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우주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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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 서

제 1 편

우주의 아버지


(21.1) 1:0.1 우주의 아버지는 모든 창조의 하나님이요, 모든 사물과 존재의 첫째 근원 중심이다. 먼저 하나님을 창조자로, 다음에 통제자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무한한 지원자로 생각하여라. “하나님, 주는 홀로 계시며, 주 외에 아무도 없나이다. 주는 하늘을 지으시고, 가장 높은 하늘과 거기에 있는 모든 무리를 지으셨나이다. 주는 저희를 보존하고 통제하시나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우주들을 만드셨나이다. 창조자는 옷을 입듯 빛으로 스스로를 덮고, 하늘을 장막처럼 펼치시나이다” 하고 어느 선지자가 말했을 때, 우주의 아버지에 대한 진리의 빛이 인류에게 밝아 오기 시작했다. 오로지 우주의 아버지―여러 신 대신에, 유일한 하나님―의 개념이 필사 인간으로 하여금 아버지를 신성한 창조자요 무한한 통제자임을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21.2) 1:0.2 허다한 혹성 체계들 모두가 궁극에는, 많은 다른 종류의 지적(知的) 생물, 곧 하나님을 알고 신의 사랑을 받으며 그에 응답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존재들이 살기 위하여 지어졌다. 온 우주는 하나님의 작품이요, 그의 다채로운 피조물이 사는 곳이다. “하나님은 하늘을 지으시고 땅을 빚으셨도다. 우주를 세우고 이 세상을 헛되이 창조하지 않았고, 사람이 살라고 우주를 빚으셨도다.”

(21.3) 1:0.3 깨우친 모든 세계가 우주의 아버지, 모든 창조의 영원한 조물주, 무한한 지원자를 헤아리고 예배한다. 수많은 우주에 사는 의지(意志) 생물은 파라다이스로 가는 기나긴 나그네 길을 시작하였으니, 이것은 황홀한 투쟁이요, 아버지 하나님에게 도달하는 영원한 모험이다. 시간 속에 사는 아이들의 초월 목표는 영원한 하나님을 찾아내고, 신의 성품을 이해하고, 우주의 아버지를 헤아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피조물은 최고의 포부를 오직 하나, 온 몸을 불태우는 소망을 꼭 하나 가졌으니, 즉 하나님이 파라다이스처럼 완전한 그의 성격 안에서, 또 최상으로 올바른 그의 우주 구체에서 완전한 것 같이, 그들이 사는 구체에서 그들의 상태대로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다. 영원에 거하시는 우주의 아버지로부터 최상의 명령이 떨어졌다, “내가 완전한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 사랑과 자비 속에서 파라다이스의 사자(使者)들은, 오랜 세월 동안, 우주를 통해서 바깥으로, 아니 유란시아의 인류와 같이 비천한 동물 기원을 가진 생물에게까지도 이 신의 가르침을 전해 왔다.

(22.1) 1:0.4 신의 완전함을 얻으려고 애쓰라고 하는, 훌륭하고 보편적인 이 명령은 완전의 하나님이 지으신, 투쟁하는 모든 생물 창조의 첫째 가는 의무요, 가장 높은 포부가 되어야 한다. 신의 완전함에 이르는 이 가능성은, 모든 사람이 영원히 영적으로 진보하는 운명, 마지막이자 확실한 운명이다.

(22.2) 1:0.5 유란시아의 필사자들은 무한한 의미에서, 도저히 완전하기를 바랄 수 없다. 그러나 이 혹성에서 하는 것처럼 시작해서, 무한한 하나님이 필사(必死) 인간을 위하여 예비한 숭고하고 신성한 목표를 이루는 것은 인간에게 전적으로 가능하다. 하나님 자신이 무한하고 영원한 세계에서 그런 것 같이, 이 운명을 달성할 때, 필사자들은 자아의 실현과 지적(知的) 달성의 모든 면에서, 신답게 완전한 그들의 영역에서 똑같이 충만하게 된다. 그러한 완전은 물질적 의미에서 보편성이 있거나, 지적 이해에 한계가 없거나, 영적 체험에서 최종은 아닐지 모르지만, 의지의 신성함, 인격자의 동기의 완전함, 하나님을 의식하는 이 모든 유한한 모습에서, 인간의 완전은 최종이요 완벽하다.

(22.3) 1:0.6 이것이 “내가 완전한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는 신의 명령의 참 뜻이다. 이 말씀은 자꾸 더 높아지는 수준의 영적 가치와 참된 우주 의미를 달성하기 위한 길고도 황홀한 그 싸움에서, 필사자를 전진하라고 늘 재촉하고, 안으로 손짓하여 부른다. 우주들을 지은 하나님을 이렇게 숭고하게 탐색하는 것은, 모든 시공 세계의 거주민이 겪는 최상의 모험이다.

1. 아버지의 이름

(22.4) 1:1.1 우주에 두루, 아버지 하나님은 온갖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가운데 하나님을 첫째 근원이요 우주 중심이라고 지칭하는 이름을 가장 많이 본다. 처음 아버지는 다른 우주들에서, 또 같은 우주의 다른 지역에서, 여러 가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피조물이 창조자에게 붙이는 이름은, 피조물의 창조자 개념에 많이 달려 있다. 첫째 근원 우주 중심은 스스로를 이름으로 나타낸 적이 없고, 오직 성품으로 나타낼 뿐이다. 우리가 이 창조자의 아이들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궁극에는 우리가 그를 아버지라 불러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따름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우리 자신이 고르는 이름이요, 첫째 근원 중심과 우리의 개인적 관계를 깨달음으로 생겨난다.

