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4 편 길보아와 데카폴리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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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서

제 144 편

길보아와 데카폴리스에서

144:0.1 (1617.1) 9월과 10월은 길보아 산의 비탈에 자리 잡은 한적한 캠프에서 은둔한 가운데 보냈다. 9월 한 달을 예수는 여기서 사도들하고만 지냈고 그들에게 하늘나라의 진리를 가르치고 교훈을 주었다.

144:0.2 (1617.2) 사마리아데카폴리스 지방의 경계에서 이때 예수와 사도들이 은둔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대단히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헤롯 안티파스는 아직도 요한을 감옥에 가두어 놓고 석방하거나 처형하기를 두려워했고, 한편 요한예수가 어떤 면에서 관련되었다는 의심을 계속 품었다. 이러한 형편 때문에 유대갈릴리에서 적극적 활동을 계획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았다. 셋째 이유가 있었는데, 요한의 수석 제자들과 예수의 사도들 사이에 서서히 긴장이 팽팽해지고 있었고, 이것은 신자들의 무리가 늘어나면서 악화되었다.

144:0.3 (1617.3) 예수는 가르치고 전도하는 예비 작업 시절이 거의 끝났고 다음의 행동은 땅에서 그의 일생에 한껏 마지막 노력을 시작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도 세례자 요한을 괴롭히거나 난처하게 만들지 않기를 바랐다. 따라서 예수는 사도들을 연습시키면서 은둔하여 얼마 동안 시간을 보내고, 다음에 요한이 집행되든지 아니면 석방되어서 단결된 노력을 기울이려고 그들과 합세할 때까지, 데카폴리스의 여러 도시에서 조용히 얼마큼 일하기로 결심하였다.

1. 길보아에서 야영하다

144:1.1 (1617.4)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열두 사도는 예수에게 더욱 헌신하고 하늘나라 일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다. 그들의 헌신은 대체로 개인적으로 충성하는 문제였다. 그들은 그의 가르침의 여러 모습을 깨닫지 못했다. 예수의 성품이나 땅에서 그의 수여의 중요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144:1.2 (1617.5) 그들이 세 가지 이유로 은둔하고 있다고 예수는 사도들에게 분명히 설명했다:

144:1.3 (1617.6) 1. 하늘나라의 복음을 그들이 이해하고 믿는 것을 확인하려고.

144:1.4 (1617.7) 2. 유대갈릴리에서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한 반대가 가라앉게 하려고.

144:1.5 (1617.8) 3. 세례자 요한의 운명을 기다리려고.

144:1.6 (1617.9) 길보아 산에서 머무르면서, 예수는 어린 시절의 생활과 헤르몬산에서 겪은 체험에 대하여 많은 것을 열두 사도에게 일러주었다. 또한 세례를 받은 바로 뒤 40일 동안에 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얼마큼 밝혔다. 그가 아버지께로 돌아가기까지 이 여러 체험에 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직접 당부했다.

144:1.7 (1618.1) 그들은 이 9월 몇 주 동안 쉬면서 예수가 그들을 봉사하는 일로 처음 부른 뒤에 겪은 체험을 이야기하고 되새겼으며, 주가 이때까지 가르친 것을 조정하려고 진지하게 노력을 기울였다. 어느 정도 모두가 이것이 길게 쉬는 마지막 기회일 것이라 느꼈다. 그들은 유대갈릴리에서 다음에 대중에게 기울일 노력이 다가오는 하늘나라의 마지막 선포의 시작을 가리키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하늘나라가 다가왔을 때 그 나라가 어떠할까에 대하여 거의 또는 아무런 정해진 관념이 없었다. 요한안드레는 하늘나라가 이미 왔다고 생각했고, 베드로야고보는 하늘나라가 앞으로 올 것이라고 믿었다. 나다니엘토마스는 영문을 모른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마태빌립과 열심당원 시몬은 확신이 없었고 갈피를 잡지 못했다. 쌍둥이는 다행히도 그 논쟁을 눈치채지 못했다. 가룟 유다는 말이 없고 무어라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144:1.8 (1618.2) 이때에 예수는 야영지 가까이, 산에서 혼자 지내는 적이 많았다. 때때로 베드로야고보요한을 데리고 갔지만, 기도하거나 혼자서 교통하느라고 훌쩍 떠나는 일이 더 흔했다. 예수가 세례를 받고 페레아의 산지에서 40일 보낸 뒤에, 아버지와 이때 교통한 시절에 기도했다고 하기는 도저히 적당하지 않으며, 예수가 예배했다고 말하는 것도 조리가 없다. 그러나 이 기간을 아버지와 친히 교통한 기간이라 하는 것이 아주 정확하다.

144:1.9 (1618.3) 9월 한달 내내, 토론의 중심 주제는 기도와 예배였다. 며칠 동안 예배에 대하여 논의한 뒤에 “주여, 우리에게 어떻게 기도하는가 가르쳐주소서”하고 토마스가 요청한 데 답하여, 예수는 마침내 기억에 남을 가르침을 주었다.

144:1.10 (1618.4) 요한은 전에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쳤는데, 다가오는 나라에서 구원을 얻기 위한 기도였다. 예수는 추종자들에게 요한의 기도 형식을 쓰지 말라고 금한 적이 없다. 그러나 고정되고 판에 박힌 기도문을 외우는 습관을 주가 충분히 승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도들은 아주 일찍 알아차렸다. 그렇기는 해도 신자들은 어떻게 기도하는가 가르쳐달라고 항상 요청하였다. 열두 사도는 예수가 어떤 형식의 간구를 승인할 것인가 몹시 알고 싶어했다. 주로, 서민들을 위하여 어떤 간단한 기도가 이렇게 필요했기 때문에, 예수는 이때 토마스의 요청에 답하여, 방법을 제시하는 형식의 기도를 가르치는 데 찬성하였다. 길보아 산에서 그들이 머무르던 셋째 주, 어느 날 오후에 예수는 이 교훈을 주었다.

