나는 너희의 주, 예수로부터 배웠다. 그가 아주 한결같이 실천하는 것, 아주 충실하게 너희에게 가르친 것, 예배하는 정신으로 명상(瞑想)에 잠겨 혼자 있는 것을 언급한다. 예수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교통하려고 아주 빈번하게 혼자 훌쩍 떠나가는 이 버릇에서, 생활의 보통 갈등을 다룰 힘과 지혜를 모으는 기술 뿐 아니라, 또한 도덕적•영적 성질을 가진 상급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에너지를 이용하는 기술이 발견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는 올바른 방법조차도 인격의 타고난 결함을 보상하거나, 참된 올바름을 간절히 바라고 목마르게 찾는 정신이 결여된 것을 보상하지 못할 것이다.
(1774.3) 160:1.11 예수가 혼자서 따로 가는 관습에 나는 깊이 감명을 받는다. 이것은 사는 문제를 고독하게 살펴보는 이 시간을 가지려는 것이요, 사회에 봉사하는 다채로운 요구를 충족하기 위하여, 지혜와 에너지의 새로운 저장을 찾으려는 것이다. 신성(神性)에 스치는 의식에 총 인격을 실제로 맡김으로 최고의 사는 목적을 자극하고 깊게 하려는 것이요, 살아 있는 존재의 늘 변하는 상황에 자신을 적응하는 새롭고 좀더 나은 방법을 움켜쥐려는 것이다. 사람의 개인적 태도의 중대한 재구성과 재조정을 성취하려는 것이요, 그런 태도는 가치 있고 실재하는 만물을 꿰뚫어보는 향상된 통찰력을 가지는 데 아주 필수이다. 한눈 팔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 모든 것을 하려는 것―“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하고 너희의 선생이 가장 좋아하는 기도를 진지하게 드리기 위한 것이다.
(1774.4) 160:1.12 너희 선생이 예배에 잠기는 이 관습은 정신을 새롭게 하는 휴식을 가져온다. 사람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빛,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문제에 용감하게 부딪치게 하는 용기, 무력(無力)하게 만드는 두려움을 말소하는 자아 이해, 사람으로 하여금 감히 하나님과 같이 되게 만드는 확신을 사람에게 주는, 신성과 연합하는 그 의식을 가져온다. 주가 실천하다시피, 예배에서 얻는 휴식, 곧 영적 교통은 긴장을 해소하고 갈등을 없애며, 인격의 총 자원을 힘차게 늘인다. 이 모든 철학에 하늘나라 복음을 더한 것은, 내가 알기에, 새 종교를 구성한다.
(1774.5) 160:1.13 편견(偏見)은 혼이 진리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눈이 멀게 하며, 오직 사람의 동포를 모두 둘러싸고 모두 포함하는 원인을 찬미하는 데 혼을 진지하게 바쳐야 편견을 없앨 수 있다. 편견은 이기심과 분리할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오직 자아의 추구를 버림으로써, 그 자리에 자아보다 더 클 뿐 아니라 모든 인류보다도 훨씬 더 큰 운동에 봉사하는 만족의 추구를―하나님 추구, 신성의 달성을―갈아치워야 편견을 없앨 수 있다. 인격이 성숙하다는 증거는, 가장 높고 가장 신성하게 실재하는 가치의 실현을 항상 추구하도록 인간의 소망을 변화시키는 데 있다.
(1774.6) 160:1.14 계속해서 변하는 세상에서, 진화하는 사회 체제의 와중에서 운명의 안정되고 확립된 목표를 유지하기는 불가능하다. 인격의 안정은 오로지, 무한히 달성할 영원한 목표로서,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받아들인 자들이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사람의 목표를 시간으로부터 영원으로, 땅에서부터 파라다이스로, 인간다운 것으로부터 신다운 것으로 옮기는 것은, 사람이 재생하고 변화되고 다시 태어날 것, 신다운 영이 다시 창조한 아이가 될 것, 사람이 하늘나라의 형제 정신에 들어갈 것을 요구한다. 이 이상(理 想)에 미치지 못하는 모든 철학과 종교는 미숙하다. 내가 가르치는 철학은 너희가 전파하는 복음과 연결되어 있고, 성숙한 새 종교, 모든 미래 세대의 이상을 대표한다. 또 이것이 참말이니, 우리의 이상은 최종이요, 틀릴 수 없고 영원하며, 보편•절대적이고 무한하기 때문이다.
(1775.1) 160:1.15 나의 철학(哲學)은 나에게 참으로 달성할 실체들, 성숙의 목표를 추구하라는 충동을 주었다. 그러나 나의 충동은 무력하고, 나의 탐구는 추진력이 모자란다. 나의 추구는 지향할 확실성이 없어 타격을 받았다. 예수의 이 새 복음이, 통찰력을 향상하고 이상을 높이고 목표를 안정시킴과 함께, 이 결점을 풍성하게 메워 주었다. 의심과 불안감 없이, 나는 이제 진심으로 영원한 모험에 들어갈 수 있다.