(22.5) 1:1.2 우주의 아버지는 우주의 총명한 의지 생물에게, 어떤 형태로든지, 멋대로의 인식이나 형식적 예배나 노예 같은 봉사를 결코 강요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의 세계에서 사는 진화하는 주민들은 저절로―마음 속에서 우러나서―아버지를 알아보고 사랑하며, 자원해서 예배해야 한다. 창조자는 물질 생물에게 영적 자유 의지를 바치는 것을 강제하거나 강요하려 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데 인간의 의지를 사랑에 넘쳐 바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선물이다. 사실은, 피조물이 이렇게 의지를 거룩히 바치는 것은 사람이 파라다이스 아버지께 드릴 수 있는 선물, 참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선물이다. 하나님 안에서, 사람은 살고, 움직이고, 제 존재를 가질 수 있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다는 이 선택 외에는 사람이 하나님께 드릴 것이 하나도 없다. 우주에서 총명한 의지 생물이 내리는 그러한 결정은 사랑에 지배된 창조자 아버지 성품에 아주 흐뭇한, 그 참된 예배의 실체를 이룬다.

(22.6) 1:1.3 일단 너희가 참으로 하나님을 의식하게 되고 나서, 너희가 위엄 있는 창조자를 정말로 발견하고 비로소 신다운 통제자의 깃드는 계심을 깨달은 뒤에, 그 때 너희의 깨우침에 따라서, 신의 아들들이 하나님을 드러내는 그 절차와 방법에 따라서, 너희의 위대한 첫째 근원 중심 개념을 알맞게 표현하는, 우주의 아버지의 이름을 찾아낼 것이다. 그래서 다른 세계와 여러 우주에서, 창조자는 수많은 명칭으로 알려진다. 이러한 명칭들은 그 관계를 나타내는 정신으로 보면 다 같은 뜻을 가졌지만, 그 단어와 상징 면에서, 각 이름은 어떤 주어진 영역에서 피조물의 가슴 속에 자리잡은 그의 보좌의 정도와 깊이를 나타낸다.

(23.1) 1:1.4 온 우주의 중심 가까운 데서, 우주의 아버지는 대체로, 첫째 근원이라는 뜻으로 여겨도 좋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공간 우주에서 바깥으로 더 멀리 나가면, 우주의 아버지를 가리키는 데 쓰이는 호칭은 더 흔하게 우주 중심을 뜻한다. 별들이 있는 창조에서 더욱 멀리 나가면, 너희 지역 우주의 본부 세계에서 보다시피, 우주의 아버지는 첫째 창조 근원 신성 중심으로 알려져 있다. 근처의 한 별자리에서는 하나님을 우주들의 아버지라 부른다. 또 다른 별자리에서는 무한한 지지자로, 동쪽에서는 신성한 통제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또한 빛의 아버지, 생명의 선물, 전능하신 분이라고도 부른다.

(23.2) 1:1.5 파라다이스 아들이 자신을 수여(授與)한 생애를 산 적이 있는 세계들에서, 하나님은 개인적인 관계, 부드러운 사랑, 아버지답게 헌신함을 가리키는 어떤 이름으로 대체로 알려져 있다. 너희의 별자리 본부에서 하나님은 우주의 아버지로서 언급되고, 너희 지역 체계에서, 사람 사는 여러 세계의 다른 혹성들에서 하나님은 여러 가지로, 할아버지, 파라다이스 아버지, 하보나 아버지, 영 아버지로서 알려져 있다. 파라다이스 아들이 수여되는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혹성들은, 피조물과 창조자의 친교를 나타내는, 마음에 닿는 관계의 감상적 매력에 결국은 손들고,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 부른다.

(23.3) 1:1.6 남녀가 구분되는 피조물이 사는 혹성, 그 총명한 존재들의 가슴 속에서 부모 감정의 충동이 본래부터 있는 세계에서, 아버지라는 호칭은 영원한 하나님을 잘 나타내는 적절한 이름이 된다. 너희 혹성 유란시아에서, 그는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고, 가장 널리 인정받는다. 그에게 붙인 이름 자체는 중요성이 거의 없다. 중요한 것은 너희가 그를 알고 그처럼 되고 싶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옛날 너희의 선지자들은 참으로 그를 “영원한 하나님”이라 불렀고, “영원에서 사시는 분”이라 언급하였다.

2. 하나님의 실체

(23.4) 1:2.1 하나님은 영 세계에서 제일 가는 실체이다. 하나님은 지성 세계들에서 진리의 근원이다. 하나님은 물질 영역에 두루, 만물을 능가한다. 지음받은 모든 지성 존재에게, 하나님은 성격을 가진 분이요, 온 우주에게 하나님은 영원한 실체의 첫째 근원 중심이다. 하나님은 사람 같지도 않고, 기계 같지도 않다. 처음 아버지는 우주의 영, 영원한 진리, 무한한 실체, 아버지 성격자이다.

(23.5) 1:2.2 영원한 하나님은 이상이 된 실체, 또는 성격화된 우주보다 무한하게 크다. 하나님은 단지 사람이 품는 최고의 소망, 필사자의 추구를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단지 하나의 개념, 올바른 권능 잠재성도 아니다. 우주의 하나님은 자연과 비슷한 말도 아니요, 자연 법칙이 성격화한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초월 실체요, 단지 최상의 가치에 대하여 사람이 가진 전통적 개념이 아니다. 하나님은 영적 의미의 심리적 집중이 아니요, “사람의 가장 고귀한 작품”도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이 개념들 가운데 무엇이나, 또 모두일까 하지만, 그보다 더 크다. 땅에서 영적 평화를 누리는 모든 사람에게, 죽음 속에서 성격이 살아남는 것을 간절히 체험하고 싶어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구제하는 이요 사랑의 아버지이다.