2. 기도에 대한 강연

144:2.1 (1618.5)요한은 정말로 너희에게 간단한 형태의 기도를 가르쳤느니라: ‘아 아버지여, 우리에게서 죄를 없애시고, 아버지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이고 사랑을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영이 우리의 마음을 영원히 거룩하게 하소서, 아멘!’ 그는 너희가 군중에게 무언가 가르칠 것을 가지도록 이 기도를 가르쳤느니라. 기도하는 자신의 혼의 표현으로서 너희가 그렇게 고정되고 판에 박힌 간청을 드려야 한다고 의도한 것이 아니라.

144:2.2 (1618.6) “기도는 영에 대하여 혼이 어떤 태도를 가졌는가 보이는 표현, 온전히 개인적으로 저절로 나오는 표현이라. 기도는 아들 신분으로 하는 교통, 친교의 표현이어야 하느니라. 기도는 영이 표현했을 때, 협동하는 영적 진보의 길로 인도하느니라. 이상적인 기도는 지적 예배로 이끄는 일종의 영적 교통이라. 참된 기도는 너희의 이상을 이루려고 하늘을 향하여 손을 뻗는 성실한 태도이라.

144:2.3 (1619.1) “기도는 혼의 숨결이요, 아버지의 뜻을 확인하려는 끈질긴 시도로 너희를 이끌어야 하느니라. 너희 가운데 누가 이웃이 있어, 한밤에 그에게 가서 ‘친구여, 빵 세 덩이를 꾸어달라, 내 친구가 여행하는 길에 나를 보러 왔는데 친구 앞에 내놓을 것이 하나도 없노라’ 말하니, 네 이웃이 대답하되 ‘나를 성가시게 굴지 말라, 이제 문이 닫혔고 아이들과 나는 잠자리에 들었음이라, 그러니 일어나서 빵을 줄 수 없노라’하면, 너는 친구가 배고프다, 그에게 먹을 것을 하나도 줄 수 없다고 설명하며 고집하리라. 너희에게 이르노니, 네 친구라고 해서 이웃이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을 터이나 그래도 끈질기게 조르는 까닭에, 일어나서 네가 필요한 대로 너에게 빵을 주리라. 그래서 끈질긴 요청이 필사 인간에게서도 특혜(特惠)를 얻는다면, 너희가 영적으로 끈질기게 구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낌없는 손에서 생명의 빵을 얼마나 더 얻겠느냐.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내리라, 두드리라 그리하면 문이 열리리라. 누구든지 구하는 자는 받으며, 찾는 자는 찾아내며, 구원의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는 문이 열리리라.

144:2.4 (1619.2) “너희 가운데 어떤 아버지가 아들이 지혜롭지 못하게 간청하면, 아들이 잘못 간구하는 그대로가 아니라 부모의 지혜에 따라서 주기를 망설이겠느냐? 빵이 필요하면, 아이가 지혜롭지 못하게 돌을 달라 한다고 해서 아이에게 돌을 주겠느냐? 네 아들이 물고기가 필요하면, 그물 속에 물뱀이 어쩌다가 물고기와 함께 올라오고 단지 아이가 어리석게 뱀을 달라 요구한다고 해서 그에게 물뱀을 주겠느냐? 그러면 죽을 수밖에 없으며, 유한한 너희가 기도(祈禱)에 응답하고 아이들에게 좋고 적당한 선물 줄 것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는 구하는 자에게 영을 비롯하여 많은 다른 복을 얼마나 더 부어주시겠느냐? 사람들은 언제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144:2.5 (1619.3) “어느 사악한 도시에 살았던 어떤 재판관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이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람을 존경하지도 않았느니라. 자, 그 도시에 어떤 빈궁한 과부가 있었더니, 이 부당한 판사에게 거듭 찾아와서 ‘내 원수로부터 나를 보호해주소서’ 말하였는지라. 얼마 동안 그 여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으나, 곧 그가 혼잣말을 하였더라.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아도 이 과부가 나를 때 없이 번거롭게 하니, 계속 찾아와서 나를 지치게 하지 않도록 그 여자를 변호하리라.’ 너희가 끈질기게 기도하라 격려하려고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요, 너희의 간구가 하늘에 계신 공평하고 올바른 아버지의 마음을 바꾸리라 비추려 함이 아니라. 그러나 너희의 끈질긴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너희의 태도를 바꾸고 혼이 영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키우려는 것이라.

144:2.6 (1619.4) “그러나 기도할 때 너희는 거의 믿음이 없느니라. 진정한 믿음은 혼이 성장하고 영적으로 진보하는 길에 어쩌다 놓인 산더미 같은 물질적 어려움을 없애리라.”

3. 믿는 자의 기도

144:3.1 (1619.5) 그러나 사도들은 아직 마음이 흡족하지 않았다. 그들이 새 제자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기도의 본보기를 예수가 주시기를 바랐다. 기도에 대한 이 강론을 들은 뒤에 야고보 세베대가 말했다: “아주 좋소이다, 주여, 그러나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어떻게 적절히 기도하는가 우리에게 가르치소서’하고 우리에게 무척 자주 부탁하는 새 신자들을 위하여, 한 모형의 기도를 원하나이다.”

144:3.2 (1619.6) 야고보가 말을 마치자 예수는 말했다: “그래, 너희가 아직도 그런 기도를 바란다면, 내 아우와 누이들에게 나사렛에서 가르친 것을 하나 제시하고자 하노라.”:

144:3.3 (1620.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144:3.4 (1620.2) 그 이름이 거룩하옵소서.