(1775.2) 160:2.1 사람들은 꼭 두 가지 방법으로 함께 살아도 좋은데, 물질의 길, 즉 동물의 길과 영적 길, 즉 인간다운 길이다. 신호(信 號)와 소리를 써서 동물은 제한된 방법으로 서로 교통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형태의 교통은 의미나 가치나 아이디어를 전하지 못한다. 사람과 동물 사이의 한 차이점은 사람이 상징의 수단을 써서 동료들과 의사를 소통할 수 있는 것이며, 상징은 의미와 가치와 아이디어, 아니 이상까지도 아주 확실히 지정하고 확인한다.
(1775.3) 160:2.2 서로 아이디어를 전달할 수 없으니까, 동물은 성격을 개발할 수 없다. 사람은 아이디어와 이상에 관하여, 이렇게 동료들과 교통할 수 있기 때문에 성격을 개발한다.
(1775.4) 160:2.3 인간의 문화를 구성하고, 사람에게 사회 관계를 통하여 문명을 세우게 하는 것은 의미를 전달하고 나누는 이 능력이다. 지식과 지혜가 쌓이는 것은 사람이 이 재산을 뒤잇는 세대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다. 이로서 종족의 문화 활동, 즉 예술•과학•종교•철학이 일어난다.
(1775.5) 160:2.4 인간들 사이에 상징으로 교통하는 것은 사회 집단이 생성되는 것을 예정한다. 모든 사회 집단 가운데 가장 효과적인 것은 가족, 더 자세히 말하면 부모이다. 개인적 애정은 이 물질적 관계를 함께 붙들어 두는 정신적 유대(紐帶)이 다. 그러한 효과적 관계는 또한, 진정한 우정의 헌신에서 아주 풍부하게 나타나다시피, 동성(同性)의 두 사람 사이에도 가능하다.
(1775.6) 160:2.5 우정의 결합과 서로 사랑하는 이 관계는 사람을 사회화하고 훌륭하게 만들며, 이는 그것들이 살아가는 지혜의 상급 수준에서, 다음의 필수 요소를 권장하고 수월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1775.7) 160:2.6 1. 서로 주고받는 자아 표현과 자아 이해. 많은 훌륭한 인간 충동은 그 표현을 들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죽어 버린다. 참으로,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은 좋지 않다. 어느 정도 인정받고 얼마큼 평가를 받는 것은 사람의 인품이 성장하는 데 필수이다. 가정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고는, 어떤 아이도 정상 인품을 제대로 기를 수 없다. 인품은 단순한 지성과 도덕률보다 더 큰 무엇이다. 인품을 길러 준다고 생각된 모든 사회 관계 가운데, 가장 효율적이고 이상적인 것은 총명한 결혼 생활에서 서로의 품속에서 남녀가 사랑하고 이해하는 우정(友情)이다. 결혼은 그 다양한 관계와 함께, 튼튼한 인품을 기르는 데 불가결한 값진 충동과 상급 동기를 이끌어 내도록 최선으로 고안되어 있다. 이처럼 나는 서슴지 않고 가족 생활을 찬미하는데, 너희의 선생이 아버지-아들 관계를 이 새로운 하늘나라 복음의 바로 그 주춧돌로 지혜롭게 골랐기 때문이다. 그러한 견줄 데 없는 관계 공동체, 시간 속에서 가장 높은 이상, 즉 남녀가 다정한 품에 안겨 있는 것은, 아주 값지고 흐뭇한 체험이니까, 그것을 얻기 위해 필요한 어떤 값, 어떤 희생이라도 치를 가치가 있다.
(1776.1) 160:2.7 2. 혼의 연합―지혜의 동원. 모든 인간은 얼마 있으면 이 세상에 대하여 어떤 개념, 또 다음 세상에 대하여 어떤 환상을 얻는다. 인격 관계를 통해서, 현세의 존재와 영원한 전망, 이 두 관점을 통일하는 것이 이제 가능하다. 이처럼 한 사람의 지성은 다른 사람의 통찰력을 많이 얻음으로 그 영적 가치를 크게 만든다. 이 방법으로 사람들은 각자의 영적 재산을 한데 합침으로 그 혼을 살찌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바로 이 방법으로 사람은 왜곡된 시력(視力), 치우친 관점, 좁은 판단에 희생자가 되는, 상존하는 그 성향을 피할 수 있게 된다. 두려움, 질투, 자만은 오로지 다른 지성들과 가까이 접촉함으로 막을 수 있다. 하늘나라를 확장하기 위하여 수고하라고 주가 결코 너희를 혼자 내보내지 않는 사실에 나는 너희의 주의를 불러일으킨다. 그는 언제나 너희를 둘씩 내보낸다. 지혜는 초월 지식이니까, 지혜를 연합할 때, 사회 집단은 작건 크건, 서로 모든 지식을 나누어 가진다.