(24.1) 1:2.3 하나님이 존재하는 사실성은, 인간의 체험 속에서, 신성한 존재의 깃드심으로 말미암아 입증된다. 이 존재는 사람의 필사 지성 속에 살면서, 거기서 영원히 살아남는 불멸의 혼이 생성되는 것을 도우라고, 파라다이스로부터 파송된 영 감시자이다. 이 신다운 조절자가 인간 지성 속에 계신 것은 세 가지 경험적 현상으로 말미암아 드러난다.

(24.2) 1:2.4 1. 하나님을 아는 지적 능력―하나님을 의식하는 것.
(24.3) 1:2.5 2. 하나님을 찾으려는 영적 욕구―하나님을 추구하는 것.
(24.4) 1:2.6 3. 하나님을 닮으려는 인격자의 갈망―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마음을 다하여 바라는 것.

(24.5) 1:2.7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은, 과학적 실험이나 논리를 따져 추론하는 순수 논리로 결코 증명될 수 없다. 오로지 인간이 체험하는 영역에서 하나님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런데도 하나님 실체의 참된 개념은, 논리적으로 합당하고, 철학적으로 신빙성이 있고, 종교에 기본이며, 성격이 살아남는 희망을 조금이라도 가지는 데 필수이다.

(24.6) 1:2.8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그가 계시는 사실을 체험하였다. 하나님을 아는 그러한 필사자들은 자기 개인의 체험 속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증거,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내밀 수 있는 유일하게 확실한 증거를 지닌다.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은 인간의 지성 속에서 생기는 하나님 의식(意識)과 생각 조절자가 하나님으로 계심 사이에 생기는 접촉 외에는, 도무지 보여 줄 가능성이 없다. 생각 조절자는 필사자의 지성에 깃들고, 우주의 아버지가 사람에게 거저 주는 선물로서 수여된다.

(24.7) 1:2.9 이론적으로 너희는 하나님을 창조자로 생각해도 좋으며, 하나님은 파라다이스와 완전한 중앙 우주를 친히 지으신 분이다. 그러나 시공(時空)의 우주들은 모두, 파라다이스 군단의 아들 창조자들에게 지음받고 조직된다. 우주의 아버지는 네바돈 지역 우주를 친히 지으신 분이 아니다. 너희가 살고 있는 우주는 그의 아들 미가엘이 지은 것이다. 아버지는 진화 우주들을 손수 짓지 않아도, 여러 우주 관계에서, 또 그 우주들의 물질•지성•영 에너지의 어떤 표현에서, 진화하는 우주들을 통제한다. 아버지 하나님은 파라다이스 우주를 손수 지으신 분이요, 영원한 아들과 결합하여, 다른 우주들을 몸소 지은 창조자들의 창조자이다.

(24.8) 1:2.10 물질적인 온 우주에서 물리적 통제자로서, 첫째 근원 중심은 영원한 파라다이스 섬의 원형(原形)들 안에서 작용한다. 이 절대 인력의 중심을 통해서, 영원한 하나님은 중앙 우주에서, 그리고 온 우주에 두루, 물리적 수준에서 똑같이 전반적으로 우주를 통제한다. 지성으로서, 하나님은 무한한 영의 신 안에서 일한다. 영으로서 하나님은 영원한 아들의 몸에, 또 영원한 아들의 신성한 아이들의 몸에 나타난다. 이 첫째 근원 중심이 파라다이스에 계시는 동등한 성격자 및 절대자들과 가지는 상호 관계는 모든 창조에 두루, 거기 있는 모든 수준에, 우주의 아버지가 직접 친히 활동하시는 것을 조금도 막지 않는다. 그의 분신이 된 영의 계심을 통해서, 창조자 아버지는 생물인 아이들과 그가 지은 우주들과 직접 연락을 유지한다.

3. 하나님은 보편적 영

(25.1) 1:3.1 “하나님은 영이라.” 하나님은 보편적 영의 계심이다. 우주의 아버지는 무한한 영적 실체이다. 그는 “지고하고 영원하고 불멸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유일하게 참된 하나님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자손”이라 하더라도, “그의 모습을 따라” 지어졌다―영원하게 계신 그의 중앙 거처로부터 파송된 신비의 감시자가 너희에게 깃든다―는 말이 있다고 해서, 아버지가 형태나 모습이 너희와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살과 피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영 존재들은 실재한다.

(25.2) 1:3.2 옛 예언자가 말했다: “보라, 그가 내 옆을 지나가도, 나는 그를 보지 못하고, 그가 또한 떠나도 나는 그를 깨닫지 못하노라.” 항상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지켜보고, 그의 장엄한 행위의 물질적 증거를 상당히 의식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의 신성(神性)이 눈에 띄게 나타나는 것을 보기 드물고, 사람 속에 깃드는, 그가 맡긴 영의 계심조차 구경할 수 없다.

(25.3) 1:3.3 물질적 장애나 제한된 영적 자질을 가진 낮은 피조물로부터 그가 숨기 때문에 우주의 아버지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상황을 말하자면, “너희는 내 얼굴을 볼 수 없으니, 이는 어느 필사자도 나를 보고 나서 살 수 없음이라.” 어떤 물질 인간도, 영 하나님을 뵙고 나서, 필사 인간의 존재를 버틸 수 없다. 신다운 성격자의 계심의 영광과 영적 눈부심은, 그보다 낮은 무리의 영 존재나 어떤 계급의 물질 성격자들도 가까이 가기가 불가능하다. 아버지가 몸소 계신 데서 나오는 영적 빛은 “어떤 필사 인간도 가까이할 수 없는 빛, 어떤 물질 생물도 본 적이 없고, 볼 수도 없는 빛이라.” 그러나 영답게 변화된 지성의 믿는 시력을 가지고 하나님을 헤아리기 위해서는, 육체의 눈으로 하나님을 볼 필요가 없다.