144:3.5 (1620.3) 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144:3.6 (1620.4)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44:3.7 (1620.5) 내일을 위하여 오늘 우리에게 빵을 주시고

144:3.8 (1620.6) 생명의 물로 우리의 혼을 새롭게 하소서.

144:3.9 (1620.7)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를 용서한 것 같이

144:3.10 (1620.8) 또한 우리의 빚을 모두 용서하소서.

144:3.11 (1620.9) 시험받을 때 우리를 구하시고, 악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며,

144:3.12 (1620.10) 아버지처럼 더욱 우리를 완전하게 만드소서.

144:3.13 (1620.11) 사도들이 신자들을 위하여 예수가 기도의 본보기를 가르쳐주기를 바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세례자 요한은 따르는 사람들에게 몇 가지 기도를 가르쳤다. 위대한 선생들은 모두 생도들을 위하여 기도를 지었다. 유대인의 종교 선생들은 스물다섯이나 서른 가지 정도의 고정된 기도가 있었고 이것을 회당에서, 길거리 구석에서도 외웠다. 예수는 대중 앞에서 기도하기를 특별히 꺼렸다. 이때까지 열두 사도는 그가 기도하는 것을 겨우 몇 번 들었다. 예수가 밤새도록 기도하거나 예배하는 것을 지켜보았고 그가 어떻게, 어떤 형식으로 간청하는가 매우 알고 싶어했다. 요한이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처럼 어떻게 기도하는가 가르쳐 달라고 요청을 받았을 때, 그들은 대중에게 무어라고 대답할지 몰라서 정말로 궁지에 빠졌다.

144:3.14 (1620.12) 예수는 열두 사도에게 언제나 남모르게 기도하라, 기도에 들어갈 때 훌쩍 떠나 혼자서 조용한 자연 환경 가운데로 가거나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으라고 가르쳤다.

144:3.15 (1620.13) 예수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께로 올라간 뒤에, 많은 신자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를 덧붙여, 이른바 이 주의 기도문을 끝내는 것이 관습이 되었다. 그 뒤에, 두 줄이 베끼다가 없어졌고 이 기도에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임이나이다” 하는 여분의 구절이 더해졌다.

144:3.16 (1620.14) 예수나사렛 집에서 사람들이 기도한 그대로, 공동(共同) 형태의 기도를 사도들에게 주었다.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문구를 가르친 적이 없었고, 오직 집단, 가족 또는 사회가 드리는 간청을 가르쳤다. 그리고 예수는 결코 그런 기도를 가르치겠다고 자청(自請)하지 않았다.

144:3.17 (1620.15) 예수는 효력이 있는 기도는 다음과 같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144:3.18 (1620.16) 1. 이기심 없이―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144:3.19 (1620.17) 2. 믿으면서―믿음에 따라서.

144:3.20 (1620.18) 3. 성실하게―마음이 정직하게.

144:3.21 (1620.19) 4. 총명하게―빛에 따라서.

144:3.22 (1620.20) 5. 신뢰하면서―아버지의 전적으로 지혜로운 뜻에 복종해서.

144:3.23 (1620.21) 예수가 기도하느라고 산에서 밤새도록 있을 때, 그것은 주로 제자들, 특히 열두 사도를 위한 것이었다. 주는 자신을 위하여 거의 기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파라다이스 아버지와 함께, 이해하며 교통하는 성질을 가진 예배에 많이 잠겨 있었다.

4. 기도에 대하여 더 하신 말씀

144:4.1 (1620.22) 기도에 대한 강론이 있은 뒤에 여러 날, 사도들은 전적으로 중요하고 경건한 이 습관에 대하여 주께 계속하여 물었다. 예수가 이 기간에 사도들에게 기도와 예배에 관하여 교육한 것은 다음과 같이 현대의 말투로 요약하고 다시 정리할 수 있다:

144:4.2 (1621.1) 어떤 간구라도 진지하게 간절히 되풀이하는 것은, 그런 기도가 하나님의 자녀의 진지한 표현이고 믿음으로 입에서 나왔을 때, 직접 응답하는 것이 아무리 현명치 못하거나 불가능하더라도 영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혼의 능력을 어김없이 키워 준다.

144:4.3 (1621.2) 어떤 기도를 드리더라도 아들 신분이 선물인 것을 기억하라. 어떤 아이도 아들이나 딸의 신분을 얻으려고 무엇인가 해야 되는 것이 아니다. 땅에 있는 아이는 부모의 의지에 따라서 생겨나게 된다. 과연 그러하니, 하나님의 아이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은총을 얻고 영(靈)의 새 생명에 들어간다. 따라서 하늘나라를―신의 아들 신분을―어린아이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너희는 올바름―점진적 인품의 성장―을 노력으로 얻지만, 은총으로, 믿음을 통해서 아들 신분을 받는다.

144:4.4 (1621.3) 기도는 혼이 온 우주의 최상 통치자들과 초월적 교통을 가지는 경지까지 예수를 이끌었다. 기도는 세상의 필사자를 참된 예배 정신으로 교통하는 경지까지 이끌 것이다. 영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혼의 능력은 하늘이 내리는 축복의 양(量)을 좌우한다. 이 축복은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있고, 그 축복이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는 것을 의식하여 깨달을 수 있다.

144:4.5 (1621.4) 기도, 그리고 그에 결부된 예배는 생활의 일상적인 것, 물질 존재의 단조로운 고역(苦役)을 벗어나는 기법이다. 기도는 영적으로 변화된 자아 실현, 그리고 지적ㆍ종교적으로 성취하는 개성에 접근하는 길이다.