(1776.2) 160:2.8 3. 살려는 열심. 고립은 혼의 에너지 전하(電荷)를 소모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이 친구들과 관계를 가지는 것은 살려는 열심을 새롭게 하는 데 필수이며, 인간 생활의 상급 수준으로 올라가는 결과로서 생기는 투쟁을 위한 용기를 유지하는 데 불가결하다. 우정은 기쁨을 더하고 삶의 승리를 영화롭게 한다. 사랑하고 가까운 인간 관계는 인생의 슬픔과 어려움의 고통에서 쓰라린 맛을 많이 가시게 한다. 친구가 곁에 있으면 모든 아름다움이 돋보이고 모든 선이 높아진다. 영리하게 상징을 씀으로 사람은 친구들의 이해하는 능력을 자극하고 키워 준다. 인간 우정의 더없는 영광의 하나는 서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힘과 가능성이다. 큰 영적 힘은 공통되는 명분에 진심으로 헌신하는 것, 우주의 신에게 공동으로 충성하는 것을 의식하는 데 본래부터 생긴다.
(1776.3) 160:2.9 4. 모든 악에 대한 강화된 방어. 인격 관계와 서로 사랑함은 악을 막는 효과적인 보장이다. 어려움•슬픔•실망•실패는 혼자 겪을 때 더 고통스럽고 마음 아프다. 관련을 가지는 것은 악을 올바름으로 변화시키지 않지만, 쏘는 아픔을 크게 더는 데 도움이 된다. 너희의 선생은 말했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친구가 위로하려고 가까이 있으면 그렇다.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복지(福祉)를 위하여 산다는 것, 그리고 다른 이 사람들이 마찬가지로 너희의 복지와 향상을 위하여 산다는 것을 아는 데 긍정적인 힘이 있다. 사람은 고립된 가운데 시든다. 시간의 일시적 거래만 볼 때, 인간들은 어김없이 낙심하게 된다. 지난날과 앞날로부터 떨어진 오늘은, 분통이 터지도록 하찮다. 오직 영원의 동그라미를 얼핏 보는 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최선을 다하도록 북돋아 주며, 사람 속에 있는 최선으로 하여금 최대로 일 하라고 도전할 수 있다. 이렇게 최선을 다할 때, 사람은 다른 사람들, 시간과 영원 속에서 동료 거주자들의 이익을 위하여 가장 사심 없이 산다.
(1777.1) 160:2.10 되풀이하건대, 영감을 주고 사람을 고귀하게 만드는 그러한 관련은 인간의 결혼 관계에서 그 이상적 가능성을 발견한다. 결혼 바깥에서 많은 것이 성취되고, 허다한 결혼이 이 도덕적•영적 열매를 도무지 맺지 못하는 것이 참말이다. 너무나 자주, 인간을 성숙하게 만드는 이 우수한 성취보다 낮은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자들이 결혼에 들어간다. 이상적인 결혼은 감정의 변동과 단순한 성적 매력의 변덕스러움보다 더 안정된 무엇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그러한 결혼은 진정하고 서로 몸소 헌신하는 데 바탕을 두어야 한다. 그래서 그렇게 믿을 만하고 효과적인, 인간 관계의 작은 단위들을 너희가 세울 수 있다면, 이 단위들이 총체에서 모였을 때, 세계는 크고 영화롭게 된 사회 구조, 도덕적으로 성숙한 문명(文明)을 바라볼 것이다. 그러한 종족은 너희 선생의 이상, 즉 “땅에는 평화요, 사람들 사이에 선의”와 비슷한 무엇을 비로소 실현할까 싶다. 그러한 사회가 완전하거나 악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성숙의 안정에 가까이 갈 것이다.
(1777.2) 160:3.1 성숙을 향한 노력은 일을 필요하게 만들며, 일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어디서부터 이 모든 것을 성취할 힘이 나오는가? 물리적인 것들은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 있지만, 주가 좋은 말씀을 하셨으니, “사람은 빵으로만 살 수 없도다.” 정상의 몸과 썩 좋은 건강을 소유했다 하더라도, 다음에 우리는 사람의 잠자는 영적 힘을 불러일으킬 자극제로서 작용할 유혹물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 안에 산다고 예수는 우리에게 가르쳤다. 그러면 혼 속에 묶인 이 신성(神性)과 무한의 힘을 방출하기 위하여 사람을 어떻게 유인할 수 있는가? 바깥을 향하여 이동하는 동안 우리 자신의 혼을 새롭게 하려고 하나님이 솟아 나와서,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혼을 깨우치고 향상(向上)하고 복을 주는 목적에 쓰이도록, 하나님을 해방하기 위하여 어떻게 사람들을 유인할 것인가? 너희 혼 속에 잠자는 이 잠재 능력을 내가 어떻게 최선으로 영원히 일깨울 수 있는가? 내가 확신하는 한 가지는 이것이다: 감정의 흥분은 이상적인 영적 자극이 아니다. 흥분은 에너지를 확대하지 않는다. 흥분은 오히려 머리와 몸의 힘을 써 버린다. 그러면 어디로부터 이 큰 일을 할 에너지가 오는가? 너희의 선생에게 눈을 돌리라. 우리가 여기서 에너지를 쓰는 동안에, 지금도 그는 산에서 힘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모든 문제의 신비는 영적 교통에, 예배에 감추어져 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명상과 휴식이 통합된 문제이다. 명상은 지성이 영과 접촉하게 만든다. 휴식은 영적 감수(感受) 능력을 결정한다. 그리고 약점 대신에 힘, 두려움 대신에 용기, 자아의 지성 대신에 하나님의 뜻으로, 이렇게 교환하는 것이 예배를 이룬다. 적어도, 이것이 철학자가 그 교환을 보는 방법이다.