(25.4) 1:3.4 우주의 아버지의 영 성품은, 공존하는 자신, 곧 파라다이스의 영원한 아들과 완전히 함께 나누어 가진다. 마찬가지로 아버지와 아들은 그들의 합동 성격 동위자인 무한한 영과 함께, 보편적이고 영원한 영을 충분하고 아낌없이 나누어 가진다. 하나님의 영은, 그 자체로서 저절로 절대적이다. 그 영은 아들 안에서 제한이 없고, 영 안에서 보편적이요, 이들 모두 안에서, 또 모두로 말미암아 무한하다.

(25.5) 1:3.5 하나님은 보편적 영이요, 하나님은 보편 성격자이다. 유한한 창조에서 최상의 성격 실체는 영이며, 성격을 가진 우주의 궁극 실체는 초한(超限) 영이다. 오로지 무한의 수준이 절대적이고, 오로지 그런 수준에서만 물질•지성•영이 하나가 되는 최종성이 존재한다.

(25.6) 1:3.6 여러 우주에서 아버지 하나님은 잠재적으로, 물질•지성•영을 두루 통제하는 분이다. 오로지 그의 널리 미치는 성격 회로의 수단으로, 하나님은 의지 생물이 있는 광대한 창조에서 성격자들을 직접 다루신다. 그러나 (파라다이스 바깥에서) 오로지 그의 분신이 된 존재의 계심 속에서 하나님을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며, 그러한 존재들은 바깥 우주들에서 하나님의 뜻이다. 시간 속에 사는 필사자들의 지성 안에 깃들고, 거기서 살아남는 피조물의 불멸하는 혼의 진화를 보살피는 이 파라다이스 영은 우주의 아버지의 성품과 신성(神性)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진화하는 생물의 지성은 지역 우주에서 비롯하고, 영적으로 달성하는 체험적 변화를 겪음으로 신의 완전함을 얻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피조물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를 선택함으로 반드시 생기는 결과이다.

(26.1) 1:3.7 사람의 속 경험에서, 지성(知性)은 물질에 붙어 있다. 이렇게 물질과 연결된 지성은 사람이 죽은 뒤에 살아남을 수 없다. 살아남는 기법은 하나님을 의식하는 지능이 차츰 영의 가르침을 받고 궁극에는 영의 인도함을 받음으로 인간의 의지를 조정하는 것, 그리고 사람의 지성 속에서 생기는 변화에 둘러싸여 있다. 물질과 결합된 것으로부터 영과 뭉치기까지 사람의 지성이 이렇게 진화하는 것은, 필사 지성의 잠재하는 영 단계를 불멸하는 혼의 상물질(上物質) 실체로 바뀌게 한다. 물질에 굴종하는 사람의 지성은 갈수록 더 물질적이 되며, 그 결과로 궁극에는 성격이 소멸될 운명을 가진다. 영에게 굴복한 지성은 갈수록 더 영답게 되고, 살아남는 안내하는 신다운 영과 하나가 됨을 궁극에 이룩하고 이 방법으로 성격 존재가 살아남고 영원을 얻을 운명을 가진다.

(26.2) 1:3.8 나는 영원자로부터 왔고, 우주의 아버지가 계신 앞에 거듭해서 돌아갔다. 나는 첫째 근원 중심, 영원한 우주의 아버지의 사실성과 성격을 알고 있다. 나는 위대한 하나님이 절대적이고 영원하고 무한한 한편, 하나님은 또한 선하고 신성하고 인자하심을 알고 있다. “하나님은 영이라,”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위대한 두 선언이 진리임을 나는 알고 있으며, 이 두 속성은 우주에게, 영원한 아들 안에서 아주 완벽하게 드러난다.

4. 하나님의 신비

(26.3) 1:4.1 하나님이 무한히 완전함은, 하나님을 영원히 신비로 만드는 그러한 것이다. 깊이를 잴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 가운데 가장 큰 것은 필사 지성 속에 신이 깃드는 현상이다. 우주의 아버지가 시간의 생물과 함께 머무르는 그 방식은 모든 우주 신비 가운데 가장 깊은 것이다. 사람의 지성 속에 신이 계시는 것은 신비 중의 신비이다.

(26.4) 1:4.2 필사자의 육체는 “하나님의 성전(聖殿)”이다. 군주 아들 창조자들이 사람이 사는 그들 세계의 피조물에게 가까이 와서, “모든 사람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기는데도,” 그들이 의식의 “문 앞에 서서,” “두드리며,” “마음 문을 열려는” 모든 사람에게 들어가기를 기뻐하고, 아들 창조자들과 그 필사 인간 사이에 깊은 이 개인적 교통이 있더라도, 그런데도, 또한 필사 인간은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온 무엇인가를 받는데, 이것은 그들 안에 실제로 살며, 사람의 몸은 그 성전이다.

(26.5) 1:4.3 너는 여기 아래에서 인생이 끝나고, 땅에서 임시 형태를 입고 너의 과정을 다 마치고, 육체를 입은 연습 여행이 끝나고, 필사자의 천막을 구성하는 티끌이 “온 곳으로 되돌아갈 때,” 계시된 바와 같이, 그제야 깃드는 “영은 주신 하나님한테로 돌아갈지니라.” 이 혹성에서 태어난 도덕적 인간 각자 안에는, 하나님의 분신, 신성의 부분이자 소포(小包)가 머무른다. 소유권으로 따지면, 아직 네 것이 아니다. 그러나 네가 필사 존재에서 살아남으면, 그 분신은 너와 하나가 되려고 계획으로 의도한 것이다.