144:4.6 (1621.5) 기도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해로운 버릇에 해독제이다. 적어도, 주가 가르친 것과 같은 기도는 혼에 매우 유익한 보살핌이다. 예수는 사람이 동료들을 위하여 드리는 기도의 유익한 영향력을 한결같이 이용했다. 주는 보통 때, 자신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을 생각하여 기도했다. 오직 땅에서 보낸 일생의 큰 위기에 부닥쳤을 때 예수는 자신을 위하여 기도한 적이 있다.

144:4.7 (1621.6) 기도는 인류의 여러 종족이 세운 물질 문명의 와중에서 영적 생명이 숨을 내쉬는 소리이다. 예배는 쾌락을 추구하는 필사자 세대를 구원하는 줄이다.

144:4.8 (1621.7) 기도가 혼의 영적 전지(電池)를 다시 충전하는 것과 비유해도 좋은 것 같이, 예배는 우주의 아버지의 무한하신 영이 보내는 우주 방송을 들으려고 혼을 조절하는 행위와 비교해도 좋다.

144:4.9 (1621.8) 기도는 아이가 영 아버지를 진지하게 갈급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요, 기도는 인간의 뜻을 버리고 신의 뜻을 얻는 심리학 과정이다. 기도는 현재의 상태를 고쳐서 앞으로 되어야 할 상태로 만드는 신의 계획의 일부이다.

144:4.10 (1621.9) 예수가 오래 밤늦게 깨어 있을 때 베드로야고보요한이 그를 무척 자주 동반했는데 이들이 예수가 기도하는 것을 듣지 못한 이유 중에 하나는, 주가 소리나게 기도를 입 밖에 내서 드린 적이 아주 드물었기 때문이다. 예수가 드린 거의 모든 기도는 정신으로, 마음 속에서―말없이―하였다.

144:4.11 (1621.10) 모든 사도 가운데 베드로야고보가 기도와 예배에 대한 주의 가르침을 알아들었다고 볼 수 있다.

5. 다른 형태의 기도

144:5.1 (1621.11) 땅에서 머무르던 나머지 기간에, 때때로 예수는 사도들에게 몇 가지 추가된 기도 형식을 주목하게 했으나 다만 다른 문제들을 설명하느라고 그렇게 했다. 이 여러 가지 “비유의 기도”를 군중에게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타일렀다. 이 기도문 가운데 여럿은 사람이 사는 다른 행성들에서 온 것이지만 이 사실을 예수는 열두 사도에게 밝히지 않았다. 이 기도문 가운데 다음이 있었다:

144:5.2 (1622.1) 우주 영토가 우리 아버지 안에 있으니

144:5.3 (1622.2) 그 이름과 온통 영화로운 성품이 높임을 받으소서.

144:5.4 (1622.3) 아버지의 계심은 우리를 둘러싸고, 그 영광이 하늘에서 완전히

144:5.5 (1622.4) 보이는 것 같이 우리를 통해서 불완전하게 나타나나이다.

144:5.6 (1622.5) 오늘날 우리에게 빛의 활력을 주시고,

144:5.7 (1622.6) 우리가 상상하는 악한 옆길로 우리가 빠지지 않게 하소서.

144:5.8 (1622.7) 영화로운 깃드심, 영구한 권세는 아버지의 것이요,

144:5.9 (1622.8) 아들의 무한한 사랑은 우리에게 영원한 선물인 까닭이나이다.

144:5.10 (1622.9) 바로 그러하니, 언제까지나 참이나이다.

* * *

144:5.12 (1622.10) 우주의 중심에 계시고 창조하시는 우리 아버지

144:5.13 (1622.11) 우리에게 아버지의 성품을 주시고 그 됨됨이를 주소서.

144:5.14 (1622.12) 은총으로 우리를 아들딸로 만드시고,

144:5.15 (1622.13) 우리의 영원한 성취를 통해서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소서.

144:5.16 (1622.14) 천사들이 빛 가운데 아버지의 명령을 듣는 것 같이, 우리가 이 구체에서

144:5.17 (1622.15) 아버지의 뜻을 행하도록, 조절하고 통제하는 영이 우리 안에 살고 거하게 하소서.

144:5.18 (1622.16) 오늘 진리의 길을 따라 나아가는 동안 우리를 버티게 하시고

144:5.19 (1622.17) 타성과 악과 온갖 죄짓는 행위에서 우리를 구원하소서.

144:5.20 (1622.18) 우리가 동료에게 친절을 보이는 것 같이 우리를 참으소서.

144:5.21 (1622.19) 자비의 정신을 우리 인간 마음 속에 널리 펼치소서.

144:5.22 (1622.20) 불안한 인생의 미로를 통해서 걸음걸음 아버지의 손으로 우리를 이끄시고

144:5.23 (1622.21) 우리의 끝날이 다가올 때, 우리의 충실한 영을 아버지 품 안에 받으소서.

144:5.24 (1622.22) 그렇다 해도, 우리의 소망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 * *

144:5.26 (1622.23) 완전하고 올바른 우리 하늘 아버지여,

144:5.27 (1622.24) 오늘 우리의 여행길을 안내하고 지도하소서.

144:5.28 (1622.25) 우리의 발걸음을 거룩히 하고 우리의 생각을 조절하소서.

144:5.29 (1622.26) 영원히 진보하는 길에서 우리를 늘 이끄소서.

144:5.30 (1622.27) 권능이 충만하기까지 우리를 지혜로 채우시고

144:5.31 (1622.28) 무한한 에너지로 우리에게 활력을 주소서.

144:5.32 (1622.29) 우리를 북돋아 천사 무리의 계심과 안내를

144:5.33 (1622.30) 신성하게 의식하게 하소서.

144:5.34 (1622.31) 빛의 길에서 위를 향하여 항상 우리를 안내하소서.