(1777.3) 160:3.2 이 여러 체험이 자주 되풀이될 때, 체험은 버릇으로, 힘을 주는 경건한 버릇으로 굳어지며, 그러한 버릇은 궁극에 자체를 영적 인품으로 형성하고 그러한 인품은 마침내 사람의 동료들에게 성숙한 인격으로 인식된다. 이 관습은 처음에 어렵고 시간이 걸리지만, 버릇이 되면 한꺼번에 휴식을 주고 시간을 절약한다. 사회가 더욱 복잡하게 되고 문명의 자극제가 증가할수록,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자기의 영적 에너지를 보존하고 증대하기 위하여 고안된 관습, 그러한 보호하는 버릇된 관습을 기를 필요성이 더욱 급해진다.
(1778.1) 160:3.3 성숙에 이르는 데 또 다른 요건은 늘 변화하는 환경에 사회 집단들이 협동으로 적응하는 것이다. 미숙(未熟)한 사람은 동료들의 반감을 일으킨다. 성숙한 사람은 동료들한테서 마음에서 우러난 협동을 얻으며, 그로서 일생의 노력에서 얻는 열매를 여러 배로 늘인다.
(1778.2) 160:3.4 필요하다면, 옳다고 생각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하여 내가 싸워야 할 때가 있다고 나의 철학은 내게 이른다. 그러나 더 성숙한 종류의 성격을 가진 주는, 우수하고 매력 있는 기술, 수완과 관용(寬容)의 기술로 똑같은 승리를 쉽고도 품위 있게 얻을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너무나 자주, 우리가 권리를 위하여 투쟁할 때, 승자와 패자(敗 者), 모두가 진 것이 판명된다. “잠긴 문을 통해서 들어가려고 할 때, 지혜로운 사람은 문을 부수기보다 오히려 문의 열쇠를 찾으려 하리라” 하는 주의 말씀을 바로 어제 들었다. 단지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우리 스스로 확신을 가지려고 싸움에 빠지는 일이 너무 흔하다.
(1778.3) 160:3.5 새로운 이 하늘나라 복음은, 상급 생활을 위하여 새롭고 더 값진 동기를 준다는 점에서, 살아가는 지혜에 크게 쓸모가 있다. 그 복음은 새롭고 높은 운명의 목표, 최상의 사는 목적을 제시한다. 이 새로운 개념, 존재의 영원하고 신성한 목표는, 그 자체로 초월 자극이요, 사람의 상급 성품에 거하는 최선이 반응하기를 요구한다. 지적(知的) 생각의 산봉우리마다 지성을 위한 휴식, 혼을 위한 힘, 영을 위한 교통이 발견될 것이다. 높게 사는 그러한 유리한 지점으로부터, 사람은 더 낮은 수준의 생각―걱정•질투•시샘•앙갚음, 그리고 미숙한 성격의 자만심―의 물질적 염증을 초월할 수 있다. 높이 올라가는 이 혼들은 인생의 하찮은 것들에서 생기는 역행(逆行)하는 수많은 갈등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할 수 있고, 이로서 영 개념과 하늘 교통이 있는 더 높은 흐름을 의식하려고 자유롭게 된다. 그러나 쉽고 일시적인 달성을 추구하려는 유혹으로부터 인생의 목적을 부지런히 보호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목적은 광신주의의 비참한 위협에 면역이 되도록 육성되어야 한다.
(1778.4) 160:4.1 영원한 실체들의 달성에 한 마음을 기울이면서, 너희는 또한 현세 생활의 필요를 위하여 준비해야 한다. 영은 우리의 목표이지만, 육체는 사실이다. 때때로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우연히 손에 굴러 떨어질지 모르지만, 무릇 우리는 필요한 것들을 얻으려고 영리하게 일해야 한다. 인생의 두 가지 주요한 문제는, 현세의 생활을 꾸려 나가고 영원히 살아남기를 성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계를 잇는 문제조차도 그 이상적 해결에는 종교가 필요하다. 이 두 가지 다 상당히 개인적인 문제이다. 참된 종교는 사실, 개인과 따로 떨어져서 작용하지 않는다.
(1778.5) 160:4.2 현세의 생활에 필수인 것들은, 내가 보건대, 다음과 같다:
(1778.6) 160:4.3 1. 좋은 신체적 건강.
(1778.7) 160:4.4 2. 맑고 깨끗한 생각.
(1778.8) 160:4.5 3. 능력과 기술.
(1778.9) 160:4.6 4. 재산―생활의 물건.
(1778.10) 160:4.7 5. 실패를 견디는 능력.
(1778.11) 160:4.8 6. 문화―교육과 지혜
(1779.1) 160:4.9 몸의 건강과 능률에 관계되는 신체적 문제조차도, 주의 가르침의 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최선으로 해결된다: 사람의 육체와 지성은 하나님들의 선물이 거하는 자리요, 하나님의 영이 사람의 영이 된다. 이처럼 사람의 지성은 물질적인 것과 영적 실체들 사이에 중재자가 된다.