(26.6) 1:4.4 우리는 늘 하나님의 이 신비에 부딪친다. 그의 무한한 선, 끝없는 자비, 비할 데 없는 지혜, 숭고한 신격이 담긴, 끝없는 진리의 파노라마가 더욱 펼쳐져 우리는 어쩔 줄 모른다.

(26.7) 1:4.5 신성한 신비는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 현세의 것과 영원한 것, 시공 생물과 우주 창조자, 물질인 것과 영적인 것, 사람의 불완전과 파라다이스 신의 완전,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본래의 차이에 있다. 피조물 각자에게, 신성한 진리, 아름다움, 선함의 질을 영적으로 파악하는 생물의 능력이 충분히 닿는 데까지, 보편적으로 사랑하는 하나님은 스스로를 어김없이 나타내신다.

(27.1) 1:4.6 온 우주의 모든 구체(球體), 모든 세계에 사는 어떤 영 존재나 어떤 필사 인간에게, 우주의 아버지는 그러한 영 존재들과 그러한 필사자가 헤아리고 이해할 수 있는, 인자하고 신성한 자아의 전부를 나타내신다. 영적이든 물질적이든, 하나님은 성격자를 차별하는 분이 아니다. 우주의 어떤 아이가 어떤 주어진 시각에 신성한 계심을 겪더라도, 그것은 그러한 생물이 물질을 초월하는 세계의 영적 사실성을 받아들이고 헤아리는 능력에 따라서만 한정된다.

(27.2) 1:4.7 인간의 영적 체험에 있는 실체로서, 하나님은 신비가 아니다. 영 세계의 실체들을, 물질 계급의 물리적 지성에게 쉽게 설명하려고 시도할 때, 신비가 생긴다. 신비가 아주 미묘하고 깊어서, 하나님을 아는 필사자의 믿음의 힘은 유한자가 무한자를 인식하는 기적(奇蹟), 시공의 물질 세계에서 진화하는 필사자들이 영원한 하나님을 헤아리는 철학적 기적을 성취할 수 있다.

5. 우주의 아버지의 성격

(27.3) 1:5.1 하나님의 크심, 그의 무한성이 그의 성격을 가리거나, 빛을 잃게 만들지 말지어다. “귀를 만들려고 계획하신 분이, 또한 듣지 아니하실까? 눈을 지으신 분이, 또한 보지 아니하실까?” 우주의 아버지는 신다운 성격의 절정이다. 그는 모든 창조 전역에 걸쳐, 성격의 기원(起源)이요 운명이다. 하나님은 무한하고 성격을 가졌으며, 무한한 성격자이다. 그 몸의 무한성이, 물질이고 유한한 존재들이 언제까지나 충분히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 스스로 계시게 만드는데도, 아버지는 참으로 성격자이다.

(27.4) 1:5.2 하나님은 인간의 지성이 이해하는 바와 같은 성격자보다 훨씬 크다. 어떤 가능한 초월 성격자 개념보다도 훨씬 더 크다. 그러나 물질 생물의 지성과 함께 그러한 이해할 수 없는 신다운 성격자 개념을 이야기하는 것은 도무지 헛일이니, 이는 존재의 실체에 대한 그들의 가능한 최고 개념이, 성격 아이디어와 그 이상(理想)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물질 생물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높은 우주 창조자 개념은, 신성한 성격자에 관한 높은 관념의 영적 이상에 담겨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의 성격자 개념보다 훨씬 높음이 틀림없다는 것을 너희가 알까 하지만, 우주의 아버지는 영원•무한하며,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성격자 아래에 있는 어떤 것도 도저히 될 수 없음을 너희는 똑같이 잘 안다.

(27.5) 1:5.3 하나님은 피조물 가운데 누구로부터도 숨어 있지 않다. 수많은 계급의 존재들이 그를 가까이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물질 생물도 가까이할 수 없는 빛 안에 거하기” 때문이다. 진화하는 필사자들의 완전하게 되지 않은 지성은 신성한 성격자의 엄청나고 장대함을 움켜쥘 수 없다. 하나님은 “그 손바닥으로 물을 재고, 그의 뼘으로 우주를 재시나이다. 그는 지구의 둥근 천장1 위에 앉으시고, 하늘을 커튼처럼 늘이고 거하실 우주로서 하늘을 펼치는 분이로다.” “하늘 높이 네 눈을 들지어다. 누가 이 모두를 지으셨고, 누가 저희의 세계를 번호에 따라 가져오며, 저희 모두를 그 이름으로 부르시는가 볼지어다.” 그래서 “지음받은 것들은 하나님의 불가시(不可視)한 것들을 부분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정말이다. 오늘날, 너희 신분 그대로, 하나님의 다양하고 다채로운 창조를 통해서, 그리고 그의 아들들 및 그들의 수많은 부하의 계시와 봉사를 통해서, 너희는 볼 수 없는 조물주를 깨달아야 한다.

(28.1) 1:5.4 물질인 필사자들은 비록 하나님의 몸을 볼 수 없더라도, 그가 성격 소유자임을 확신하는 가운데 기뻐해야 하며, 우주의 아버지가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해서 그 비천한 거주민에게 영원한 영적 진보의 길을 마련하셨고, “그의 자녀들을 매우 기뻐하신다”는 진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완전하고 영원하며, 사랑이 깊고 무한한 창조자 성격을 구성하는, 인간을 초월하는 그 신다운 속성 가운데 하나도 하나님은 모자라지 않는다.

(28.2) 1:5.5 (초우주 요원들을 빼놓고) 여러 지역 창조에서, 사람이 사는 세계의 아버지요 지역 우주의 군주인 파라다이스 아들 창조자들은 별도로 하고, 하나님은 몸소, 또는 거주함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피조물의 믿음이 완전하다면, 아들 창조자를 보았을 때 그가 우주의 아버지를 보았음을 확실히 알 것이다. 아버지를 찾으면서, 아들 외에 다른 분을 보려고 요구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을 것이다. 필사 인간은 그가 영의 변화를 완전히 마치고 실제로 파라다이스에 다다를 때까지 하나님을 볼 수 없을 따름이다.