144:5.35 (1622.32) 큰 심판의 날에 우리를 충분히 정당하게 만드소서

144:5.36 (1622.33) 우리를 영원한 영광 속에 계신 아버지처럼 만드시고

144:5.37 (1622.34) 하늘에서 끝없이 봉사하는 길로 우리를 받으소서.

* * *

144:5.39 (1622.35) 신비 속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144:5.40 (1622.36) 주의 거룩한 성품을 우리에게 드러내소서.

144:5.41 (1622.37) 땅에 있는 자녀들에게, 오늘을 주시사

144:5.42 (1622.38) 길과 빛과 진리를 보게 하소서.

144:5.43 (1622.39) 영원히 진보하는 길을 우리에게 보이시고

144:5.441 (1622.40) 그 안에서 걸을 의지를 주소서.

144:5.45 (1622.41) 우리 안에서 아버지가 신성한 임금이 되시고

144:5.46 (1622.42) 그리하여 우리가 자아를 완전히 통달하게 하소서.

144:5.47 (1622.43) 어둠과 죽음의 길로 빗나가지 않게 하시고

144:5.48 (1622.44) 생명의 물가로 영원히 우리를 이끄소서.

144:5.49 (1622.45) 바로 아버지를 위하여 우리의 기도를 들으소서.

144:5.50 (1622.46) 우리를 더욱 아버지처럼 만들기를 기뻐하소서.

144:5.51 (1623.1) 마지막에는 신다운 아들을 위하여,

144:5.52 (1623.2) 영원한 팔 안에 우리를 받으소서.

144:5.53 (1623.3) 그렇다 해도, 우리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 * *

144:5.55 (1623.4) 한 부모로 하나된 영화로운 아버지어머니여,

144:5.56 (1623.5) 그 신다운 성품에 우리가 충성하리이다.

144:5.57 (1623.6) 신의 영을 선물로 주심으로

144:5.58 (1623.7) 바로 주가 우리 안에, 우리를 통해 다시 살도록

144:5.59 (1623.8) 주가 하늘에서 완전하고 당당하게 보이는 것 같이

144:5.60 (1623.9) 이 구체에서 이렇게 주를 불완전하게 흉내를 내나이다.

144:5.61 (1623.10) 날마다 형제 되어 달갑게 봉사할 일을 주시고

144:5.62 (1623.11) 사랑으로 봉사하는 길에서 순간마다 우리를 이끄소서.

144:5.63 (1623.12) 주의 참을성을 우리가 아이들에게 보이는 것 같이

144:5.64 (1623.13) 늘 어김없이 우리를 참으소서.

144:5.65 (1623.14) 모든 일을 잘 처리하는 신의 지혜와 모든 생물에게 자비로운,

144:5.66 (1623.15) 그 무한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소서.

144:5.67 (1623.16) 우리의 자선이 이 땅의 약한 자를 품어 안도록

144:5.68 (1623.17) 주의 참을성과 인자함을 우리에게 베푸소서.

144:5.69 (1623.18) 우리의 생애가 끝날 때, 그것이 주의 이름에 명예요,

144:5.70 (1623.19) 주의 착한 영에게 기쁨이요, 우리 혼을 돕는 이에게 만족이 되게 하소서.

144:5.71 (1623.20)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여, 우리가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144:5.72 (1623.21) 필사 자녀들에게 영원히 좋은 것을 주가 바라시는 대로, 바로 그렇게 되어지이다

* * *

144:5.74 (1623.22) 모든 것에 충실한 우리의 근원이여 모든 것에 능한 중심이여,

144:5.75 (1623.23) 모두에게 인자한 아들의 이름을 경건하고 거룩하게 하옵소서.

144:5.76 (1623.24) 아버지의 은혜와 복이 우리에게 내려와서

144:5.77 (1623.25)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명령을 수행하도록 우리에게 힘을 주나이다.

144:5.78 (1623.26) 순간마다 생명나무의 자양분을 우리에게 주시고,

144:5.79 (1623.27) 날마다 거기 있는 강의 생명의 물로 우리를 새롭게 하소서.

144:5.80 (1623.28) 한 걸음 한 걸음 어둠에서 신성한 빛으로 우리를 이끄시고

144:5.81 (1623.29) 깃드는 영이 우리를 변화시킴으로 우리의 정신을 새롭게 하소서.

144:5.82 (1623.30) 마침내 죽는 날이 우리에게 닥칠 때

144:5.83 (1623.31) 바로 아버지가 우리를 받으시고 우리를 영원으로 보내소서.

144:5.84 (1623.32) 열매 많은 봉사로 얻는 하늘 왕관을 우리에게 얹으소서,

144:5.85 (1623.33) 우리가 아버지아들거룩한 영향에게 영광을 돌리리니,

144:5.86 (1623.34) 끝없는 우주에 두루 바로 그러하리이다.

* * *

144:5.88 (1623.35) 우주의 은밀한 곳에 거하시는 우리 아버지

144:5.89 (1623.36) 주의 이름이 영예롭고, 자비가 존경받고, 판단이 존중받으옵소서.

144:5.90 (1623.37) 한낮에 태양처럼 올바름이 우리를 비추게 하소서

144:5.91 (1623.38) 또한 땅거미 질 때 길을 벗어난 우리의 걸음을 안내하시기 바라나이다.

144:5.92 (1623.39) 아버지가 택하는 길에서 우리를 손잡아 이끄시고

144:5.93 (1623.40) 길이 험하고 날이 어두울 때 우리를 버리지 마소서.

144:5.94 (1623.41) 우리가 아버지를 무척 자주 소홀히 하고 잊는 것처럼 우리를 잊지 마시고

144:5.95 (1623.42) 우리가 아버지를 사랑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자비를 베풀고 우리를 사랑하소서.