(1779.2) 160:4.10 사람이 인생에서 바람직한 것들을 한 몫 확보하는 데는 지능이 필요하다. 사람이 날마다 할 일에 충실하면 재산으로 보상받기를 보장하리라는 생각은 완전히 그릇되다. 때때로, 어쩌다가 생기는 재산이 아니면, 현세의 생활의 물질적 보상은 잘 조직된 어떤 경로에서 흐르는 것이 발견되며, 오직 이 경로에 가까이 가는 자들이 현세에 기울인 노력에 대하여 좋게 보상을 받으리라 기대해도 좋다. 가난은 언제나, 고립된 개별 경로(經路)에서 부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의 운명임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계획은 이 세상에서 번영하는 데 필수인 한 가지이다. 성공은 자기 일에 헌신할 뿐 아니라, 또한 사람이 물질적 부(富)가 있는 어떤 한 경로의 일부로서 활동하기를 요구한다. 사람이 지혜롭지 못하면, 물질적 보상이 없이 자기 세대에 바친 삶을 살 수 있다. 사람이 어쩌다가 재산의 흐름을 받는 자가 되면, 동료 인간들을 위하여 가치 있는 일을 전혀 하지 않았더라도 사치(奢侈) 속에 딩굴지 모른다.
(1779.3) 160:4.11 능력은 사람이 물려받는 것이요, 기술은 얻는 것이다. 인생은 어느 한 가지 일을 잘, 솜씨 있게 할 수 없는 자에게는 현실이 아니다. 기술은 생활의 만족을 가져오는 진정한 근원의 하나이다. 능력은 선견(先見), 멀리 내다보는 눈을 선물로 받았음을 뜻한다. 정직하지 않은 성취의 유혹하는 보상에 속지 말라. 정직한 노력에 본래부터 있는, 후일의 보상을 위하여 기꺼이 수고하라. 지혜로운 사람은 수단과 목적을 구별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앞날을 위하여 지나치게 계획하는 것은 때때로 그 자체의 높은 목적을 망친다. 쾌락을 찾는 자로서, 사람은 소비자일 뿐 아니라 생산자가 되려고 언제나 노력해야 한다.
(1779.4) 160:4.12 인생에서 힘을 주고 가치 있는 사건들을 신성하게 간직하기 위하여 기억(記憶)을 훈련하라. 그런 것을 너희는 기쁨과 수련을 위하여 뜻대로 회상할 수 있다. 이처럼 아름답고 선하고 예술적으로 장려한 예비 미술관을 자신을 위하여, 네 몸 속에 지어라. 그러나 모든 기억 가운데 가장 고귀한 것은 훌륭한 우정을 나누는 위대한 순간을 소중히 회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적 예배의 해방하는 손길 밑에서, 보물 같은 이 모든 기억은 가장 귀중하고 정신을 높여 주는 영향력을 방출한다.
(1779.5) 160:4.13 그러나 사람이 실패할 때 품위를 지키기를 배우지 않으면, 생명은 존재에서 짐이 될 것이다. 실패에는 훌륭한 사람들이 반드시 얻는 한 예술이 있다. 사람은 즐겁게 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사람은 실망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실패를 인정하기를 결코 망설이지 말라. 속이는 웃음과 활짝 웃는 낙관주의 밑에서 실패를 감추려 하지 말라. 성공했다고 우기는 것은 언제나 듣기 좋지만, 마지막 결과는 끔찍하다. 그러한 기술은 비현실의 세계를 지어내고, 궁극에는 미몽(迷夢)에서 깨어나는 불가피한 파멸로 바로 이끈다.
(1779.6) 160:4.14 성공은 용기를 일으키고 자신감을 촉진할지 모르지만, 지혜는 오직 사람이 실패한 결과에 적응하는 체험으로부터 생긴다. 낙관적 망상(妄 想)을 현실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들은 결코 지혜롭게 될 수 없다. 오직 사실에 부딪치고 사실을 이상에 조절하는 자들이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지혜는 사실과 이상, 이 두 가지를 품으며, 따라서 그 신봉자들을 철학에서 불모의 두 극단으로부터 구원한다―하나는 사실을 제쳐 놓는 이상주의를 가진 사람이요, 다른 하나는 영적 안목(眼目)이 결여된 물질주의자이다. 성공한다는 계속된 거짓 망상의 도움으로 인생의 투쟁을 겨우 유지할 수 있는 비겁한 사람들은, 궁극에 자신들이 상상하는 꿈 세계로부터 깨어날 때, 실패를 겪고 패배를 맛보도록 운명이 정해져 있다.
(1780.1) 160:4.15 실패와 마주치고 패배에 적응하는 이 일에, 종교의 멀리 미치는 환상이 최고의 영향을 미친다. 우주를 탐험하는 영원한 모험을 시작한 사람,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의 체험에서, 실패는 다만 교육적 에피소드이다―지혜를 얻는 데 교양이 되는 실험이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실패는 다만 더 높은 수준의 우주 실체를 성취하는 데 쓰이는 새 연장일 뿐이다.