(28.3) 1:5.6 파라다이스 아들 창조자들의 성품은 첫째 근원 중심의 무한한 성품이 가진, 보편적 절대성의 무제한 잠재성을 다 둘러싸지 않는다. 그러나 우주의 아버지는 모든 면에서 아들 창조자들 안에 신성하게 계신다. 아버지와 그의 아들들은 하나이다. 미가엘 계급의 이 파라다이스 아들들은 완전한 성격자요, 밝은 새벽별로부터 진보하는 동물의 진화를 거치는 가장 낮은 인간 생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역 우주 성격자의 원형이 되기도 한다.

(28.4) 1:5.7 하나님 없이, 그의 큰 중심 성격을 제외하고, 광대한 온 우주 전역에 걸쳐서 성격자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성격자이다.

(28.5) 1:5.8 하나님이 영원한 힘이요, 위엄 있는 계심, 초월 이상(理想), 영화로운 영인데도, 이 모두요, 모두를 무한히 넘는데도, 그는 참으로 영원히, 완전한 창조자인 성격자이다. 곧 하나님은 “이해할 수 있고 또한 이해될 수 있으며,” “사랑할 수 있고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며,” 우리에게 친구가 될 수 있는 분이다. 한편 다른 인간들이 하나님의 친구임이 알려진 것처럼, 너희도 그렇게 인정받을 수 있다. 하나님은 참 영이요 영적 실체이다.

(28.6) 1:5.9 우주의 아버지가 그의 우주에 두루 나타나심을 볼 때, 그가 무수한 생물 안에 깃드심을 우리가 헤아릴 때, 그의 군주 아들들의 몸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여기저기, 가까이, 멀리, 그의 신성한 계심을 우리가 계속 느낄 때, 하나님이 성격의 최초임을 의심하거나 의문을 가지지 말자. 이렇게 멀리 미치도록 온통 분산되는데도 하나님은 참 성격자로 남아 계시며, 온 우주에 흩어진 수없이 많은 무리의 피조물과 친히 연락을 유지하신다.

(28.7) 1:5.10 우주의 아버지가 성격이라는 관념은 주로 계시를 통해서 인류에게 전해져 내려온, 좀더 참다운 하나님 개념이다. 이성(理性), 지혜, 종교적 체험은 모두 하나님이 성격임을 가리키고 암시하지만, 이를 전적으로 정당화하지 못한다. 안에 깃드는 생각 조절자조차도 전 성격(前性格)이다. 어떤 종교라도, 그 진리와 성숙도는 하나님의 무한한 성격에 대한 그 종교의 개념, 그리고 신의 절대적 통일성을 이해하는 그 정도에 정비례한다. 그러면 종교가 하나님의 통일성 개념을 처음으로 형성한 뒤에, 성격을 가진 신 아이디어는 종교의 성숙도를 재는 자가 된다.

(29.1) 1:5.11 원시 종교는 성격을 가진 신이 많이 있었고, 이들은 인간의 모습을 따라 만들어졌다. 계시(啓示)는 하나님이 성격이라는 개념이 정당함을 확인한다. 이 개념은 첫째 근원을 과학적으로 가정해야만 가능하며, 우주의 하나라는 철학 관념 속에 겨우 잠정적으로 암시되어 왔다. 오로지 성격자 접근법을 써서 누구나 하나님의 하나됨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첫째 근원 중심이 성격 소유자임을 부인하는 것은, 사람에게 유물론(唯物論)과 범신주의, 이 두 가지 철학적 딜레마 가운데 선택을 강요한다.

(29.2) 1:5.12 신을 깊이 생각할 때, 성격자 개념은 유형체(有形體) 개념을 벗어 버려야 한다. 물질인 몸은, 사람이나 하나님의 성격에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 유형성의 잘못은 인간 철학의 두 극단에서 나타난다. 유물론에서는, 사람이 죽음에 이를 때 몸을 잃어버리니까, 사람은 성격자로서 존재하기를 그친다. 범신주의에서는, 하나님은 육체가 없으니까, 따라서 성격자가 아니다. 초인간 종류의 진보하는 성격자는 지성과 영의 연합 안에서 활동한다.

(29.3) 1:5.13 성격은 다만 하나님의 속성이 아니다. 성격은 조정된 무한한 성품을 가진 총체, 그리고 통일된 신의 뜻을 대표하며, 그 뜻은 완전한 표현의 영원성과 보편성에서 드러난다. 최상의 의미에서, 성격은 온 우주에게 하나님이 주는 계시이다.

(29.4) 1:5.14 하나님은 영원하고 보편적이며, 절대적이고 무한하니까, 하나님은 지식이 자라거나 지혜가 늘지 않는다. 하나님은 유한한 인간이 추측하거나 이해하는 것처럼 경험을 얻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영원한 성격 테두리 안에서, 하나님은 자아 실현의 계속된 확장을 누리시고, 이것은 어떤 면에서, 진화 세계들에서 유한한 생물이 새로운 경험을 겪는 것에 견줄 만하고 그와 비슷하다.

(29.5) 1:5.15 신의 도움을 얻어서 하늘에 영적으로 완전한 높은 세계들로 올라가기를 추구하는, 너른 우주에 모든 불완전한 혼이 겪는 성격 투쟁에 우주의 아버지가 직접 참여하는 사실이 아니라면, 무한한 하나님의 절대 완전은 그로 하여금, 완전성이 가진 무조건적 최종에 끔찍한 제약을 받게 할 것이다. 온 우주에 두루, 모든 영 존재와 필사 인간이 겪는 이 진보하는 체험은, 끊임없이 자아를 실현하는 수준, 결코 그치지 않는 신성한 수준에서 아버지의 늘 확대되는 신 의식(意識)의 일부이다.