144:5.96 (1623.43) 우리를 괴롭히고 해치는 자를 우리가 공평하게 용서하는 것 같이

144:5.97 (1623.44) 친절히 우리를 내려다보시고 자비롭게 우리를 용서하소서.

144:5.98 (1624.1) 훌륭한 아들의 사랑과 헌신과 수여가

144:5.99 (1624.2) 아버지의 끝없는 사랑과 자비와 더불어 영생을 베푸소서.

144:5.100 (1624.3) 우주의 하나님이 그 영을 충분히 우리에게 내려주시기를.

144:5.101 (1624.4) 우리에게 이 영의 인도하심을 받아들일 은혜를 내리소서.

144:5.102 (1624.5) 헌신하는 천사 무리가 사랑으로 베푸는 봉사로 인하여

144:5.103 (1624.6) 아들이 시대의 끝까지 우리를 안내하고 인도하기를.

144:5.104 (1624.7) 갈수록 더 우리를 늘 아버지처럼 만드시고

144:5.105 (1624.8) 우리의 마지막 날에 영원한 파라다이스 품으로 우리를 받으소서.

144:5.106 (1624.9) 바로 그러하니, 수여하신 아들의 이름으로

144:5.107 (1624.10)최상의 아버지의 영예와 영광을 위하여.

144:5.108 (1624.11) 사도들은 대중을 교육할 때 마음대로 이 기도들을 수업 시간에 가르칠 수 없었지만, 개인의 종교적 체험으로 보아서 이 모든 계시로부터 많은 소득을 얻었다. 예수는 열두 사도를 가까이 두고 교육하는 과정에서 이 여러 기도와 다른 기도 모형(模型)을 이용했으며, 이 일곱 가지 표본 기도를 이 기록에 옮겨 적도록 특별 허가가 내렸다.

6. 요한의 사도들과 가진 회의

144:6.1 (1624.12) 10월 초하루 무렵에 빌립과 동료 사도 몇 사람이 가까운 마을에서 먹을 것을 사고 있었는데, 그때 세례자 요한의 사도 몇 사람을 만났다. 시장에서 우연히 이렇게 만난 결과로 길보아 야영지에서 예수의 사도와 요한의 사도들 사이에 3주 동안 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예수의 선례를 따라서, 요한이 유력(有力)한 제자들 가운데 열두 사람을 사도로 얼마 전에 임명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충성스러운 지지자들의 우두머리, 아브너의 재촉을 받아서 요한은 그렇게 했다. 이 합동 회의가 있던 첫째 주간 내내, 예수길보아 야영지에 있었지만, 마지막 두 주 동안에 자리를 비웠다.

144:6.2 (1624.13) 이 달의 둘째 주가 시작되자 아브너는 동료들을 모두 길보아 야영지에 모았고, 예수의 사도들과 함께 회의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다. 3주 동안 이 스물네 사람은 하루에 세 번, 한 주에 6일 동안 회의를 가졌다. 첫째 주에 예수는 오전ㆍ오후ㆍ저녁 회의 사이에 그들과 함께 섞였다. 그들은 주가 함께 만나서 합동 회의를 주관하기를 바랐지만, 그는 토론에 참여하기를 굳게 물리쳤다. 하지만 세 번 그들에게 말씀하는 데 찬성했다. 예수가 스물네 사람에게 한 이 연설은 동정심ㆍ협동ㆍ관용에 대한 것이었다.

144:6.3 (1624.14) 안드레아브너는 두 사도 집단의 이 합동 회의를 번갈아 주관하였다. 이 사람들은 토론할 어려운 일이 많았고, 수많은 문제를 풀어야 했다. 거듭하여 그들은 문제를 예수에게 가져가곤 했지만, 오직 이런 말씀을 들었다: “나는 오직 너희의 개인적이고 순전히 종교적 문제에만 아랑곳하노라. 나는 개인에게 아버지의 대표요, 집단에게는 아니라. 너희와 하나님의 관계에서 개인적으로 곤경에 처해 있다면, 내게로 오라. 그러면 너희 말에 귀를 기울이고, 너희 문제를 푸는 데 조언하리라. 그러나 너희가 종교 문제에서 서로 다른 인간적 해석을 조정하고 종교를 사회 조직으로 만드는 일을 시작할 때, 너희는 자신들의 결정에 따라서 모든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도록 운명이 정해졌느니라. 그래도 나는 늘 공감하고 언제나 관심을 가지며, 너희가 모두 찬성한다면, 영적 중요성이 없는 이러한 문제들에 관하여 결론을 내릴 때, 완전히 승인하고 한껏 협동할 것을 내가 미리 서약하노라. 그리고 이제, 너희가 심의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나는 2주 동안 떠나겠노라. 내 걱정을 하지 말지니, 내가 돌아올 것임이라. 아버지의 일을 하고 있으리니 우리가 이 세상 외에 다른 나라들을 가지고 있음이라.”

144:6.4 (1625.1) 이렇게 말한 뒤에, 예수는 산허리로 내려갔다. 그들은 꼬박 2주 동안 그를 더 구경하지 못했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 이 동안에 무엇을 했는지 결코 알지 못했다. 스물네 사람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들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할 수 있기까지 얼마큼 시간이 걸렸고, 그들은 주가 자리에 계시지 않아서 당황하였다. 그러나 한 주 안에 다시 토론에 열중하였고, 그들은 도움을 청하러 예수에게 갈 수 없었다.

144:6.5 (1625.2) 그 집단이 찬성한 첫째 항목은 예수가 아주 최근에 그들에게 가르친 기도를 채택한 것이다. 이 기도를 두 사도 집단이 신자들에게 가르칠 기도로 받아들일 것을 만장 일치로 투표하였다.