(1780.2) 160:4.16 비록 현세의 인생 사업 전체가 사람을 압도하는 실패로 보인다 하더라도, 인생의 실패 하나하나가 지혜로운 교양과 영적 성취를 낳는다면,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의 생애는 영원의 빛에서 볼 때 큰 성공임이 드러날지 모른다. 지식, 교양, 지혜를 혼동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 이것들은 생활에서 관계되지만, 광대하게 다른 영적 가치를 대표한다. 지혜는 언제라도 지식을 이기고, 언제나 교양을 영화롭게 한다.
(1780.3) 160:5.1 너희 선생이 진정한 인간 종교를 개인이 영적 실체들을 체험하는 것으로 간주한다고 너희가 내게 일렀다. 종교는 사람이 온 인류의 경의(敬意)와 헌신을 받을 만하다고 여기는 어떤 것에 반응하는, 인간 체험이라고 나는 간주해 왔다. 이런 뜻에서 종교는, 실체의 이상에 대한 우리의 가장 높은 개념, 영적으로 달성하는 영원한 가능성을 향하여 우리의 지성이 미치는 가장 먼 한계, 이 둘을 대표하는 것에 우리가 최고로 헌신함을 상징한다.
(1780.4) 160:5.2 부족, 민족, 또는 종족 의미에서 사람들이 종교에 반응하는 것은 그들이 자기 집단 바깥에 있는 자들을 참으로 인간이 아니라고 바라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종교적 충성의 대상(對象)이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종교는 결코 단순한 지적 관념이나 철학 논리의 문제일 수 없다. 종교는 언제나, 언제까지나, 생활 상황에 반응하는 형태요, 종교는 일종의 행위이다. 종교는 보편적으로 찬미를 받아 마땅하다고 우리가 판단하는 어떤 실체를 향하여 경건하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것을 포함한다.
(1780.5) 160:5.3 무엇이 너의 체험에서 종교가 되었으면, 너는 이미 그 종교의 활발한 전도사가 된 것이 자명하니, 이는 네 종교 최고의 개념이 온 인류, 모든 우주의 지성 존재들의 예배를 받아 마땅하다고 네가 간주하기 때문이다. 네가 네 종교를 퍼뜨리고 적극적으로 선교(宣 敎)하는 전도사가 아니라면, 네가 종교라고 부르는 것은 기껏해야 전통의 관념이나 단순히 지적 철학 체계이니까, 너는 스스로 속는다. 너의 종교가 영적 체험이라면, 너의 예배 대상은 보편적 영 실체요, 영적으로 변화된 너의 모든 개념의 이상(理 想)이어야 한다. 두려움•감정•전통•철학에 근거를 둔 모든 종교를 나는 지적 종교라고 부르고, 한편 참된 영 체험에 기초를 둔 것들을 참된 종교라 부르겠다. 종교적 헌신의 대상은 물질이거나 영적이거나, 거짓되거나 참되거나, 현실이거나 비현실이거나, 인간답거나 신성할지 모른다. 따라서 종교들은 선하거나 악할 수 있다.
(1780.6) 160:5.4 도덕성과 종교는 반드시 같지는 않다. 한 도덕률의 체계는 예배 대상(對象)을 붙잡음으로 종교가 될지도 모른다. 한 종교는 충성과 최고의 헌신을 요구하는 보편적 호소력을 잃어버림으로, 철학 체계나 도덕률의 법전(法 典)으로 진화할 수도 있다. 종교적 충성을 받을 최고의 이상을 구성하고, 섬기는 자들의 종교적 헌신을 받 는 이것, 이분, 상태 또는 존재의 서열, 또는 달성 가능성이 하나님이다. 영 실체의 이 이상에 적용되는 이름에 상관 없이, 그것은 하나님이다.
(1781.1) 160:5.5 참된 종교의 사회적 특징은 그것이 변함없이 개인의 생각을 바꾸고 세계를 변화시키기를 추구한다는 사실에 있다. 종교는 발견되지 않은 이상이 존재함을 암시하며, 이것은 문명에서 가장 성숙한 제도의 가장 높은 사회 관습에도 담겨 있는, 그런 윤리와 도덕성의 알려진 표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종교는 발견되지 않은 이상, 탐구되지 않은 실체, 초인간적 가치, 신다운 지혜, 참된 영적 달성을 향하여 손을 뻗는다. 참된 종교는 이 모든 것을 실행하며, 모든 다른 신앙은 그 이름의 가치가 없다. 영원한 하나님이라는 최고의 숭고한 이상(理想) 없이, 사람은 진정한 영적 종교를 가질 수 없다. 이 하나님 없는 종교는 사람의 발명품이요, 생명 없는 지적 관념과 의미 없는 감정적 예식으로 이루어진 인간 제도이다. 종교는 그 헌신의 대상으로서 큰 이상을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비현실적 이상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한 개념은 착각이다. 인간의 달성이 가능한 유일한 이상은 영원한 하나님이 계신 영적 사실에 거하는, 무한히 가치 있는 신성한 실체들이다.