(29.6) 1:5.16 이것은 글자 그대로 참말이다, “너희의 모든 고통 속에 그가 고통을 받으며,” “너희의 승리 속에, 그도 너희 안에서 너희와 함께 승리를 거두느니라.” 하나님의 전 성격인 신성한 영은 너의 실재하는 일부이다. 파라다이스 섬은 온 우주에서 생기는 모든 물리적 변화에 반응한다. 영원한 아들은 모든 창조의 영적 충동을 담고, 합동 행위자2는 커지는 우주의 모든 지성 표현을 둘러싼다. 우주의 아버지는 신성한 의식이 충만한 가운데, 진화하는 시공 창조 전체에서 모든 통일체•존재•성격자의 확대되는 지성과 하늘 가는 영들의 진보하는 투쟁에서 모든 개체의 경험을 실감하신다. “우리 모두가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우리의 존재를 가지기” 때문에 이 모두가 글자 그대로 참말이다.

6. 우주의 성격자

(29.7) 1:6.1 인간의 성격은, 신성한 창조자 성격이 시간과 공간에 던지는 형상이요 그림자이다. 어떠한 사실성도 그 그림자를 검사해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참 알맹이에 따라서 그림자를 풀이해야 한다.

(30.1) 1:6.2 하나님은 과학에 대하여 원인이요, 철학에 대하여 아이디어요, 종교에 대하여 성격자요, 아니 사랑의 하늘 아버지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과학자에게 시원적 물력이요, 철학자에게 통일의 가정(假定)이요, 종교가에게 살아 있는 영적 체험이다. 우주의 아버지의 성격에 대해서 사람이 가진 부적당한 개념은 우주에서 사람이 영적으로 전진해야 개선될 수 있고, 오로지 시간과 공간의 순례자들이 파라다이스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신성한 품에 마침내 이를 때에야 참으로 적절하게 될 것이다.

(30.2) 1:6.3 하나님과 사람이 파악하는 정반대 되는 성격의 관점들을 결코 간과하지 말라. 인간은 유한한 것으로부터 무한한 것을 바라보면서 성격을 보고 이해하며, 하나님은 무한으로부터 유한을 바라본다. 사람은 가장 낮은 종류의 성격을, 하나님은 가장 높은 성격, 아니 최상의 성격, 궁극•절대인 성격을 소유한다. 그러므로 신다운 성격에 대한 상급 개념은, 인간 성격에 대한 개선된 관념들이, 특히 아들 창조자 미가엘이 유란시아에 자신을 수여한 생애에서, 인간답고 신다운 성격이 보여 준 향상된 계시가 나타나기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했다.

(30.3) 1:6.4 필사자의 지성에 깃드는 전 성격(前性格)인 신다운 영은, 바로 그 계심 속에서, 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타당한 증명을 지니고 있지만, 신의 성격에 대한 개념은 오직 개인의 진정한 종교적 체험에서 생기는 영적 통찰력으로 말미암아 겨우 파악될 수 있다. 인간이든 신이든, 어떤 성격이라도, 그 성격자의 대외 반응이나 물질적 계심과 아주 별도로, 남에게 알려질 수 있고 파악될 수 있다.

(30.4) 1:6.5 어느 정도의 도덕적 유사성과 영적 조화는 두 사람 사이의 친구 관계에 필수이다. 사랑을 가진 성격자는 사랑이 없는 자에게 도저히 스스로를 드러낼 수 없다. 신다운 성격자를 아는 데 접근하는 것조차 사람의 모든 성격 자질을 그 노력에 온통 거룩하게 바쳐야 한다. 마음 내키지 않게 부분적으로 헌신함은 소용이 없을 것이다.

(30.5) 1:6.6 사람이 더욱 철저히 스스로를 이해하고 그 동료들의 성격 가치를 헤아리게 될수록 사람은 더욱 최초의 성격자를 알기를 몹시 바라고, 하나님을 아는 그러한 인간은 갈수록 더 진지하게 최초의 성격자처럼 되려고 애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에 대한 견해를 놓고서 논의할 수 있지만, 하나님과 가지는 체험, 하나님 안에 있는 체험은, 인간의 모든 논쟁과 단순한 지적(知的) 논리를 넘어서, 또 그 바깥에 존재한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불신자에게 확신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을 교화시키고 서로 만족을 얻기 위해서, 그의 영적 체험을 묘사한다.

(30.6) 1:6.7 우주를 알 수 있다, 우주가 이해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곧 지성이 우주를 만들고, 성격자가 우주를 관리함을 가정하는 것이다. 사람의 지성은 오로지 다른 지성들의 지성 현상을, 인간적이든 초인간적이든,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의 인격이 우주를 체험할 수 있다면, 그 우주에 어딘가, 신성한 지성과 실제 성격자가 감추어져 있다.

(30.7) 1:6.8 하나님은 영이요, 영 성격자이다. 사람도 영이다―잠재 영 성격자이다. 나사렛 예수는 인간의 체험 속에서, 영 성격자의 이 잠재성을 충분히 실현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그의 일생은, 사람에게 하나님 성격을 가장 생생하게 이상적으로 계시한 것이 된다. 우주의 아버지의 성격은 오로지 실제로 겪은 종교적 체험 안에서 이해될 수 있어도, 예수의 지상(地上) 생활에서 참으로 인간다운 체험 속에, 그가 하나님의 성격을 그렇게 실현하고 계시하는 완전한 시범을 보인 것에 우리는 영감을 받는다.