144:6.6 (1625.3) 다음에, 감옥에 있든 풀려나든, 요한이 살아 있는 한, 두 사도 집단이 자체의 할 일을 계속할 것, 그리고 때때로 합의(合意)할 장소에서 석 달마다 한 주 동안 합동 회의를 열기로 결정했다.

144:6.7 (1625.4) 그러나 모든 어려움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세례 문제였다. 예수가 그 주제에 대하여 전에 전혀 발언하기를 거절했기 때문에 어려움은 더군다나 악화되었다. 요한이 살아 있는 한, 아니면 이 결정을 합동으로 수정할 때까지, 오직 요한의 사도들이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고 오직 예수의 사도들이 마지막에 새 제자들을 가르치기로 마침내 찬성했다. 따라서 그때부터 요한이 죽기까지, 요한의 두 사도가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려고 예수와 그의 사도들을 따라다녔다. 이는 세례가 하늘나라 일과 동맹하는 것을 겉으로 표시하는 첫 걸음이라고 합동 회의가 만장(滿場) 일치로 가결했기 때문이다.

144:6.8 (1625.5) 다음에, 요한이 죽을 경우에 요한의 사도들은 예수 앞에 나타나서 그의 지시에 복종하고 예수나 그의 사도들이 인가하지 않는 한, 더 세례를 주지 않기로 합의를 보았다.

144:6.9 (1625.6) 다음에, 요한이 죽을 경우에 예수의 사도들은 신성한 이 세례를 준다는 표시로, 비로소 물로 세례를 주기로 가결했다. 세례를 외치는 데 회개가 붙어야 하는가 아닌가는 선택이 되도록 두었고 그 집단을 제한하는 아무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 요한의 사도들은 “뉘우치고 세례받으라”하고 전도했고, 예수의 사도들은 “믿고 세례받으라”하고 외쳤다.

144:6.10 (1625.7) 이것이 예수의 추종자들이 다양한 노력을 조정하고 의견 차이를 조절하며, 집단의 사업을 조직하고 외관상 관습을 정하며, 개인의 종교적 습관을 사회에 적용시키려고 처음으로 시도한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144:6.11 (1625.8) 다른 사소한 문제들이 많이 고려되었고 그 해결은 만장 일치로 합의를 보았다. 예수가 없이 문제들에 부닥치고 어려움을 수습하도록 강요되었을 때, 이 스물네 사람은 이 2주 동안 참으로 놀라운 체험을 가졌다. 그들은 의견을 달리하고, 토론하고 다투고 기도하고 타협하기를 배웠고, 그동안 내내 다른 사람의 관점에 공감하며, 적어도 정직한 의견에 어느 정도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기를 배웠다.

144:6.12 (1625.9) 재정 문제를 마지막으로 토론하던 날 오후에 예수가 돌아왔다. 그는 심의한 결과를 듣고 결정에 귀를 기울이고 나서 말했다: “그러면 이렇게 너희가 결정하였구나. 너희가 합동으로 결정한 그 정신대로 각자 수행하도록 내가 너희를 도우리라.”

144:6.13 (1626.1) 이때부터 2달 반이 되어 요한은 처형되었다. 이 기간 내내 요한의 사도들은 예수와 열두 사도와 함께 남아 있었다. 데카폴리스의 여러 도시에서 수고하는 이 기간에, 모두 함께 일하고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길보아 야영은 서기 27년 11월 2일에 걷어치웠다.

7. 데카폴리스의 여러 도시에서

144:7.1 (1626.2) 11월과 12월 내내, 예수와 스물네 사람은 데카폴리스의 여러 그리스 풍의 도시에서, 주로 스키토폴리스게라사아빌라가다라에서 조용히 일했다. 이때는 정말로 요한의 일과 조직을 이어받는 예비 기간의 끝이었다. 새로운 계시를 사회에 퍼뜨린 종교는 그것이 구원하고자 하는 기존 종교의 확립된 형식 및 관습과 절충하는 값을 반드시 치른다. 세례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사회에 퍼진 한 종교 집단으로서 세례자 요한의 추종자들을 흡수하려고 치른 값이었다. 요한의 추종자들은 예수의 추종자들과 합세하면서, 물 세례 외에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하였다.

144:7.2 (1626.3) 데카폴리스의 여러 도시로 가는 이 전도 사업에서 예수는 거의 대중에게 설교하지 않았다. 스물네 사람을 가르치는 데 어지간히 시간을 썼고, 요한의 열두 사도와 함께 많은 특별 회의를 가졌다. 시간이 지나자 그들은 예수가 어째서 감옥에 있는 요한을 찾아보러 가지 않는가, 어째서 그의 석방을 위하여 예수가 아무 노력을 하지 않는가 더욱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째서 예수가 아무런 놀라운 일을 하지 않는가, 어째서 신의 권한을 바깥에 나타내는 표징(標徵)을 보이려 하지 않는가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길보아 야영지에 오기 전에 대체로 요한의 증언 때문에 예수를 믿었지만, 자신들이 주와 그 가르침과 접촉한 결과로 곧 믿기 시작했다.

144:7.3 (1626.4) 이 두 달 동안 그 집단은 대체로 짝을 지어 일했다. 예수의 사도들 중에 하나가 요한의 사도 하나와 함께 나갔다. 요한의 사도들은 세례를 주고 예수의 사도들은 가르쳤으며, 한편 알아들은 대로 모두가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파했다. 이 이방인들과 신앙을 버린 유대인들 사이에서 많은 사람을 설득했다.

144:7.4 (1626.5) 요한의 사도들 중에 우두머리 아브너예수를 열심히 믿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나중에 복음을 전파하라고 주가 임명한 70인 선생의 집단에서 우두머리로 임명되었다.