(1781.2) 160:5.6 하나님이라는 낱말, 하나님이라는 이상과 대조해서 하나님 관념은 어느 종교가 어쩌다가 아무리 유치하고 거짓되더라도, 그 종교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이 하나님 관념은 그것을 품는 자들이 만들려고 선택하는 어떤 것이라도 될 수 있다. 하등 종교는 인간의 마음의 자연 상태를 충족하려고, 그 자체의 하나님 관념을 형성한다. 상급 종교는 참된 종교의 이상이 요구하는 것을 채우려고 인간의 마음이 변할 것을 요구한다.
(1781.3) 160:5.7 예수의 종교는 우리가 예배에 대하여 예전에 가졌던 모든 개념(槪念)을 초월하는데, 이는 예수가 그의 아버지를 무한한 실체의 이상으로 묘사할 뿐 아니라, 땅에서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를 택하고 그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요 사람과 형제임을 받아들인다고 인정하는 모든 필사 인간이, 가치의 이 신다운 근원과 우주의 영원한 중심에 참으로 몸소 도달할 수 있다고 확고하게 선언하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건대, 이것은 세상이 일찍이 본 가운데 가장 높은 종교 개념이다. 내가 선언하건대, 이 복음이 무한한 실체들, 신성한 가치, 영원한 보편적 달성을 포함하니까, 이보다 더 높은 개념이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러한 개념은 최상(最上)이고 궁극인 것의 이상적 모습을 체험하는 것이다.
(1781.4) 160:5.8 나는 너희 선생이 가진 이 종교의 더할 나위 없는 이상에 흥미가 생길 뿐 아니라, 또한 영적 실체의 이 이상(理想)을 사람이 달성할 수 있다는 그의 선언을 믿는다, 파라다이스의 현관에 우리가 궁극에 확실히 도달한다는 그의 보장을 받아들이고 너와 내가 길고 영원한 이 모험에 들어갈 수 있다, 이렇게 고백하도록 나는 힘차게 마음이 움직인다. 형제들아, 나는 믿는 사람이요, 배를 타 버렸다. 이 영원한 모험으로 너희와 함께 가는 길이다. 주는 그가 아버지로부터 왔고, 그가 우리에게 길을 보이리라 하신다. 그가 진리를 말한다고 나는 넉넉히 확신한다. 영원한 우주의 아버지와 동떨어져서는, 달성할 수 있는 실체의 이상이나 완전한 가치가 하나도 없다고 나는 마침내 확신한다.
(1781.5) 160:5.9 그러면 단지 존재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미래 존재 가능성의 하나님을 예배하려고 내가 온다. 그러므로 최고의 이상이 실재한다면, 그 이상에 바치는 너희의 헌신은 사물과 존재들이 거하는 과거•현재•미래 우주의 이 하나님께 바치는 헌신임이 틀림없다. 아무런 다른 하나님이 없으니, 도저히 어떤 다른 하나님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다른 신은 상상의 산물(産 物)이요, 필사 지성의 환상이요, 거짓된 논리의 왜곡(歪曲)이요, 그것을 빚어낸 자들의 우상(偶像), 스스로 속이는 우상이다. 그렇다, 사람은 이 하나님 없이 종교를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은 아무런 의 미가 없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이 이상의 실체 대신에 하나님이라는 낱말을 갈아끼우고자 하면, 너는 이상, 즉 신다운 실체의 자리에 한 아이디어를 집어넣음으로 오직 자신을 속였을 뿐이다. 그런 관념은 몹시 바라는 공상(空 想)의 종교에 지나지 않는다.
(1782.1) 160:5.10 예수의 가르침에서 나는 최선에 이른 종교를 본다. 이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참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찾아내게 만든다. 그러나 하늘나라로 이렇게 들어가는 값을 우리가 기꺼이 치르겠는가? 우리는 기꺼이 다시 태어나고, 다시 지음받을 생각이 있는가? 자기를 죽이고 혼을 다시 짓는 끔찍하고 벅찬 이 과정을 우리가 기꺼이 거치겠는가? 주가 말씀하지 않았느냐?: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자는 누구나 목숨을 잃어야 하느니라. 평화를 가져오려고 내가 왔다고 생각하지 말라, 오히려 혼의 투쟁을 주려는 것이라.” 아버지의 뜻에 헌신하는 값을 치른 뒤에, 거룩히 헌신하여 사는 이 영적 길에서 줄곧 걷는다면, 우리가 큰 평화를 맛본다는 것이 참말이다.
(1782.2) 160:5.11 신성한 실체가 담긴 상급 이상주의의 영 세계들에서, 모험하는 미래 생활의 존재에서, 알지 못하고 탐구되지 않은 서열의 유혹물을 찾아서 아낌없이 우리가 추구하는 것에 몸을 바치는 한편, 이제 우리는 알려진 존재 서열의 유혹물을 참으로 동댕이치고 있다. 우리는 예수의 종교가 담은 이상주의적 실체의 이 개념들을 동료 인간들에게 전하는 데 쓸, 의미의 상징을 찾고 있다. 온 인류가 이 최고의 진리를 담은 공동체의 환상에 기쁨으로 떨 날이 오기까지, 우리는 그치지 않고 기도할 것이다. 바로 이제, 초점을 맞춘 우리의 하나님 개념은, 우리 마음 속에 간직되었다시피 하나님은 영이요, 우리 동료들에게 전한 바와 같이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1782.3) 160:5.12 예수의 종교는 생생한 영적 체험을 요구한다. 다른 종교들은 전통적 관념, 감정의 느낌, 철학적 의식에 있고, 이 모든 것일지 모르지만, 주의 가르침은 진정하게 영이 진보하는 실제 수준에 이르기를 요구한다.