7. 성격 개념의 영적 가치

(31.1) 1:7.1 예수가 “살아 계신 하나님”에 관하여 이야기했을 때, 그는 성격을 가진 신―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언급했다. 신이 성격자라는 개념은 친교를 수월하게 만들고 현명한 예배를 쉽게 만들며, 신선한 신뢰를 조장한다. 성격이 아닌 사물 사이에는 상호 작용이 있을 수 있어도 친교가 있을 수 없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친교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처럼, 둘이 성격자가 아니면 누릴 수 없다. 오로지 성격자들이 서로 사귈 수 있다. 하지만 생각 조절자와 같은, 바로 그런 비성격 통일체가 계심으로 말미암아, 이 성격 교통이 대단히 용이하게 될 수도 있다.

(31.2) 1:7.2 물 한 방울이 대양(大洋)과 하나가 되는 것처럼, 사람이 하나님과 연합을 성취할 수는 없다. 점진적이고 서로 주고받는 영적 교통으로 말미암아, 성격을 가진 하나님과 성격 교류를 가짐으로, 신의 뜻에 마음을 다하고 총명하게 순응함을 통하여 갈수록 더 신다운 성품을 얻음으로, 사람은 신과 연합을 얻는다. 그러한 숭고한 관계는 오직 성격자들 사이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31.3) 1:7.3 진리의 개념은 아마도 성격과 따로 생각해 볼 수도 있고, 아름다움의 개념은 성격 없이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신이 선하다는 개념은 성격자와 가지는 관계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오로지 성격자만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아름다움과 진리가 성격을 가진 하나님, 곧 사랑을 주는 아버지의 속성이 아니라면, 그것들조차 살아남는 희망과 멀어질 수 있다.

(31.4) 1:7.4 하나님이 근원적이고, 변함없고, 전능하고 완전하면서, 어떻게 동시에 늘 변하며, 겉보기에 법에 제한받는 듯한 우주, 상대적으로 불완전한 진화 우주에 둘러싸일 수 있는지,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개인적 체험 속에서 그러한 진리를 알 수 있으며, 이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환경이 항상 변하는데도, 우리 모두가 성격 신분과 의지(意志)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31.5) 1:7.5 궁극의 우주 실체는, 수학이나 논리나 철학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성격을 가진 하나님의 신성한 뜻에 점진적으로 순응함을 몸소 체험함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과학이나 철학이나 신학(神學)도 하나님이 성격임을 정당화할 수 없다. 오로지 하늘 아버지의 믿음의 아들들이 몸소 겪는 체험이, 하나님의 성격을 실제로 영적으로 깨닫게 만들 수 있다.

(31.6) 1:7.6 우주 성격자에 관한 상급 개념들은, 신분, 자의식, 자아의 의지, 자아 계시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 여러 특징은 더 나아가서, 파라다이스 신들의 성격 결합에 존재하다시피, 다른 대등한 성격자들과 친교가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결합의 절대적 통일성이 너무나 완전해서, 신성(神性)은 불가분성, 단일성으로 알려지게 된다. “주 하나님은 하나이라.” 성격의 불가분성은, 필사 인간의 마음 속에서 살라고 하나님이 그의 영을 수여하심을 막지 않는다. 한 인간 아버지의 인격의 불가분성은 필사자인 아들딸을 낳지 못하게 막지 않는다.

(31.7) 1:7.7 통일의 개념과 관련하여 이 불가분성의 개념은 신의 궁극위가 시간과 공간 모두를 초월함을 뜻한다. 따라서 공간도 시간도 절대적이거나 무한할 수 없다. 첫째 근원 중심은 모든 지성과 물질과 영을 무조건 초월하는 그 무한이다.

(31.8) 1:7.8 파라다이스 삼위 일체가 계신 사실은 신이 통일되어 있다는 진리를 어떠한 방법으로도 어기지 않는다. 모든 우주 실체의 반응과 모든 피조물과 가지는 관계에서, 세 파라다이스 신 성격자는 하나와 같다. 영원한 이 세 성격의 존재는 신이 불가분 하다는 진리를 어기지도 않는다. 이 우주 문제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필사자의 지성에게 분명히 설명하기에 적절한 언어가 손아귀에 하나도 없음을 나는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나 너희는 낙심해서는 안 된다. 이것들 전부가, 내 집단의 파라다이스 존재들에 속하는 높은 성격자들에게도 통째로 뚜렷하지는 않다. 너희가 파라다이스까지 필사자로서 오랫동안 승천하는 연속된 여러 시대에, 너희의 지성이 점진적으로 영답게 변화됨에 따라서 신에 관계된 이 깊은 진리가 갈수록 뚜렷해지리라는 것을 늘 기억하여라.


(32.1) 1:7.9 [한 신성한 조언자가 발표하였다. 그는 다가오는 이 계시 가운데, 네바돈 지역 우주의 경계 바깥에서 생기는 사무와 상관되는 부분을 감독하기 위해서, 제7 초우주 본부 유버르사의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로부터 배치받은 하늘 성격자 집단의 일원이다. 나는 하나님의 성품과 특성을 그리는 여러 글을 후원하라고 위임받았는데, 이는 사람이 사는 어떤 세계에서도 그러한 목적에 소용되는 정보의 가장 고급 근원을 내가 대표하기 때문이다. 나는 모두 일곱 초우주에서 신성한 조언자로서 봉사해 왔고, 만물의 파라다이스 중심에서 오랫동안 살아 왔다. 우주의 아버지가 친히 계신 바로 그 앞에서 머무르는 최고의 기쁨을 여러 번 누려 보았다. 어느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지고, 나는 아버지의 성품 및 속성의 실체와 진리를 묘사한다. 무엇에 관해 말하는지 나는 사정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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