8. 펠라 근처의 캠프에서

144:8.1 (1626.6) 12월 후반에 그들 모두가 펠라 가까이 요단강 근처로 가서, 거기서 다시 가르치고 전도하기 시작했다.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복음을 들으려고 이 캠프로 왔다. 예수가 어느 날 오후 군중을 가르치고 있는 동안, 요한의 특별한 친구 몇 사람이 세례자로부터 마지막 소식을 가져왔다.

144:8.2 (1626.7) 요한은 이제 1년 반 동안 감옥에 있었다. 이 기간의 대부분에 예수는 아주 조용히 일했다. 그래서 요한이 하늘나라에 대하여 궁금히 여기게 된 것은 당연하다. 요한의 친구들은 예수가 가르치는 중간에 말씀을 막고 말했다. “당신이 참으로 구원자인가,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찾아야 하는가―세례자 요한이 물어보라고 우리를 보냈나이다.”

144:8.3 (1626.8) 예수는 말씀을 멈추고 요한의 친구들에게 말했다: “돌아가서 요한에게 그를 잊지 않았다고 이르라. 너희가 보고 들은 것, 가난한 자에게 좋은 소식이 전파된다고 이르라.” 요한의 사자들에게 말씀을 더하고 나서, 예수는 다시 군중을 향하여 말했다: “요한이 하늘나라의 복음을 의심한다고 생각지 말라. 오로지 내 제자이기도 한 그의 제자들에게 확신을 주려고 묻느니라. 요한은 약자가 아니라. 내가 묻노니, 헤롯이 그를 감옥에 가두기 전에 요한이 설교한 것을 누가 들어보았느냐. 요한에게서 너희가 무엇을 보았느냐―바람에 흔들린 갈대이더냐? 변덕스럽고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이더냐? 무릇 화려한 옷을 입고 세련되게 사는 자들은 임금의 궁정과 부자들의 저택에 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요한을 바라보았을 때 무엇을 보았더냐? 선지자냐? 옳도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훨씬 더 큰 사람이라. 요한에 관하여 기록되었으되, ‘보라, 네 얼굴 앞에 내가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네 앞에서 길을 예비하리라’ 하였느니라.

144:8.4 (1627.1)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이가 일어나지 않았느니라. 그래도 하늘나라에서는 작은 사람도 요한보다 더 크나니, 그가 영에게서 태어났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음을 아는 까닭이라.”

144:8.5 (1627.2) 그날 예수의 말씀을 들은 많은 사람이 요한의 세례를 받으려고 나아왔고, 이렇게 하여 하늘나라로 들어간다는 것을 대중 앞에서 공언했다. 요한의 사도들은 그날 이후로 예수와 단단히 결속되었다. 이 일은 요한예수의 추종자들이 정말로 뭉쳤음을 표시했다.

144:8.6 (1627.3) 사자들은 아브너와 이야기를 나눈 뒤에, 이 모든 소식을 요한에게 전하려고 마캐루스를 항하여 떠났다. 그는 크게 위로를 받았고, 그의 믿음은 예수의 말씀과 아브너가 준 소식을 받고서 더욱 굳건하게 되었다.

144:8.7 (1627.4) 이날 오후에 예수는 이렇게 말하며 계속 가르쳤다: “그러나 이 세대를 내가 무엇에 견주랴? 너희 중 많은 사람이 요한이 전하는 말도 내 가르침도 받아들이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장터에서 노는 어린아이들 같으니 동무들을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소리쳐 울어도 너희는 슬퍼하지 않았더라.’ 너희 가운데 더러도 마찬가지이라. 요한이 와서 먹지도 마시지도 않더니, 저희는 그가 악마에 들렸다 하였더라.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니, 바로 이 사람들이 말하되 ‘보라 게걸스레 먹는 자요 술꾼이로다,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이라!’ 진실로, 지혜가 옳은 것은 결과가 입증하느니라.

144:8.8 (1627.5)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이 진리 중에 얼마큼을 박식하고 거만한 자로부터 감추고 아기들에게는 드러낸 듯 보이리라. 그러나 아버지는 모든 일을 잘 하시니라. 아버지는 스스로 택하신 방법으로 우주에게 자신을 드러내시니라. 그러므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는 다 오라, 그리하면 너희의 혼이 휴식을 얻으리라. 신이 주는 멍에를 너희가 지라, 그리하면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평안을 너희가 맛보리라.”

9. 세례자 요한의 죽음

144:9.1 (1627.6) 세례자 요한은 서기 28년 1월 10일 저녁에, 헤롯 안티파스의 명령에 따라 처형되었다. 이튿날 마캐루스에 갔던 요한의 제자들 몇이 그가 집행되었다는 말을 듣고 헤롯에게 가서 그의 시체를 요구했으며, 어느 무덤에 두었다가 나중에 세바스티에서, 아브너의 집에서 장례를 치렀다. 이튿날 1월 12일 그들은 북쪽으로 펠라 가까이에 있던 요한예수의 사도들의 캠프로 떠났고 예수에게 요한의 죽음에 관하여 일러주었다. 그 보고를 듣자 예수는 군중을 해산하고 스물네 사람을 함께 불러서 말했다: “요한이 죽었도다. 헤롯이 그의 목을 베었더라. 오늘밤 합동 회의를 열고 그에 따라 너희의 일을 정리하여라. 더 지체하지 말라. 하늘나라를 드러내놓고 힘차게 선포할 때가 왔느니라. 내일 우리는 갈릴리로 떠나리라.”

144:9.2 (1627.7) 따라서, 서기 28년 1월 13일 아침 일찍 예수와 사도들은 25명쯤 되는 제자들을 동반하여 가버나움으로 진행했고, 그날 밤 세베대의 집에서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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