(1782.4) 160:5.13 하나님처럼 되려는 충동을 의식하는 것은 참 종교가 아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려는 감정을 느끼는 것은 참 종교가 아니다. 자아를 버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려는 확신을 아는 것은 참 종교가 아니다. 이 종교가 모든 것 가운데 최선이라고 조리 있게 따지는 지혜는, 몸소 겪는 영적 체험인 종교는 아니다. 참된 종교는 진심으로 믿음으로 받아들인 것의 실체와 이상의 모습에 대해서 뿐 아니라, 달성할 운명 및 실체와 관계가 있다. 진리의 영의 계시(啓示)로 말미암아 이 모두가 우리에게 개인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1782.5) 160:5.14 이처럼 그리스인 철학자, 그의 종족에서 가장 위대한 자들 가운데 한 사람의 논설이 끝났고, 그는 예수의 복음을 믿는 사람이 되었다.
유란시아 서
- 표제지
- 제 1 부 중앙 우주와 초우주
- 제 2 부 지역 우주
- 제 3 부 유란시아의 역사
- 제 4 부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
- 제 120 편미가엘의 유란시아 수여
- 제 121 편미가엘이 자신을 수여했던 시대
- 제 122 편예수의 탄생과 아기 시절
- 제 123 편예수의 어린 시절 초기
- 제 124 편예수의 어린 시절 후기
- 제 125 편예루살렘에 가신 예수
- 제 126 편결정적인 두 해
- 제 127 편청년기 시절
- 제 128 편예수의 어른 시절 초기
- 제 129 편예수의 어른 시절 후기
- 제 130 편로마로 가는 길
- 제 131 편세계의 종교
- 제 132 편로마에서 머무를 때
- 제 133 편로마에서 돌아오는 길
- 제 134 편과도기
- 제 135 편 세례자 요한
- 제 136 편세례와 사십일
- 제 137 편갈릴리에서 기다리는 때
- 제 138 편하늘나라 사자의 훈련
- 제 139 편열두 사도
- 제 140 편열두 사도를 세움
- 제 141 편대중 전도의 시작
- 제 142 편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보내다
- 제 143 편사마리아를 거쳐서
- 제 144 편길보아와 데카폴리스에서
- 제 145 편사건이 많았던 나흘을 가버나움에서
- 제 146 편갈릴리에서 첫 전도 여행
- 제 147 편막간의 예루살렘 방문
- 제 148 편전도사 훈련을 벳세다에서
- 제 149 편두 번째 전도 여행
- 제 150 편세 번째 전도 여행
- 제 151 편바닷가에서 머무르며 가르치다
- 제 152 편가버나움 위기까지 이끈 사건들
- 제 153 편가버나움에서 위기가
- 제 154 편 가버나움에서 마지막 며칠
- 제 155 편갈릴리 북부를 거쳐서 달아나다
- 제 156 편티레와 시돈에서 머무르다
- 제 157 편케자리아 빌립비에서
- 제 158 편변모의 산
- 제 159 편데카폴리스 여행
- 제 160 편알렉산드리아의 로단
- 제 161 편로단과 계속한 토론
- 제 162 편천막 축제에서
- 제 163 편 마가단에서 칠십인을 세우다
- 제 164 편헌당 축제에서
- 제 165 편페레아 선교가 시작되다
- 제 166 편마지막 북 페레아 방문
- 제 167 편필라델피아 방문
- 제 168 편나사로의 부활
- 제 169 편펠라에서 있은 마지막 가르침
- 제 170 편하늘나라
- 제 171 편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 제 172 편예루살렘으로 들어가다
- 제 173 편월요일에 예루살렘에서
- 제 174 편화요일 아침 성전에서
- 제 175 편마지막 성전 강연
- 제 176 편화요일 저녁 올리브 산에서
- 제 177 편수요일, 쉬는 날
- 제 178 편 캠프에서 마지막 날
- 제 179 편마지막 만찬
- 제 180 편작별의 말씀
- 제 181 편마지막 훈계와 경고
- 제 182 편겟세마네에서
- 제 183 편배반, 그리고 예수가 잡히다
- 제 184 편산헤드린 법정 앞에서
- 제 185 편빌라도 앞에서 받은 재판
- 제 186 편십자가에 못박히기 바로 전
- 제 187 편십자가에 못박힘
- 제 188 편무덤에 있던 시간
- 제 189 편부활
- 제 190 편예수가 상물질 모습으로 나타나심
- 제 191 편사도와 다른 지도자들에게 나타나심
- 제 192 편갈릴리에서 나타나심
- 제 193 편마지막 출현과 승천
- 제 194 편진리의 영을 수여함
- 제 195 편오순절 뒤에
- 제 196 편예수의 믿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